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은 시로 읊고 노래로 불리고 일반인 시인 평론가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에 꼽고, 교과서에서 배우는 첫 시인이건만, 새삼 생각해보니 이 땅 어디에도 그의 기념관 하나 없다는 사실이 깜짝 놀랍다. 그나마 대산문화재단에서 준비중인 시집 발간 소식이 반갑다. 러시아에서는 소월이 시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될 전망이고, 기념문학제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지난한 삶으로 말하자면 정지용만한 이도 없다. 북으로 간 뒤 한국문학사에서 지워진 그는 80년대 후반 시대의 해빙기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의 복권으로 비로소 한국 시문학사는 빈틈을 메울 수 있었고, 1백주년을 맞아 일본에서는 그의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친일문학인이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했던 채만식. 생계형 친일 혹은 냉소적 친일을 걸터듬으며 살아야 했던 스스로의 성정을 비웃듯, 혹은 나약한 자신을 위무하듯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나약한 자신에게 쏘아보내는 화살 같다.
끝을 알 수 없는 가벼움과 시대와 동떨어진 골방의 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젊은 문학인들에게 그들의 생애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는 모를 일이지만, 시끌벅적한 현실에 묻혀 이들의 탄생이 너무 ‘조용히’ 지나는 것이 안타깝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 근대문학은 얼마나 초라했을 것인가.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는 “어려운 시절에 한국문학을 가꾼 분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주는 지 살펴봐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식민지의 경험은 시대의 눅눅한 자리에 곰팡이를 피우고,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갉아먹는다. 하물며 가장 예민한 촉수로 세상을 더듬는 문인들에게 식민지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었을까.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이들을 기억하며 함께 준비중인 학술제가 ‘식민지의 노래와 꿈’ 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오는 26~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과 명동 밀리오레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학술제에는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 황현산 고려대 교수(국문학), 김인환 고려대 교수(국문학), 우찬제 서강대 교수(국문학) 등이 나서서 그들의 문학을 어루만진다. 한국문학이 정지용과 채만식에서 얼마만큼 멀리 왔는지 자못 궁금하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