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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삭풍 앞에서
구조조정의 삭풍 앞에서
  • 임영일 / 경남대
  • 승인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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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임영일 / 경남대·사회학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연말을 보내고 이제 다시 새 해를 맞았다. IMF를 성공리에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고 떠들썩하게 ‘밀레니엄’을 경축하고 있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그 1년 동안 한국 사회는, 그리고 특히 한국의 노동자들은 다시 경제난과 실업의 삭풍 앞에 다시 서고 말았다. IMF 위기의 와중에서 일자리를 잃었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주가 폭락으로 그나마 퇴직금조차도 다 날려 버리게 된 사람들도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또다시 몰아치고 있는 구조조정의 광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게 된 노동자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를 찾지 못하고 격렬하게 저항의 몸짓을 계속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구조조정이 과연 절박하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방법과 내용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구구하게 다시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 과정을 넘기게 되면 우리 경제는 다시 나아질 수 있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의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이 사회의 칼자루를 쥔 자들이 반복해서 설파하는 거짓의 논리는 더 이상 참고 듣기 힘들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은 단순히 은행과 기업의 경영구조를 더 효율적인 것으로 개편해 나가는 경제적인 작업이 아니다. 그 이면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의 해체이다. 국가(정부)와 사회의 사이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살아남은 자들과 떨려난 자들 사이에, 기회를 잡은 자와 놓친 자 사이에, 다시 메우기 힘든 깊을 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친족관계가 깨어지고, 이웃관계가 무너지고, 크고 작은 공동체적 인간관계가 흐트러지는 과정이다. 해체된 사회 위에서 재건되는 경제란 어떤 경제일 수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살아 남기 위한 경쟁 속에서 서로를 불신하며 교류하는 경제관계란, 그것이 설혹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일 수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인간의 경제일 수 없다.


대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학생들은 이제 자신의 경제적 생존의 전망과 직결되지 않는 것은 공부라 생각하지 않는다. 학문과 과학이 인간과 인간의 사회에 가장 필요한 지적, 기술적 기반을 제공해 주리라는 믿음은 이제 한국의 대학에서는 사라졌다. 나의 생존과 안녕에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없는 지식을 위해 단 한시간도 낭비할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다. 대학 스스로가 자기 생존과 경쟁력을 위한다는 명분 속에서 스스로를 구조조정하고 있는 과정에 있으므로, 그들을 탓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열악한 조건 속에 학생들을 방치하고, 제자이자 후배들인 조교들과 대학원생들과 시간강사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권위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일을 추구해온 것이 우리 자신들이다. 이 사회를 약육강식의 비인간적인 경제적 경쟁터로 바꾸어 가는 과정에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 대학교수들, 나 자신의 큰 한 부분이 오히려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음을, 적어도 더 큰 용기와 목소리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사회연대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연장선 위에서, 구조조정의 삭풍 앞에 선 이 시대의 노동자들에게 비록 위안의 말은 될 수 없다 해도 함께 나누어야 할 뼈아픈 반성의 말은 한 마디 던져야 할 듯하다. 신자유주의의 강풍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온 취약한 사회적 연대의 구조 위를 휩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동조합을 가진 조직노동자와 비조직 노동자간의 균열, 학력을 매개로 한 사무관리직과 생산직간의 차별과 대립,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무관심,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대기업 노동자들의 연대의 회피,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새로 배출되는 신규노동자들에 대한 무관심, 실직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결여, 그 모든 것을 반영하는 취약하고 고립분산적인 노동운동은 다른 누가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존의 노력이 답이 될 수 없고, 단지 연대적 사회운동을 통한 공동체적 질서의 복구만이 대안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너무나 한가로운 이야기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뿐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광풍을 경험해온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 모두가 뼈아픈 경험을 통해 다시 확인해온 이야기이다. 바람 앞에 단지 머리를 숙이기보다는 한 단으로 묶일 자기 옆의 다른 풀들을 널리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바람이 지나간 이후의 세상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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