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55 (금)
숙원 사업 인문정신문화진흥법 발의 … 보수-진보 논의 넘어서려는 시도도
숙원 사업 인문정신문화진흥법 발의 … 보수-진보 논의 넘어서려는 시도도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2.23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3년 인문사회분야, 어떤 일이 있었나

2월, 40돌을 맞은 한국일본학회(회장 권혁건, 동의대)는 ‘동아시아의 일본연구’를 주제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해 지난 연구 성과를 성찰했다. 1천200명의 회원, 17개 대학 연구소, 8개 산하학회 등 급속도로 성장해온 과거를 돌아보고 일본어 수강자가 급감하는 현 위기상황에서 질적 성장과 내적 충실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3월에는 국내 80여 인문학 단체가 가입한 한국인문학총연합회(회장 김혜숙, 이화여대)가 체계적인 인문학 지원을 위해 ‘한국의 인문 진흥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3년, 5년 단위의 연구보다 30년, 100년 단위의 DHK 사업을 추진하자는 과감한 주장이 제기됐고, 이는 10월 국회에서 문광부 주도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인문정신문화진흥법’ 발의로 이어졌다. 교육과 연구의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문광부의 업무 협조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학계의 지적에 지난달,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내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설치됨으로써 두 부처뿐만 아니라 외교부 등 타 부처와의 협력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대선 화두 논의한 사회학계

4월, 5월은 공히 사회학계가 뜨거웠던 시기로 볼 수 있다. 한국사회학회(회장 정진성, 서울대)는 지난 대선 가장 큰 화두였던 ‘복지’‘경제민주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특별 심포지엄을 두 달에 걸쳐 개최했다. 사회학자 뿐 아니라, 정계, 언론계, 시민사회계 대표 인물들이 참여한 열띤 패널토론은 편집 보완을 거쳐 지난 20일 열린 후기사회학회에서 두 권의 총서라는 성과물로 발간됐다. 또한 2002년 작고한 프랑스 사회학의 거장 피에르 부르디외의 유고가 그의 제자에 의해 발견돼 언어가 다른 13개 저널에 출판됐으며, 한국사회학회의 학술지인 <한국사회학> 제47집에 실리기도 해 사회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열어줬다. 또한 서울대 사회과학원(원장 백창재)가 5월 ‘삶과 인류의 후기근대적 대전환: 동서양을 넘어’를 주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사회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는 서양의 원리와 이념으로 해석됐던 20세기와는 달리 후진국과 선진국이 동시에 엮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과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했다. 토론에서는 국가주의 개념을 넘어서 방법론적 세계주의야말로 현 사회학이 처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돌파구라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창립 60주년 한국교육학회의 회고와 반성

6월에는 창립 60주년을 맞는 한국교육학회(회장 김명수, 한국교원대)의 연차 학술대회가 ‘한국교육학 60년, 그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한국교원대에서 열렸다.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방송공사 등 교육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해 그 규모면에서도 컸지만, 식민지 교육을 청산하지 못했던 교육1세대, 4·19혁명 이후와 5·16군사정권에 잠식당한 이후의 교육 세대들의 문제점을 짚으며 한국 교육 60년사를 회고하고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성을 역설한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의 기조강연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전 60주년 맞아 평화 모색한 7, 8월

또한 50돌을 맞은 철학연구회(회장 곽신환, 숭실대)가 ‘‘세대’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20대부터 70대까지의 철학연구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각 세대별 철학연습의 추이와 오늘의 한국 사회와 세계를 보는 시각을 대비한 이 학술대회에서는 각 세대의 자기 성찰적인 진솔한 고백에 이어진 세대를 뛰어넘는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파격적인 형식으로 정형화된 학술대회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7월과 8월에는 한반도 정전 60주년을 맞아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도 잇달아 열렸다. 북한연구학회(회장 최진욱, 통일연구원)와 역사문화연구소(소장 김동춘) 등이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 정부와 함께 추진했던 대북 제재정책이 오히려 북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경색 국면을 벗어난 한중관계가 더욱 긴밀해져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한 통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서 “현 휴전협정을 항구적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잠정적 한반도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런 학계의 움직임은 최근 통일연구원(원장 전성훈)이 추진하고 있는 국내외 학술대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점검과 미·중·일·러와의 공조 해법 모색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전 60주년 기념으로 다채롭게 열린 학술대회들에서 많은 공감대를 얻었던 것은 평화협정을 위해 종래의 열강 구도에서 벗어나 남북‘당사자’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논의였다.

