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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름의 불편함?
우리 나름의 불편함?
  • 교수신문
  • 승인 2014.01.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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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세미나 발표를 한다고 뉴욕에 다녀왔다. 하루 이틀 다녀온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맨하탄 32가 한국거리에 있는 스탠포드 호텔에 터잡아 놓고 1주일이나 지낸 건 정말로 오랜 만인 것 같다. 짧은 시간에 대충 훑어보고 제대로 알 도리는 없는 것이지만 언뜻 보기에도 그동안 미국도 많이 변한 듯하다. 적어도 한국거리는 그런 것 같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한국거리는 회사원들이나 교포 분들의 자취는 별로 없고 어학연수나 학교일로 온 젊은 사람들로 메워져 있었다. 한국 분들이 많이 찾던 호텔도 80~90%는 동유럽 등에서 관광 온 외국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깃발을 든 일본 사람들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동유럽, 중국, 태국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들은 요즘 크로아티아나 터키, 또는 유럽의 숨겨진 곳들을 즐겨 찾는다나. 나이아가라 폭포가 멋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지도 한참이 된 것 같기는 하다.


미국도 신자유주의이던가 하는 거센 흐름 속에 놓여 있어왔던 것 같다. 설렁탕 가격도 미화 17불이 됐고, 받아든 영수증의 봉사료 란에는 15%, 17.5%, 20%이면 얼마가 된다라는 식으로 아예 계산까지 붙어있다. 물론 받았던 서비스나 대접에 비하면 봉사료를 아예 안 낼 수도, 또 그보다 적게 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뚫어져라 계산서를 들여다보는 직원들의 눈길이 매섭게 느껴진다, 택시 기사분들도 예전 사람들 같지 않고 불평이 가득한 것이 느껴진다. 불평은 대부분이 다 생활과 경제에 관한 것이다. 어떤 기사님말로는 최근 3~4년간에 집세가 2~3배 올랐다고 한다. 뉴욕이나 맨하탄의 집값은 매년 시 당국과 집이나 아파트들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합의해서 정하는 데 한 해 법정 집세 인상률을 최저 4% 최고 7%로 고쳐줬다고 한다(물론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다). 맨하탄과 주변 지역을 잇는 다리를 지나는 교통요금도 2~3년 만에 2배가 올랐다고 불평이 대단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주변 지역에서 맨하탄에 차로 퉁근하는 사람들은 우리 돈으로 하루에 2~3만 원을 내고들 있었다. 물론 보건상 이유이겠지만 긴 담배 한 갑의 가격은 세금 합쳐서 미화 13불 가량이었다. 그래서 거리에 그렇게 담배 하나를 구걸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20년 전 일이기는 하지만 뉴욕에서 식료품점이나 세탁소, 야채가게 등의 소상인 비즈니스를 하던 교포 분들이 여러 해 고생은 되지만 성실히 노력하면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살 수도 있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희망과 미국에 사는 만족감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교포 분들은 한 주간 일하면 집세가 나오고 다시 한 주간 일하면 생활비가 되고 나머지 두 주간의 수입은 저축도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많은 한국 분들이 뉴욕생활이 여의치 않아 아틀란타와 같은 내륙지방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미국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나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이 보일 때마다 우리나라가 참 많이 잘 살게 됐고 선진국이 됐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돌아오게 됐다. 우리 공항은 참 일들을 잘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빠르고 정확하고 청결하고 무언가 전문적인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CCTV가 노려보고 있는 좁디좁은 주차선을 따라 어렵게 주차하고 있는 와중에 어떤 분이 급하게 차를 몰고 와서 바로 옆 칸에 곡예운전으로 차를 세운다. 짐을 챙겨 승강기 앞에 서니 아까 그 분이 자신은 오래 기다렸는데 결국 나와 함께 타게 됐다고 확연히 느껴지도록 화난 듯한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는 다시 나가셔야 하는지 승강기 4개 층을 모두 눌러놓고 하차하신다.


꽤 지난 일이지만 상대평가 하는 것이 의무화됐다고 통보받던 날에 성적을 컴퓨터에 기입하다가 원천차단으로 아예 입력이 안 되는 것에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언론에서는 대학들이 학점을 부풀려준다고 하지만 절대평가 식으로는 아예 입력이 안 된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것인지? 물론 학생들에게 미리 정보를 갖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로스쿨이 되고 나서는 다음 학기 수업계획서를 이 번 학기 시작 즈음에 미리 제출해야 한다. 미리미리 내야할 것도 많고 검토받을 일들도 많고. 이러다가 사고나 사망계획서도 내라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미리 정해놓아야 하니까. 모든 입금은 은행계좌로 하고 모두가 안다. 학생 시절 교수님 연구실 이사를 돕다가 책갈피에 있던 교수님 돈을 찾아드렸던 일은 이제 다 잊어버렸다.
뉴욕의 일화다. 비가 오니까 뉴욕 거리가 난장판이 됐다. 늘 공사증인 좁은 건물들 밑을 사람들이 우산으로 부딪치면서 지나가고 있자니 그 일이 비 피하기는 것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어느 건장한 흑인 아저씨가 소리를 낸다. “여러 분 비는 그냥 물입니다. 편안히 생각합시다.”


머물렀던 호텔은 다 좋은데 승강기가 하나여서 사람들과 짐들로 편안하지 않았다. 좁은 승강기 속에서 어떤 미국 부인이 탄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행복하시라고 깨알같이 인사를 건넨다. 세미나 도중에 미국교수 한 사람이 사정상 주말에 학교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등록이 안 돼 있어 고민이라고 하더니 금새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주차장을 지키는 쌤인가 하는 사람한테 수고비를 주고 사정을 말하니 월요일에 천천히 나오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의 학교들에서는 아마 전산상 원천적으로 주차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회하기에 충분한 액수의 주차비를 낼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어로 over-engineering(과도통제?)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출근시간, 퇴근시간, 승차시간, 주차시간, 제출시간이 모두 기록되고 통제되고 전산화되는 것은 쿨한 일이지만 이것이 대학과 학문과 교육과 사회의 발전을 뜻하고 또 발전을 가져올까. 교육이 사람을 상대하고 변화를 기다려주고 호흡하고 결국 같이 커가는 것이라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좀 더 크고 여유있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새 학기를 준비한다. 곁가지를 쳐내고 큰 나무를 키워가야 할 텐데. 오랜 만에 비교국가적으로 걱정을 하고 있다.

□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의 필자는 원재천 한동대 교수입니다.


홍성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국제법
필자는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icsid/world bank) 조정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EU법 강의』, 『인권의 해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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