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출신 김경임 중원대 교수, 「몽유도원도」 재해석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이 걸작의 ‘사라진 시기’다. 미술사학계의 통설은 안평대군이 제거되는 ‘계유정난’(1453) 직후에 「몽유도원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난이 있기 전에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연 그는 어떤 근거에서 ‘정난 전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먼저, 급박한 현실론이다. 계유정난의 밤에 안평대군의 집에서 「몽유도원도」를 빼돌리는 것은 정황상 어렵다는 것. 한순간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안평대군의 집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다음은 작품의 뛰어난 보존 상태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외상이 거의 없이 온전한 상태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더구나 1960년경까지도 화려한 색채와 꽃술을 그린 섬세한 금채가 잘 보존돼 있었다.
이러한 점을 들어 김 교수는 “이 서화 작품이 많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처음부터 서화 보관에 최적인 장소에서 귀중하고도 조심스럽게 보관돼왔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몽유도원도」는 계유정난의 난리 통에 급박하게 피신됐다기보다는 정난 이전에 이미 안전한 장소에 잘 보존돼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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