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4:20 (금)
‘소리’와 ‘노래’는 인간의 생명작동 뜻하는 神(태양)의 분화어
‘소리’와 ‘노래’는 인간의 생명작동 뜻하는 神(태양)의 분화어
  •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 승인 2014.01.02 1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17_ 한국 고대음악의 기원


 

▲ [그림 4] 隋代 樂人 陶俑, 인물, 복식이 조선과 비슷하다.

한국음악의 시원은 무엇일까? 그 기원이나 원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성돼 오늘에 이르렀는가? 라는 문제는 그동안 많은 학문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해명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무릇 시원, 원류, 기원 같은 뿌리 문제는 아직까지 해명되지 못한 부문과 해명됐더라도 논자마다 구구해 통일된 견해 도출에는 길이 먼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문화의 여명기적 모습에 대한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현상이다.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민족문화의 원류’에 대한 대대적인 학술대회를 3회에 걸쳐 개최했다. 우리나라에서 한민족의 기원, 한국사상의 원류, 한국예술의 시원을 여러 학자들이 참여해 종합적인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참여 면면과 그 내용면에서도 특징적이었던 학술대회였다. 한국음악의 원류는 문학·예술 분야에서 다뤄졌는데, 한만영의 논문발표에 이어 장사훈, 김정기, 정병욱, 정영호, 김기웅 등 당대의 석학들이 참여한 토론이 있었다. 한국음악의 원류에 대해서 음악학자만이 아닌 다른 분야의 석학들도 함께 참여해 토론한 이 대회는 종합적 통섭의 관점을 점검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논의된 한국음악의 시원은 그 시점이 신석기시대부터라는 점과 원시종교인 샤머니즘에서 출발했다는 견해에 모아졌다. 그러나 왜 신석기시대부터이며, 왜 샤머니즘에서 발생했는지 등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선 만족스런 해명에 이르진 못했다.

고대음악의 기원은 祭天儀式의 원시종합예술
고대음악이 신석기시대서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보는 까닭은 제천의식과 같은 원시종교가 그 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 빛살무늬와 같은 미술적 조형이 그때부터 출현한 이상 충분한 유물은 없지만 고대음악도 그 시대부터 배태됐을 것이다. 청동기시대 방울과 함북 웅기 굴포리 유적에서 출토된 骨笛 등이 그 物徵으로서 고대음악의 기원을 유추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음악의 고고유물인 방울과 북에 나타난 문양은 모두 태양문이다. 원시시대의 대표적인 두 가지 유물의 문양이 태양문으로 시문된 사실은 고대음악의 시원을 해석할 모종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우리나라의 제천의식은 신석기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지만, 그 유적은 청동기시대 것이 약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울산 천전리 암각화와 고령 양전동 알터 암각화를 들 수 있는데, 암각화의 중심문양이 모두 태양문(동심원과 기하학무늬)인 것은 고대음악의 원리도 태양숭배와 깊이 관련돼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뒤에 설명될 소리와 노래의 어원 해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샤먼 음악의 특징은 原生的이며 자연발생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종교적 경전이 없거나 문자화되지 않은 채 生來的 또는 스승에게서 제자로 口傳되는 과정을 밟는다. 신 내림에 의한 즉흥성 때문에 변화가 많고 비정형적이며 비가공적인 특색을 지닌다. 구체적으로 삼한시대 샤먼이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며 주문을 외어 신에게 고하기도 하고 신을 부르기도 하는 소리가 음악의 기원이라고 파악하고 있다(졸고 「한국 고대음악의 기원 試考」, <음악과 문화> 제7호, 세계음악학회, 2002, 11~33쪽 참조).
『三國志』 「魏書-東夷傳」의 文徵이 그런 사실을 증명한다.


