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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保守, 초심으로 돌아가 소통으로 문제 풀자
최대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保守, 초심으로 돌아가 소통으로 문제 풀자
  • 윤평중 한신대·정치철학
  • 승인 2014.01.08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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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금은 한국보수의 전성기인가? 얼핏 보면 그렇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집권했고 사회 전체적으로 우경화의 흐름이 뚜렷하다.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귀한데다 북한 김씨 세습정권의 반동적 성격이 두드러지면서 우리 사회의 중심추가 보수로 기울고 있다.

동북아에도 新국가주의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중이다. G2로 뻗어가는 중국의 대국굴기와, 일본의‘정상국가화’야심이 미국의‘아시아로의 귀환’과 맞물리면서 한반도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정치공동체가 내외의 위기를 실감할 때 보수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 사람들은 원자화된다. 보수의 득세와 진보의 퇴조가 맞물리는 순간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이 성공적이었다고 보는 이가 많지 않음에도 정권 지지도는 50% 이상을 상회한다. 반면 야당에 대한 지지도는 끝 간 데를 모르고 추락 중이다. 거대 제1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10%대 밑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이석기 사태의 충격파 이후 진보정당은 형해화 되고 말았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지리멸렬한 야권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보수의 득세와 진보의 퇴조

한국사회는 구조적으로 보수 우위로 짜여있다. 한국적 잣대로 진보정권으로 여겨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보수의 태생적 우위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국정운영능력(Statecraft)도 일천했다. 이런 對內的세력 불균형의 최신 결과가 박근혜 정부의 탄생이다. 2012년 말 시점에 한국보수의 세력동맹이 정권교체 열망을 버텨낼 정도로 강력했던 데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시대적 의제를 선점한 선거캠페인을 구사한 덕분이었다. 이제 한국보수연합의 지배블록은 화장을 지운 자신들의 민낯과 울퉁불퉁한 근육을 과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신권위주의 리더십 아래 일사불란하게 질주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보수의 이런 현상적 우위는 심각한 내용적 위기를 동반한다. 2013년을 관류한 보수 헤게모니의 우세가 치명적으로 균열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한 해 동안 겉으로는 힘차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强性통치가 정치의 부재와 연계된‘통치불가능성’으로 귀결됐다는 사실과 궤를 같이 한다. 즉 87년 체제 출범 이래 최초로 과반수 이상의 유효표를 얻은 제왕적 대통령임에도 가장 화려해야 할 출범 첫 해를 괥失해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2013년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다.

여기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복합적 배경이 있다. 대권을 쟁취하기 위한 선거가‘전부 아니면 전무’의 제로섬게임으로 치닫는 특유의 전쟁정치, 빈곤한 통치리더십, 정치의 무능 같은 정치권의 구舊態가 우선 문제다. 여기에 갈수록 악화되는 사회양극화가 부른 중산층 붕괴의 요인이 더해지고, 시민사회에까지 침투한 대선불복의 관행화, 사회적 신뢰의 부재와 르쌍티망(怨恨)의 문화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87년 체제 전체를 통치 불가능한 상태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보수가 통치불가능성의 위기 앞에 노출된 것이다. 보수가 강경 드라이브를 걸수록 문제의 강도와 심도도 함께 커진다. 이것이야말로 2014년 한국 보수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일 터이다.

심각한 도전은 비상한 응전을 요구한다. 도전과 응전의 변증법이 상승효과를 일으킬 때 비로소 위기극복의 전망이 열린다. 상황이 위중할수록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보수, 특히 박근혜 정부에 그것은 바로 2012년 대선을 추동한 初心일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는 진보와 보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 민심을 관통한 시대정신이 있었다. 경제민주화·복지·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통일한국의 구상 등이 시대정신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유효하게 선점했다. 그 당시만 해도 박 후보는 시대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기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도 사과했다. 지금 그것들이 다 어디로 갔나?

새 정부 출범 첫 해는 희망에 찬 정치공동체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기 마련이다. 지지하지 않은 국민조차 관망하는 자세가 있다. 그런데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미래지향적이고 전향적인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전체적으로 답답하고 나라가 사분오열돼 있으며 사람들이 울화증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심층에 흐르는 이런 민심의 저류는 통치불가능성의 생생한 증례일 뿐이다. 지난 1년간 배제의 정치로 일관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좁히면서 사태를 악화시켜왔다.

한국사회의 집단적 화병 상태

계속 이렇게 간다면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남은 4년이 걱정되지만 당장 우려되는 게 올해 봄이다. 거리의 정치를 향한 민심의 에너지가 급속히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2013년 말을 痛打한‘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다. 한국사회에 집단적 화병 상태에 가까운 에너지가 쌓이고 있는 대목을 경시해선 안 된다. 동북아는 격랑에 휩싸이고 핵미사일을 손에 쥔 북한은 통제 불가능인데 나라는 사분오열된 상황이다. 한국보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전력을 다해 출구를 찾아야 마땅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통치의 틀을 전면적으로 바꿔, 지난 대선 때 축적한 건강한 정치적 에너지를 펼쳐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2월 30일 철도노조 파업이 극적으로 철회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제구실을 못한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길을 텄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도 현명한 판단을 했다. 다소 무리한 요구로 파업을 시작했지만 민심을 크게 잃지 않는 선에서 물러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열린 원칙론도 빛을 발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운용의 묘를 살렸다. 대통령의 열린 원칙은 여야가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제공했고 노조에게도 퇴로를 열어줬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소통하고 양보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국가기관 대선개입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 과거로 돌려보내고 미래를 준비하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타협과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작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은 것이 쌓여야만 비로소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진실이다. 통치불가능성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정치공동체의 큰 일도, 서로 경청하고 한 발 물러서는 작은 것의 실천에서만 출발가능하다.


윤평중 한신대·정치철학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에서「합리성과 사회비판: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급진자유주의정치철학』,『 담론이론의사회철학』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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