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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 함께 만든 NGO, 자원밖에 없는 이곳을 바꾸다
제자들과 함께 만든 NGO, 자원밖에 없는 이곳을 바꾸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3.12.30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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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희망 일구는 최창원 동티모르국립대 객원교수

최창원 동티모르국립대 객원교수
2002년 5월, 인도네시아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동티모르. 이곳은 교육이나 사회기반 시설 등 인프라가 전무한 실정이다. 2012년 말에는 UN경찰이 현지에서 철수한 뒤 2013년부터 국가운영은 치안유지에서 개발로 전환됐다.

이곳 동티모르에서 한국인 최창원 씨(43세ㆍ사진)가 ‘교육’으로 희망을 일구고 있다. 2008년 동티모르 국립대 객원교수로 부임한 최 씨는 제자들과 함께 현지 비영리단체인 ‘티모르 호프셀러 리더십 센터’를 설립했다. 대부분 한국 NGO 활동가들이 한국 소속의 국제 NGO단체를 설립해 코이카의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 씨는 이례적인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14일 ‘티모르 호프셀러’가 플라스틱 재활용 프로젝트가 유엔개발계획(UNDP)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수거해 원형 그대로 판매하거나 재성형 등 2차 가공을 거쳐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해 수익을 낸다. 환경 보호는 물론이고 동티모르의 경제개발과 사회적 사업 기반 마련,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향후 6개월 간 자금 지원을 받아 동티모르 사회개발을 위한 실제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최 씨는 “재활용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제고하고 제대로 된 공장 하나 없는 이곳 동티모르에 산업화 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씨는 이와 관련한 정책 법안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최 씨는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 시장조사 분석은 물론 기술교육과 정부 협의 등의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기술 분야에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과 인적ㆍ기술적 네트워크 구축도 프로젝트에 한 과정이다. 동티모르 정부와도 협력해 사업을 완수하고 여러 사업 분야로 이번 프로젝트의 노하우를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씨가 동티모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지난 2007년 동티모르 명예 영사관의 한국 개관 행사에 지인의 부탁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2008년 여름에 통역 업무차 방문하게 된 동티모르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동티모르국립대 총장으로부터 무보수 한국어 교육과 리더십 교육 요청을 받고 객원교수로 부임하게 됐다.
최 씨는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에서 평화학을 전공했다. 개인 리더십에다 공익적인 리더십을 반영해 자체로 개발한 리더십 프로그램으로 ‘티모르 호프셀러’를 설립했고, 다양한 강연과 공익 활동을 펼쳐 왔다. 척박한 동티모르 현실에선 최 씨의 활동이 절실했다.

“동티모르에 우선 필요한 것이 개인으로서, 국민으로서의 리더십이다.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자국의 NGO단체라고 생각했다. 현지 동티모르국립대 제자들을 중심으로 ‘티모르 호프셀러’를 설립한 첫 번째 이유다.”

최 씨는 리더십 교육을 제외한 다른 주요 활동은 제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NGO단체인 만큼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최 씨는 한국어와 한국학 관련 교육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2013년 초 동티모르국립대 안에 한국학센터 설립을 승인받았다. 포르투갈어와 영어에 이은 세 번째 어학교육기관이다. 국가단위 연구소로는 동티모르 최초의 기관이라고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한국어 기초반과 한국의 리더십 2개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다양한 정규 교육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최 씨는 한국학 교육의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2011년에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과 3학년으로 편입하기도 했다.

“한국은 자원은 부족하지만 사회기반과 인적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반대로 동티모르는 자원을 제외하고는 다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산업화와 정보화에 성공한 한국과 자원을 개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교육이 절실한 동티모르는 상호 교류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제자들과 함께 NGO단체를 운영하며 한국과의 교류를 지속해 작은 부분이나마 내가 동참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삶의 보람이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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