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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지표와 교육의 질
대학평가지표와 교육의 질
  • 박민수 경성대·약학과
  • 승인 2014.03.10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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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요즘 대학과 관련된 신문 기사나 뉴스를 보면 온통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그 구조조정 기준으로 삼는 것이 소위 대학을 평가하는 지표다. 그런데 그 지표도 해마다 항목도 다르고 가중치도 변한다. 이렇게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해마다 변한다는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그만큼 평가 자체에 문제가 많고 모순이 많다는 하나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교수협의회 의장을 맡게 되고 학교의 이런 저런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리고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인 지표나 구조조정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본래의 도입 취지는 사라지고 오히려 지난 수년간 대학을 대학답지 못하게 황폐화시켜왔으며, 더욱이 지표만 있을 뿐 교육이 실종된 기현상의 근원이 돼 버렸다는 생각을 점점 더 확고하게 갖게 됐다.

대학의 구조조정과 관련된 지표는 교육여건 관련 지표와 교육성과 관련 지표로 나눌 수 있다. 교육여건 관련 지표로 대표적인 것이 교수 충원률이며, 교육성과 지표로 대표적인 것이 취업률이다. 좋은 교수가 많아지면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고 교육의 성과도 좋아지며 그 결과 취업률도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이런 발상이 너무나 순진한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과연 국내 대학의 현실에서 지표가 좋은 대학이 우수한 대학이라는 등식, 아니 최소한 상관관계라도 있는가.

지금 대학의 행정은 온통 지표 개선에 혈안이 돼 있다. 말이 개선이지 지표값을 올리기에 위해 온갖 아이디어가 나오고, 기상천외한 편법이 난무하는 것이 오늘의 대학이다. 또 적은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지표를 상승시키는 것이 마치 총장의 경영능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교육을 위한 대학 행정인지 지표를 위한 대학 행정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작금의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결코 교육의 현장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여기서 끝내 대학의 교육은 실종되고 만다.

교육당국은 교수 충원률을 교육여건의 지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많은 대학에서 교수 충원률을 올리기 위해 비정규트랙 교수를 더 많이 채용한다. 심지어 어떤 학과에는 소속된 정규트랙 교수보다는 강의전담 교수, 초빙 외래 교수, 산학협력 교수 등 이름도 생소하고 그 역할도 모호한 비정규 교수들이 더 많은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교수 충원률이 높아진들 그것이 무슨 교육의 질로 연결이 되겠는가? 이런 시스템으로 무슨 교육강국이 되기를 바라는가? 이런 지표로 평가해서 무슨 대학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며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지표를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구조조정을 한들 어떻게 부실대학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 교육성과의 대표적 지표로 간주하는 취업률의 경우는 정말 가관이다.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졸업생을 무더기로 임시조교로 임용하는가 하면, 학내 인턴으로 한시적으로 채용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또다시 취업률에 잡히는 새로운 졸업생으로 갈아치우고 있는 것이 요즘 대학의 현실이라면 믿겠는가.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기업체에 한시적으로 졸업생들을 취업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것이 오늘의 대학 현실이다. 또 거기에 졸업유예 제도가 엉뚱하게 취업률 상승에 기여(?)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취업률이 과연 대학평가의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참담한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라도 하면 마치 대학에 해를 끼치는 것처럼 이단시하고 다른 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오늘날 대학 교수사회의 분위기다.

지금 우리 대학이 과연 지표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교육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지표를 앞세워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는 구조조정이라는 성난 파도 앞에서 우리 교수사회가 그저 살아남기에만 급급해 방향 감각도 상실한 채 허둥대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잠시 숨을 고르고 냉정하게 되돌아볼 시점이다. 필자는 그 끝에서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만을 봤을 뿐이다


박민수 전 경성대·약학과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의약품의 설계 및 합성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경성대 교수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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