“殷曆 정월(지금의 12월)에 지내는 제천행사는 國中大會로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迎鼓라 했다. 이때에는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를 풀어 줬다(以臘月祭天, 大會連日, 飮食歌舞, 名曰 迎鼓, 是時斷刑獄, 解囚徒, 「夫餘傳」).”
“그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해, 나라 안의 촌락마다 저물어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유희를 즐긴다. (중략) 10월에 지내는 제천행사는 국중대회로 이름하여 同盟이라 한다(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群聚 (중략)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高句麗傳」).”
“해마다 시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주야를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니 이를 무천이라 한다(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濊傳」).”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중략)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게 한다.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에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서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天君이라 부른다(常以五月下種흘, 祭鬼神, 群聚歌舞休, (중략)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信鬼神, 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 名之天君, 「韓傳」).”


“그 나라의 풍습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비파가 있는데 그 모양은 축(築)과 같고 연주하는 音曲도 있다(俗喜歌舞飮酒, 有瑟, 其形似筑, 彈之亦有音曲, 「弁辰傳」).”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삼한의 계절제에 나타나는 특징은 술과 노래와 춤의 세 요소가 공통분모이고 또 그것을 좋아하며 즐겼다는 데 있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예술적 원천을 탐색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
고대예술의 집약형태인 제천의식에서 天의 개념은 하늘이고 하늘의 원형은 태양이다. 때문에 태양을 사유의 모형으로 전개한 천손족의 예술적 시원은 당연히 神의 대상인 태양에서 시작한다는 점에 깊은 유의를 요한다.


앞에서 총론부분인 ‘神의 해석’(1~3회)에서 확인했듯이 태양의 순수고유어 ‘살’과 ‘날’에서 분화된 ‘술’, ‘소리’, ‘노래’, 솔개‘ 가 원시종합예술의 중심어라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제천의식과 같은 샤머니즘이 왜 고대음악의 원류가 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와 ‘노래’의 어원과 한국의 고대음악
음악은 한자어이고 소리와 노래는 고유어다. 이들 용어의 개념을 정의하면, 한국 고대음악의 시원적 성격과 본질이 사실상 거의 해명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출판된 어떤 음악 서적에도 이런 부문에 대한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준 글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기초용어의 주체적 해석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최한 ‘민족문화의 원류’ 학술대회의 「한국음악의 원류」 종합토의에서 사회자였던 정병욱 교수는 장사훈 교수에게 “옛날 사람들이 무엇을 소리라 했고, 무엇을 노래라 했는지 이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요청했을 때 장사훈 교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정의는 될 수 없겠습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현재까지 습관적으로 써온 건지는 모르지만 소리라고 하는 건 서민대중들이 부르는 민요라든지 상여송이라든지 기타 노동요 이런 것은 대게 소리라 하고, 시조나 가곡이나 과거에 궁정에서 부르는 그러한 것은 대체로 노래로 표현돼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사훈 교수의 답변을 정리하면, ‘소리’는 다듬어지지 않고 고급화되지 못한 민속악에서 불러지던 것이고, ‘노래’는 곡조를 붙여 가다듬어진 雅正한 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우리의 고유어 ‘소리’와 ‘노래’란 단어의 개념정리가 국어국문학계와 음악학계에서 처음으로 거론됐지만, 명확한 인식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점에 있다.


음악은 귀신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다고 옛사람들은 말했다. 그러한 음악은 인간 신체의 아홉 개의 구멍 즉 구규(九竅) 중에서 귀와 입, 비공까지 합해 5규가 작용하므로 눈만 작용하는 미술보다 그 위력은 막강하다.
필자와 같은 음악의 문외한이 음악을 논한다는 자체가 가당치 않은 것임을 잘 알지만, 태양의 빛살이 고대 神의 원형임을 발견한 후, 고대문화 모든 장르의 원형질이 태양을 중심으로 생성, 전개, 분화된 것이라는 원리 해석의 열쇠를 얻을 수 있었기에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됐다. 음악에 해당되는 고유어 ‘소리’와 ‘노래’의 어원이 태양을 지칭하는 고유어에서 나온 것임을 살피는 것으로써 한국 고대음악의 기원을 더듬어 보려 한다.


