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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m 높이 집 짓는 건축술의 대가!
9m 높이 집 짓는 건축술의 대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3.12.1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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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95_ 흰개미

드넓고 깊숙이 자연을 들여다보면 생물들은 죄다 서로 돕지 않고 사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나쁜 놈, 기생충’하지만 그 또한 먹고 먹히는‘먹이그물’의 한 코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다. 늘 말하지만‘어머니 자연(mother nature)’께서는 한사코 쓸모없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 말썽꾸러기 흰개미(termite)와 단세포생물인 원생동물의 한 종류(편모충)인 트리코님파(Trichonympha spp.)들이 공생을 하니, 흰개미는 트리코님파에 삶터를 제공하고, 트리코님파는 고래심줄 같은 섬유소를 분해(소화)해 흰개미에게 양분을 제공하면서 함께 산다는 이야기다.

흰개미는 얼핏 보면 개미를 닮았다. 이것들은 주로 땅 밑에 살아(나뭇가지에 매단 집을 짓는 것도 있음) 빛을 받지 못해 몸의 갈색색소가 사라지고 하얀 색을 띠기에 ‘흰개미’라 한다. 그들은 대부분 부패 중인 식물, 나무, 잎사귀와 흙, 동물의 배설물(똥) 등의 유기물조각(찌꺼기)을 먹으며,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2천600여종이 세계적으로 널려있으며, 개중에서 10% 정도가 건물이나 곡식, 숲에 해를 입힌다고 한다.

흰개미는 절지동물의 흰개밋과의 곤충이며, 이름과는 달리 개미, 벌, 말벌과는 전혀 다르게 목재를 먹는 바퀴벌레나 버마재비(사마귀)와 더 가깝다. 그리고 개미와 흡사하지만, 개미에 비해 촉각이 곧고, 허리가 잘록하지 않으며, 체색이 흰 것 또한 서로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처럼 사회생활을 하고, 사는 터전이 개미와 아주 비슷하며, 똑같이 군집생활을 해서 수백만 마리의 유충(nymph), 일개미worker), 병정개미(soldier), 여왕(queen)이 한 굴(집)에 산다. 여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몸이 투명하며, 일개미는 하얀색이나 병정개미는 주황색이다. 또 여왕은 일개미와 별로 다르지 않으나 특별히 난소를 여럿 가져서 특출 나게 복부가 불룩하게 부푼다. 처음엔 얼마 크지 않았으나 교미를 한 다음에 몇 배로 늘어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에 일개미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옮긴다. 말해서 ‘알 낳는 기계'가 돼버리고 만다.

흰개미여왕은 하루에 보통 2천개의 알을 낳으니 한 평생(100년 사는 것도 있음) 내내 낳은 산란 수가 무려 50억 개에 달한다고 한다. 자기보다 작은 夫君과 함께 왕실의 모퉁이에 머무르며, 항상 많은 시녀들이 양껏 먹여주며 제반사를 떠받쳐 돌봐 주기에 오직 산란에만 전념한다. 이들은 불완전변태를 하기에 알에서 깨인 어미 닮은 어린유충은 자라서 곧장 성충이 된다.

국내에는 흰개미와 집흰개미 등 2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흰개미는 죽어라 막힌 길을 뚫고 잘린 길 이어가며 기어이 전국에 퍼져나가 온 사방에 자리 잡았으며, 집흰개미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극히 드물게 산다. 가장 쉽게 채집할 수 있는 곳은 고목의 그루터기로, 조심스럽게 겉을 걷어내고 파들어 가면 하얀 개미가 우글거린다. 한때 목조건물인 해인사 절의 기둥이나 서까래를 싹싹 파먹어 골치를 썩였던 놈들이다. 흰개미가 일단 건물에 침입하면 목재뿐만 아니라 종이, 옷가지, 카펫 따위의 섬유성인 것들은 마구 먹어치운다.

그런데 열대 사바나 지역의 흰개미 집은 보통 높이가 2~3m이지만 아프리카 및 오스트레일리아에는 큰 집채만 한 9m가 넘는 집을 짓는 무리도 있다. 흰개미의 건축술은 만만치 않아 무척 교묘하고 정교하다. 보통 집을 땅 밑이나 쓰러진 커다란 나무둥치 속에 짓지만 땅위에다 지상의 집도 지으니 그것이 유명한 흙더미인 개미언덕(anthill)이다.

다음은 흰개미의 창자 속에 사는 트리코님파 차례다. trichonympha의 tricho는 ‘털’, nympha는 ‘아름다운 여인, 소녀’를 뜻하며, 흰개미무리에 공생하는 공생생물이(공생체)다. 흰개미의 창자에 사는 트리코님파는 실제 크기가 약 300㎛이고, 모양은 영락없이 눈물방울을 닮았으며, 나무부스러기나 식물섬유를 삼켜 세포내소화를 한다. 단세포인 이 편모충은 흰개미의 後腸에 사는데, 미토콘드리아가 없어 혐기성이며, 무기호흡인 해당작용(glycolysis)에만 의존해 에너지를 얻는다. 사실 흰개미 창자엔 이 편모충 말고도 가늠조차하기 어려운 200여종의 미생물이 득실거린다고 한다.

사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고, 소나 염소 따위의 초식동물도 그렇지만, 흰개미도 나무섬유소(다당류)를 먹기만 했지 전혀 분해를 못한다. 대신 뱃속의 트리코님파가 다당류인 섬유소를 셀룰로오스분해효소인 셀룰라아제(cellulase)를 분비해 셀로비오스(cellobiose)라는 간단한 물질(이당류)로 소화시킨 다음, 또 다른 효소인 셀로비아제(cellobiase)를 분비해 아주 간단한 포도당(단당류)으로 분해하니, 비로소 이 포도당을 흰개미가 얻어먹는다. 그 숙주에 그 공생생물이라고, 트리코님파는 흰개미가 아닌 다른 생물에서 절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생물특이성’이라 한다. 암튼 “세상에 공짜 없다”라는 말도 되새겨 볼 만한 대목이다.

섬유소를 먹는 곤충과 그것을 소화시키는 공생생물의 관계는 여태 보았다. 흰개미는 트리코님파에 집을 빌려주고, 트리코님파는 대신 집세를 흰개미에게 낸다. 이렇게 유독 둘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숙명적인 만남이요 연분이다. 서로서로 끼리끼리 애써 아끼고 도우면서 살아야지 怏怏不樂으로 척지고 지낼 까닭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곤충이나 원생동물 녀석들보다 못해서야 어디 쓰겠는가. 共生이 곧 相生인 것이니 마땅히 늘 서로서로 거들고 도우며 살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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