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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역사의 질곡 함께 견뎌온 동료들에게
[기획특집] 역사의 질곡 함께 견뎌온 동료들에게
  • 교수신문
  • 승인 200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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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여, 책임을 통감하는가
 ◇ 김의수 전북대 ·철학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50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말은 한국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50대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론은 사회과학에서 보조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지만, 일단 우리가 세대에 주목해 본다면 50대들이 어떤 삶의 자세를 갖는가는 현재 상황의 개선 여부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지난번 총리 인준 청문회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 물론 그 사안과 관련해 별의 별 생각과 주장들이 다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선 우리가 그러한 기준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민주사회 시민의식에 맞는 삶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그것은 고위공직자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건강한 시민들에게 요청되는 것이다. 각자가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것이 잘못인 줄은 알아야 하고, 또 인정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사회의 중추적 임무를 맡고 있는 50대들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까다로운 자리에는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굳이 그런 자리까지 가서 망신당하기보다는 현재의 꿀물이나 빨아먹는 편이 실속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만큼 우리사회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람들을 비켜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권력의 주변에 맴도는 사람들 중에 쉽게 눈에 띄는 사람을 택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심판자인 국회의원들도 다수가 무자격자들이다.

그런데 50대들은 세대 차원의 책임의식을 갖는가? 사회는 세대에게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데, 막상 당사자들은 무감각하기 때문에 문제다. 솔직히 나도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책임의식보다는 오히려 참여를 줄여나가려 노력한다. 육체적으로 갱년기 증상이 감지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물러설 줄 모르는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 비우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50대에는 인생의 경륜이 쌓여 비판과 분노보다는 이해와 포용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인격적 성숙에서 나오는 자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성숙과 조로는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마음 비우기, 인간의 한계 수용하기, 이해와 포용 확장하기 등이지만, 후자는 무기력과 무책임이다. 나는 어느 여름날 다리 밑에 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을 발견했다. 그분들은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듣는 프로그램은 의식 있는 시민들이나 관심을 가질 만한 시사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이후 ‘노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 행위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통념을 버렸다. 그들은 사회의 여론 형성에 단단히 한 몫을 할 수 있는 세력이다. 하물며 50대가 관심과 참여를 놓아버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50대 책임론은 스타 부재 현상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언론과 광고, 그리고 대중문화의 질에 따라 스타의 수준도 함께 내려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따라서 50대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과제는 스타급 지도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시민사회의 폭과 질을 넓히고 높이는 일이다. 전쟁, 빈곤, 독재, 부패, 분단, 반공, 퇴폐, 경제위기, 삶의 피폐화, 공동체 및 환경의 파괴 등 우리 50대가 걸어 온 역정이 한없이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실한 50대에 대한 구실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경륜과 에너지로 작동해야 한다. 사회 각 부문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요구에 걸 맞는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다수의 50대가 건강한 참여적 시민으로 거듭난다면 그것이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권력자에게 줄이나 서는 얼빠진 지식인들을 호되게 나무라고, 나이는 어른이로되 의식은 미숙아인 반공주의자들, 가부장주의자들을 멀리하며, 생명·평화·통일·평등을 지향하는 성숙한 시민들의 대열에 서는 50대가 늘어난다면, 우리는 작은 희망을 키우는 것이 될 것이다. 개혁세력으로 권력의 교체를 갈망하며 5년을 기다려왔건만 희망보다는 분노와 실망만 안겨주는 정치권을 보면서 차라리 무관심으로 건강이나 유지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한국의 50대들은 새롭게 사회적 역사적 책임의식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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