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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신경과학자에게서 배우는 자유의지의 비밀
인지신경과학자에게서 배우는 자유의지의 비밀
  • 윤경식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원
  • 승인 2014.01.20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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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윤경식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원
2014년 새해 목표 세 개를 정했다. ①세상에 도움되는 좋은 연구 ②행복한 연애 ③일주일에 3일 운동. 거창한 계획이다. 지난해 이맘때에도 비슷한 목표를 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스스로 의지를 믿어본다. 그런데 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던가? 벌써 핑계를 찾는다.

필자는 인간의 의사결정을 조작하는 연구를 한다. 자유의지에 정면으로 맞선다. 두뇌는 신경세포들의 전기적인 신호로 동작한다. 비침습적 전기신호를 이용해 두뇌 피질의 특정 신경네트워크를 조절할 수 있다. 어떤 위치를 자극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 연구그룹에서는 최근 정상인의 두뇌 보상회로를 조절해 사진 속 얼굴을 좀 더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험참가자들은 사진 속 얼굴이 실제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두뇌 보상회로가 활성화됐다고 믿는다. ‘실제’란무엇인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두뇌 네트워크 활성화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통합해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두뇌가 받아들이는 조작된 정보의 조합이다. 실제란 뇌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의사결정이 조작되고, 실제가 허상이라면 자유의지는 존재하나? 자유의지에 관한 첫 실험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벳 교수는 피험자들이 자발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고, 뇌파를 측정했다. 매우 흥미롭게도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식적 판단을 내리기 0.3초 전 뇌활성화가 관찰됐다. 더 나아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하인스 박사의 2008년 연구에서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인간이 자신의 결정을 인지하기 10초 전, 두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지 이미 판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자유의지를 담당하는 두뇌영역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특정영역을 전기신호로 자극해 활성도를 조작한다. 그러면 자유의지가 조작된다. 조작된 자유의지는 더는 자유의지가 아니다. 모순이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두뇌에서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면 살인자의 책임은 살인자 본인에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살인자의 뇌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인지심리학 분야의 천재적인 대가 라마찬드란 교수는 인간이 스스로 행동을 인지하기 전에 이미 뇌 활성화가 시작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행동을 멈출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행동을 하지 않을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인지신경과학의 대가인 가자니가 교수는 도덕적, 법적 책임은 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와 뇌 사이에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의지와 책임을 신경학적인 현상이 아닌 사회적인 현상으로 바라본다. 가자니가 교수에 의하면, 이 세상에 한 명의 인간만 존재한다면 책임이란 개념 자체가 불필요하다. 책임은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나온다. 자유의지와 책임은 자아와 타인의 두뇌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발성의 산물이다.

자유의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니 새해 목표를 작심삼일로 만들어 줄 그럴싸한 핑계 하나가 사라졌다. 반대로 새해 목표를 지키려면 많이 떠벌리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윤경식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원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침습적 신경기능 조절을 통해 각종 신경정신질환 치료를 목표로 연구한다. Ybrain 창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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