(1) 소리: ‘소리’와 ‘노래’의 어원은 태양의 고유어인 ‘살’과 ‘날’에서 분화된 말이다. 연재 총론인 ‘神의 해석’(1~3회)에서 이미 밝혔듯이 소리는 태양 에너지의 파장과 진동이 그 모체다. 태양의 순수고유어 ‘살’이 모음교체된 ‘솔’에 접미사 ‘이’가 첨가된 ‘솔+ 이’ 〉 소리(연철)의 형태를 보인 어휘가 ‘소리’다. 소리는 자연계의 소리가 일차적인 소리다. 태양 에너지의 파장과 진동이 소리이기 때문에 그것은 바람소리 곧 ‘風’을 말한다. 『呂覽』 「古樂篇」에서 “바람은 천연음악의 창조자다”라고 했다. 바람은 태양의 使者로서 風神이었다. 風神은 鳳鳥와 같은 의미였다. 곧 ‘바람’은 하늘의 언어인 소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런 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風樂, 風流, 風物, 風調 등의 어휘가 있고, 磬, 鈴, 琴, 鐸에 風자를 앞에 붙여 풍경, 풍령, 풍금, 풍탁이라고 호칭하게 된 연유는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농악은 비교적 원시적 음악형태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風物이라고 하는데 풍물은 모두 타악기인 점이 특색이다. 악기 중에서 다른 악기보다 덜 가공되고 즉흥성이 강한 타악기가 제일 原始古形의 악기다. 우리 민족 고유의 풍물은 사물놀이인데 四物은 북, 장구, 꽹과리, 징이다. 북은 구름, 장구는 비, 꽹과리는 천둥, 징은 바람소리를 상징한다. 모두 하늘의 소리, 자연의 소리들이다.


사람의 입[口]도 원시악기 중의 하나다. 가장 원초적인 악기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신에게 전달되는 말, 곧 주문이다. 신에게 아뢰는 소리인 주문은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다. 그래서 주문의 말소리는 신령한 힘이 있으며 창조적인 성스러움이 있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느님이시니라”(요한복음 제1장)란 구절을 분석하면 태초, 말씀, 하느님 세 단어가 중심어다. 태초의 말씀이 소리라는 것이며, 소리는 하느님, 곧 신의 언어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음악이 언어에 기초한 예술이라 함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2) 노래: ‘노래’는 태양의 고유어 ‘날’이 모음 교체된 ‘놀’에 접미사 ‘애’가 첨가된 놀+애〉노래의 형태를 보이는 단어다. 날〉놀+이〉놀이의 형태와 비교하면 노래는 소리보다 유희적인 성격을 지닌 말이다. 즉 소리에 곡조를 붙여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운 소리로 변화시킨 것이 노래다. 노래는 소리에 淸濁, 大小, 長短, 秩序, 哀樂, 剛柔, 遲速, 高下, 出入, 周疎(주밀하고 성근 것) 등이 삽입돼 곡조를 가공한 적절한 가락이다. 그러므로 노랫가락이란 말은 있지만, 소리가락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한자와 대비 관계에서 보면 소리는 音과 聲에 가깝고, 노래는 歌와 樂에 가깝다.

소리와 노래의 또 다른 차이는 소리의 祖語인 ‘살’은 인도 범어에서 해를 가리키는 ‘슈리아’(surya)가 根源語이고, 노래의 조어인 ‘날’은 몽골어에서 해를 지칭하는 ‘나르’(naar)에서 왔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벼를 태양의 씨알로 인식한 고대인들이 ‘살〉쌀[米]’이라고 말한 것은 남방계에서 유입된 말이고, 경상도 방언에서 ‘날〉나락’이라고 말한 것은 북방계에서 유입된 말이라고 본다. 소통이 잘 되지 못했던 고대엔 지역과 부족간의 차이 때문에 말이 다르고, 문화전파의 유입경로를 비롯한 역사적 상황과 조건의 차이에 의해 언어의 중층구조가 발생한다. 소리와 노래의 어원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위의 도식에서 보듯이 소리나 노래는 태양을 사유의 원형으로 삼은 한민족이 그들의 인간생명활동을 표상한 것이다. 소리나 노래를 죽은 사람이 부르지는 못할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명작용이 소리와 노래인 것이다. 참으로 자연의 섭리가 오묘하게 느껴지는 이 대목이 고대음악을 이해하고 기원을 해명하는 암시가 될 것이다.

