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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의 시대역할은 더 높은 수준의 성찰로 안내하는 것”
“계간지의 시대역할은 더 높은 수준의 성찰로 안내하는 것”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12.26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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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김명인 편집주간, 20주년을 말하다

아카데미의 틀과 거시적 프레임이 만나면 일종의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한국적 사유틀을 만들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지금 계간지들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에서 발행되고 있는 계간지 <황해문화>가 1993년 겨울호로 첫걸음을 뗀 뒤 올 겨울 81호로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부산을 중심으로한 <오늘의 문예비평>과 더불어 지역문화운동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는 평이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황해문화>의 편집주간 김명인 인하대 교수(56세·국어교육과)를 지난 16일 광화문 근처에서 만났다.

김명인 교수는 14년째 ‘<황해문화> 편집주간’이란 짐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최원식 교수와 서규환 교수가 편집주간을 맡아 어려운 시기를 헤쳐 오셨다. 궂은일은 그분들이 다 했다”라고 말하는 그는 “출판 사정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지만 <황해문화>가 한길로 달려올 수 있었던 데는 발행재단인 ‘새얼문화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인천에 기반을 둔 풀뿌리 시민재단인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황해문화>를 키워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편집위원’의 실질적 역할도 컸다”라고 공을 돌렸다. 그와 함께 하고 있는 편집위원으로는 백원담(성공회대·중국학), 김진방(인하대·경제학), 김진석(인하대·철학), 권혁태(성공회대·일본학), 이희환(시민과대안연구소·지역문화), 이광일(한신대·정치학) 등이 있다. 실은 이들이야말로 <황해문화>의 문화적 수준, 대안적 사유의 폭을 결정하는 매서운 ‘척도의 눈’들이다. 이들 가운데 김진방, 김진석 교수와 김명인 주간은 동기 관계다. 백원담 교수는 동년배다. 이들의 긴장관계가 흥미로운 ‘기획특집’을 엮어내는 힘이 된다.

이슈의 다면성 제시하는 기획특집 강점
<황해문화> 편집위원회가 여타 다른 계간지와 달리 ‘에꼴’의 형태가 아니라 각 분야 전공자들로 구성된 열린 협의체 방식이란 것도 20주년이란 녹록치 않은 시간의 담금질을 견뎌낼 수 있었던 동력이다. “<황해문화>만큼 편집위원들의 개성이 반영되는 곳도 없다고 본다. 우상파괴적 글쓰기를 강조하는 목소리에서, 공허한 관념성과 추상성을 극히 배제하는 목소리까지 우리 편집위원들의 색깔은 다양하다. 그래서 이들의 개성을 잘 버무려,이슈를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기보다 이슈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대목에서 <황해문화>만의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즉 이슈의 다면성을 읽어낼 수 있게 특집을 배치하는 데 <황해문화>의 강점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황해문화> 역시 새로운 필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필자의 고갈 현상은 계간지들이 직면한 전반적 상황이다. 신문 칼럼과 같은 짧은 호흡의 글로는 도저히 어떤 내공을 갈무리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김 주간은 말한다. “세 달 호흡을 주기로 하는 계간지는 기본적으로 200자 원고지 80매 분량의 글을 요구하는데, 이걸 소화하기 쉽지 않다. 젊은 연구자들은 논문에 쫓기고, 일간지에 칼럼을 싣는 필자들도 칼럼만으로는 어떤 내공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점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황해문화>가 다른 어떤 매체들보다 더 파격적인 필자 찾기에 주력하는 지도 모른다.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것, 구체적 대안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 필자의 지명도보다 그가 새롭고 구체적인 대안 혹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다. ‘文名’보다 거칠더라도 실제적인 고민이 담긴 목소리를 지면에 배치하겠다는 <황해문화>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명인 편집주간은 조금 늦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은 그의 선배인 최원식 교수 말고는 어떤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인하대에서 1998년 박사학위를 받고 그 이듬해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의 권유로 <황해문화> 편집주간을 덜컥 맡았다. 1999년 겨울호를 그렇게 해서 만들었다. 2000년부터 <황해문화>는 표지 편집부터 변화하면서, 5:5 비율로 ‘전국적 이슈-인천’ 문제를 다루던 방식에서 벗어나 8:2 비율로 전국적 발언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무가지였던 <황해문화>를 유가지로 전환하기도 했다.


