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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설 때
영화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설 때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2.10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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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남의 이슈 형상화한 영화「신이 보낸 사람」,「 또 하나의 약속」

새해 벽두부터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극영화들의 바람이 거세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 변곡점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변호인」(감독 양우석)이 2014년 1천1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관객 동원 기념을 토했다. 온 사회를 경악케 했던 강호순 사건을 재해석한「살인자」(감독 이기욱)와 지적 장애 아동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동네 아저씨들 이야기가 모델인「들개들」(감독 하원준)도 1월 극장가를 함께 달궜다. 2월 개봉작 라인업에도 이런 흐름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 북한과 남한의 현실을 직시한 두 영화가 나란히 관객을 만난다. 북한 지하교인들의 충격적인 실상을 들여다본「신이 보낸 사람」(감독 김진무)과 국내 최대기업의 어두운 치부를 드러내는「또 하나의 약속」(감독 김태윤)이 그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두 감독 모두 “내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 마운틴픽쳐스, 영화사 도로시)

먼저 북한 지하교인들의 처절한 삶을 탈북이란 고리로 엮어낸「신이 보낸 사람」을 보자. 1급 정치범으로 아내와 함께 수용소에 끌려갔던 철호(김인권 분)는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죄책감에 탈북을 하고도 2년 만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남조선으로 탈북한다’는 죽은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되돌아간 마을에서 철호는 선교사에게 의심받고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급기야 죽은 아내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까지 듣게 된다.

「신이 보낸 사람」은 철호의 동선을 따라가며 북한의 현실을 날 것의 느낌 그대로 보여준다. 수용소에 갇힌 ‘예수쟁이’들은 다리가 망치로 으깨지고, 임신한 상태에서 성기를 인두로 지지는 고문을 당한다. 수용소 밖이라고 상황은 나을까. 초등학생도 안 됐을법한 아이에게는 도강하다 총살당해 버려진 시체더미가 놀이터이자 낮잠 장소다. 신앙을 가진 이들의 삶이라고 나을까. 모두 잠든 새벽 지하동굴에서 비밀예배를 드리며 버텨보지만 발작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약이 아닌 기도뿐이다. 과연 이곳은 지옥인가.

모든 장면은 실제 벌어진 일 재구성한 것

우리는 과연 북한의 실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열두 살에 어머니, 언니와 함께 탈북해 9년이라는 파란만장한 여정 끝에 남한에 도착한 김은주 씨가 쓴『열한 살의 유서』(씨앤아이북스, 2013)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은덕의 작고 추운 아파트에서 일주일이 다 되도록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세간이란 세간은 모조리 팔아버렸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밥상과 농짝 하나가 전부였다. 장판까지 다 뜯어서 내다 파는 바람에 나는 시멘트 바닥에 다 해진 요를 깔고 낡은 외투를 덮고 자야 했다. 전기도 끊겼다. 날은 저물고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불을 지펴 방을 덥힌 지 오래됐는데도 추위를 느낄 기력조차 없었다. 쌀 한 톨 입에 넣지 못한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유서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열한 살이었다.”

김진무 감독은 새터민교회, 북한 선교단체, 인권단체를 찾아가 탈북자들과 만나며 인터뷰하는 데 3년의 제작기간 중 1년을 온전히 바쳤다. 참혹한 영화 장면이 허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간 북한에 대해 과장됐거나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았을 뿐 영화에서 본 장면은 개개인의 탈북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탈북 계획이 자꾸만 꼬여 가는 와중에 선교사는 철호에게 “먼저 살고 나중에 회개하자”는 말로 실망을 안긴다. 탈북을 망설이던 마을 주민 중 하나는 그런 철호에게 묻는다. “형, 그러면 남조선이 바로 가나안 땅이요?” 여기서「또 하나의 약속」이 그 질문을 이어받는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허구가 낱낱이 폭로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택시기사 아빠를 호강시키고 철없는 남동생 대학등록금을 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돼 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다. 윤미(박희정 분)는 고교 졸업 후 국내 최고의 반도체 회사에 취업했지만,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백혈병에 걸려 휴직하게 되고 이내 강제 퇴사를 종용받는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병원비를 해결할 길이 없던 윤미는 “병은 개인의 건강관리 차원”이라는 회사의 무성의한 대답에 눈을 감지도 못하고 잠든다. 실의에 빠졌던 아빠(박철민 분)는 같은 생산라인에서 혈액 관련 희귀병으로 죽거나 투병하는 이들이 많지만 여전히 산재 처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식하기만 하던 아빠는 변한다.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10년 동안 지난하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계속한다. 미쳤다는 동네 사람들, 보상금 얼마를 뜯어내려 이러냐는 비난보다 그에게 힘든 순간은 산재보상을 위해 함께 투쟁하던 이들이 감당 못할 병원비로 마지막 순간 회사와 합의를 할 때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연들로 10년을 보내며 변호사도, 노무사도, 투병자도 그렇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영화는 세상을 보는 감독의 시선

“정말 개봉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가장 컸다는 김태윤 감독. 아직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기에 그는 영화 제작에 외압이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고 주변에서 조심하라는 염려의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힘든 고비마다 도움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영화가 10년의 시간을 다루기에 여러 계절이 나와야 하는데 살수차를 동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가 오거나, 3월에 눈발이 날려 실감나는 겨울 장면을 찍은 경험들은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릴 돕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죠.”「또 하나의 약속」은 알려졌다시피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조달했다. 1만명의 제작두레에는 1만원의 소액부터 이민 자금을 다 털어 넣은 이들도 있다.

영화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두 감독 모두 “내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팩션들이 흥행을 하는 데에는 그 시대만의 이유가 분명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가치들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지켜야할 그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을 박제화시켜버린 현실. 두 영화는 우리의 말라붙은 심장에 다시 따뜻한 온기를 흐르게 한다. 인권 탄압, 자본의 횡포로 점철된 북과 남의 현실을 묵직하게 그려낸 두 영화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여기가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들뢰즈는 말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영화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설 때, 이 불편한 진실에 당신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영화학으로 석사를 했다. 학부 영화동아리에서 16mm 단편을 연출하기도 했다. 판타지, SF 장르 등 인간과 우주의 근원을 파고드는 영화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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