音·樂·聲·歌의 原意
우리는 대체로 소리와 노래의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음악’, ‘성악’을 한 단어로 묶어놓아 ‘音’, ‘樂’, ‘聲’을 분별 않고 사용하지만, 그 개별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音’은 말씀 言의 입구(口)에 한일(一)을 그은 것이 音이다. 音( )과 言( )이 다르게 보이지만 전서체는 구조가 아주 비슷하다. 『說文解字』에선 “소리가 마음에서 나와 밖으로 절도가 있는 것을 音이라 했다(聲生於心 有節於外 謂之音).” 그러므로 音은 말이자 소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옥편에선 글자 전체가 部首인 것이다.


여기에 비해 ‘樂’은 갑골문엔 가운데의 白이 없이 나무 위에 두 개의 絃이 놓여 있는 문자로 연주의 의미를 담은 문자였다. 갑골문 이후 金文 시대에 와서 白이 첨가됐는데, 그것은 북의 형상이란 설이 있다.
따라서 樂은 소리를 즐겁고 좋은 가락으로 변모시킨 음악이란 뜻이 된다. 樂이 ‘풍류악’, ‘즐길 락’, ‘좋아할 요’로 훈독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樂은 樂器, 樂曲, 樂章, 樂律과 같이 단어의 앞에 놓이는 경우도 있지만, 音樂, 聲樂, 歌樂, 伎樂, 器樂, 管樂, 絃樂, 雅樂, 奏樂, 風樂, 國樂, 俗樂, 洋樂 등과 같이 字順의 뒤에 오는 것도 연주의 의미인 樂의 성격을 잘 드러낸 말의 묘미다.


『禮記』 「樂記」에서 “그러므로 말하기를 (음)악이란 즐거워하는 것이다(曰 樂者樂也)”라고 했는데, 이 말로써 樂은 즐거움을 양성하거나 조성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음악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공자도 入敎의 宗旨를 樂으로 삼았다. 『論語』 「泰伯」에서 “詩로서 일어나서 禮로서 서며 음악으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고 했음은 樂이 개인의 인격완성의 경지임을 인정하여 음악에 대한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바가 됨을 의미한다.


‘聲’의 字形은 耳부가 의미요소이자 이 글자의 部首이다. 윗부분의 좌변은 石磬을 나타내고, 우방은 채를 손에 쥔 모양이다. 이 글자의 字解는 손에 쥔 채로 석경을 쳐서 소리를 듣는다는 자형이다. 그러므로 音은 말하는 소리이고, 樂은 音에 가락을 넣어 즐겁고 풍류 있게 노래한 것이며, 성은 귀로 듣는 소리란 뜻이 된다. 그러나 시경, 예기 등 고문헌에도 별로 구별 않고 혼용하고 있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말의 고유어인 ‘소리’와 ‘노래’의 유비관계를 검토하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歌’는 ‘노래 가’로 훈독하므로 곡조를 붙여 부르는 소리를 말한다. 즉 음악이 따르는 것은 ‘歌’이고, 음악이 없는 것을 ‘謠’라 해 구분하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원시종합예술의 형태였던 제천의식에서 음악의 기원을 탐색한 본고의 핵심은, 한국 고대음악의 사상적 축이 태양의 원리를 원형질로 한 세계로서, ‘소리’와 ‘노래’가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작용을 뜻하는 神(태양)의 분화어임을 밝힌 점에 집필의 의도를 뒀다.

□ 김양동 교수의 ‘한국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은 2월 10일자부터 연재가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