“물론 인천 지역 분들의 불만도 많았다. 인천 문제를 왜 적게 다루냐는 지적이었다. 그렇지만 특집을 통해 꾸준히 전국지적인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감을 갖게 된 게 변화의 출발점이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우리 슬로건처럼, 전지구적으로 사고하는 데 더 무게를 실은 셈이다.” 눈길 끄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 그래서 <황해문화>는 매년 1회 지역문제를 특집으로 내걸어 왔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지역특집을 통해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를 외부 시선에서 읽어낼 수 있도록 꾸렸다.

정통 잡지저널리즘의 쇠퇴와 새로운 도전
<황해문화> 20주년의 의미 가운데 또 하나 눈여겨 볼 부분은 계간지라는 정통 잡지저널리즘의 전반적 쇠퇴 현상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김명인 주간은 계간지 중심의 정통 잡지저널리즘의 쇠퇴가 속보성에 경도된 저널리즘의 선정주의와, 서구이론에 경도된 폐색된 아카데미즘에 의해 만들어진 여론장의 기형적 이원구조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지적한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수구꼴통’, ‘종북좌빨’과 같은 흑백 이분법적 도식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신자유주의 물결 이후, 생존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가 되면서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가치에 대한 합의 부재마저 부추기고 있다. 사회적으로 동의 가능한 대의의 어젠다를 계간지들이 제시하면 좋겠는데, 지금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김 주간은 현실의 논리와 아카데미즘의 틀 사이에서 실천적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그는 아카데미즘이 지나치게 서구추수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아감벤, 랑시에르, 들뢰즈, 푸코를 좇아가는 걸로는 작금의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역동성을 담아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한국 계간지 역사를 보자. 이들이 사구체논쟁, 분단체제론, 민족문학론 등 다양한 어젠다를 이끌어내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아카데미의 틀과 거시적 프레임이 만나면 일종의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한국적 사유틀을 만들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지금 계간지들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김 주간은 <황해문화>가 에꼴 형태를 탈피하고, 해석의 깊이와 일관성을 포기하는 대신, 다양한 이슈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강점을 얻었다고 말한다. “<조선일보>든 <한겨레>든 속보성 저널리즘의 날것의 선택에는 강력한 현실사회의 정치편향성이 개입해 있다. 여기에 독자들의 타성이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나쁜 악순환을 깨고 사건과 사태, 이슈를 다르게 보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좀 더 높은 수준의 성찰 단계로 우리 사회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우리 <황해문화>가 어느 정도 해왔다고 자부한다.”


생존이란 문제 앞에 삶의 중요한 덕목과 가치들이 원경화되고 말았다고 지적하는 김명인 편집주간은 사실 2004년까지 치열한 ‘비평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이후 ‘비평가’ 김명인보다는 <황해문화> 편집주간,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살아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동시에 아우르는 비평적 작업을 준비했지만,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중단해야 했다. 올해 사범대 학장직까지 맡아 대학 행정에 참여하고 있으니, 본래 비평가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의 심정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황해문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서, 이 행위를 비평행위로 위안삼고 있다.”

<황해문화> 20주년 기념호는 특집으로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마련했다. 지난한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왔던 사람들, 팍팍한 삶에 던져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어느 정치철학자가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에 <황해문화>의 방식으로 응대한 셈이다. “46명의 목소리를 통해, 정말 핍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그래도 삶을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뭉클함을 받았다. 이것을 눈여겨본다면,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을 촉발하는 파괴력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 <황해문화> 편집주간으로서 그가 지닌 소망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또한 그것은 그의 내부에서 늘 흘러나오는 뜨거운 개인적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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