‘웰빙’의 실패에서 도래한‘힐링’

지난해 방송계, 출판계를 강타했던 ‘힐링’ 열풍은 인문학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대선 직후 관심을 끌었던 영화「레미제라블」(톰 후퍼 감독, 2012) 등 영화와 문학에서 힐링인문학의 징후를 찾은 교수들도 있었고, 힐링 이전의 키워드인 ‘웰빙’에서 힐링의 도래를 도출해낸 교수들도 있었다. 자아개발, 능력 있는 인간을 추구하던 사회에서 ‘웰빙’을 추구하는 사회 로, 그리고 ‘웰빙’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가 ‘힐링’을 불러냈다는 해석이다. 힐링으로서의 인문학 열풍은 종래의 대안인문학에서 새롭게 파생된 갈래로 볼 수 있다. 대학에서 생산된 인문학적 지식을 노숙자, 제소자 등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실천인문학, 마을인문학은 대학 밖과 소통하는 인문학으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이는 인문학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실천인문학의 한 갈래였지만, 최근 이 자리를 대체한 것은 힐링인문학이다. 지난 2010년 문을 연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총장 이혜성)가 치유가 필요한 시대에 수요가 급증하는 상담사를 배출해내며 약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품위 있는‘죽음’으로 확장

학계에서는 힐링인문학의 일환으로, 8월 강원대 인문치료사업단(단장 김남연)이 HK사업 연구주제인 ‘인문치료’를 예술과 인문학 이론 융합으로 확장해 학술대회를 열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작업은 올해 영상제작치료로 확장돼 더욱 관심을 끌었다. 힐링에 대한 관심은 ‘웰 다잉’, 죽음으로 이어졌다. 5월에 고려대 철학연구소(소장 이승환)와 한국싸나토로지협회(회장 전세일 SDL의료재단 병원장)가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철학적 싸나토로지’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철학자들과 사회학자, 의학자들이 모여 무의미한 연명 치료, 품위 있는 죽음과 임종,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 호스피스와 싸나토로지제도 등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펼쳤다. 특히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인 사전의료의향서가 소개돼 학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죽음’에 대한 새로운 학문 영역인 ‘생사학’을 연구 어젠다로 내세운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소장 오진탁) 역시 3월 ‘죽음’과 ‘죽음문화’에 관한 담론이 개방적으로 소통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 분야에 석학인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는 편의주의에 매몰된 현대사회의 죽음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9월은 ‘교학사 교과서’ 문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한국사 수능 필수화’ 문제가 제기된 시기였다. 교육부가 2017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학계에서는 국·영·수에 편중된 시험제도 개선 없이는 또 하나의 암기과목 추가라는 비판이 일었다. 뒤이어 뉴라이트 성향을 띄는 한국현대사학회 연구진들이 주요 필진으로 참여한 ‘교학사’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하자, 친일, 독재 부분이 미화됐다는 학계의 지적을 시작으로 역사학계의 논쟁이 시작됐다. 더불어 신임 국사편찬위원장 내정자 유영익 교수에 대한 학계의 반발도 일어나며 대한민국을 나누는 두 개의 시선인 진보·보수 이념 논쟁이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돼 일베 논란 등 수많은 소모적인 논쟁을 양산했다. 특히 고려대 학부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촉발된 청년세대들의 참신한 일종의 정치 참여마저도 좌우 편가르기식으로 매도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역사 전쟁 불 붙힌 교과서 논란

10월에는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김용구)이 작정하고 보수와 진보를 논의했다. ‘보수·진보의 개념과 역사적 전개’를 주제로 열린 제5회 일송학술대회에서는 좌우, 이념으로 극한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 구분이 시기별로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정당의 구조에서 파행될 수밖에 없는 보수·진보의 어젠다 설정과 단일 이슈 다루는 정당 출몰을 예상하기도 했지만, 보수와 진보의 대화를 말하기 이전에 각 진영 내에서부터 소통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공감을 샀다.

국문학과 국어교육을 위한 연대체 결성

또한 10월은 국문학계에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였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국문학, 국어교육학 분야 학자들이 모여 급속한 세계화 시대에 우리말과 글의 가치를 재인식해 융합의 국어국문학 개발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어 교육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어문학술단체연합회(공동대표 남기탁)를 구성했다. 전국 43개 국어학, 국문학, 국어교육, 한국어교육 분야 학회가 가입한 한국어문학술단체연합회는 지난 10월 우리말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는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기념하는 언어정책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쉬운 언어가 초래하는 사회적 효용을 강조하며 학술언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 영어 일변도인 학계에 경종을 울렸다.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