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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학자의 도발적 문제의식 … “고조선, 메소포타미아문명 속에서 바라보자”
한 일본학자의 도발적 문제의식 … “고조선, 메소포타미아문명 속에서 바라보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11.19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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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문명론』(박이정 刊 ) 출간한 김채수 고려대 교수


‘알타이’는 ‘황금’이란 뜻이예요. 알타이 산맥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황금빛이 나거든요. 朝鮮, 아사달, 아수르 이건 모두 동쪽, 아침 해가 빛나는 지역이란 의미입니다. 끝없이 해가 뜨는 지역을 향해 나간 과정들도 이들 문명의 연결고리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가 펴내는 국내전문학술지인 <인문과학연구>(2013.6)에 보면 한 편의 눈에 띄는 논문이 실려 있다. 「물질현상과 우주의 팽창과정」 이란 논문이다. 필자는 ‘김채수’ 고려대 교수다. 조금 이상하다. 김 교수는 고려대 일어일문학과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부터 올해 학술지를 통해 계속 발표한 논문 목록을 보면 이렇다. 「단군조선과 일본고대국가」(<日本語敎育>, 2012.12), 「생명현상과 지구의 우주공간이동」(<인문과학연구>, 2012.12), 「일제의 대륙침략양상과 그 요인 고찰」(<일본근대학연구>, 2012.11), 「요하문명과 황하문명과의 관련양상」(<일본문화연구>, 2012.10), 「요하문명과 고조선의 실체」(<일본연구>, 2012.8), 「글로벌리즘(Glibalism)의 본질」(<철학논총>, 2012.6),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과 고조선」(<동북아 문화연구>, 2012.6), 「인간의 의식 활동과 지상 이동」(<동서철학연구>, 2012.6), 「글로벌 시대란 어떤 시대인가―문명사적 측면을 통해」(<일본근대학연구>, 2012.5), 「고대 알타이문명과 일본천황가」(<일본문화연구>, 2012.4) 등이다.


그런 그가 730쪽 분량의 책 『알타이문명론』을 들고 나왔다. 고조선을 이해하는 열쇠가 요하문명이며, 이 요하문명은 알타이문명의 동진에 영향받아 형성됐고, 알타이문명은 다시 메소포타미아문명에 연결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담은 책이다. 만일 앞에 열거한 논문들을 보지 않고 책을 펼친다면 다소 당황할 지도 모른다. ‘분과학문’ 즉 학과체제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그의 넘나듦이 불편하게 비칠 수 있다. 아니 ‘불편’해 보인다. 김 교수의 박사논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짙게 든다. 그는 쓰쿠바대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질현상과 우주팽창, 고조선, 요하문명, 알타이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 요즘 말로 ‘통섭·융합’에 해당하는 그의 연구와 저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학개혁의 현장’ 쓰쿠바대와 학제적 훈련
1949년 생인 김 교수는 내년 8월에 정년퇴임을 한다.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70학번이다. 1976년 일본으로 국비유학길에 올라 1984년에 공부를 마쳤다. 고려대에는 1985년 3월에 부임했다. 그동안 그가 펴낸 책들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연구』(1989), 『동아시아문학의 기본구도 Ⅰ·Ⅱ』(1995), 『일본 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문학』(1997), 『글로벌 시대 일본문학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2001),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연구』(2004), 『문화비평과 과정학』(2005),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2005), 『日本右翼의 활동과 사상 연구』(2008), 『글로벌 문화이론과 과정학』(2009), 『학문과 예술의 이론적 탐구』(2010)가 있다. 그런데 이들 논문과 저작의 연결점을 짚어보면, 그의 저술은 하나의 큰 체계 안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세부적인 ‘깊이 파기’보다 큰 틀의 ‘넓게 보기’를 주특기로 하고 있다. 약점인 동시에 강점이다. 이것은 그가 자라난 고려대 영문학과라는 지적 분위기와 그가 국비 유학을 가게 된 쓰쿠바대의 분위기에서 형성됐다. 그가 진학할 무렵 고려대 영문과에는 여석기, 김종길 등 내로라하는 당대의 교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3학년 때 정종화, 김우창 교수 등 젊은 학자들이 새로 왔다. 그는 단 하나의 ‘수업’도 빼먹지 않고 들었다고 말한다. 폭 넓은 주제를 탐색하기 좋아했던 이런 지적 분위기가 정년을 앞둔 그에게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쓰쿠바대 유학은 김종길 교수가 흘러가듯 말한 “앞으로 비교문학이 제대로 각광받게 될 것”이라는 한 마디에서 촉발됐다.


1970년대 영문학을 공부한 젊은이가 쓰쿠바대에서 발견한 것은, 약동하는 학문의 현장이었다. 당시 일본은 홋카이도 해저터널 공사, 나리타공항 신축, 그리고 쓰쿠바대 건립 등 이른바 3대사업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였다. 쓰쿠바대는 일본 대학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된 일종의 ‘대학개혁 실험장’이었다. “일본은 근대화과정에서 분과학문체제에 갇혀 있었어요. 국문과, 영문과 이런 체제 말입니다. 도쿄대의 비교문학이 유럽식으로 나라와 나라간의 특성을 비교하는 데 무게를 뒀다면, 쓰쿠바대의 비교문학은 ‘보편적 문학’을 강조하는 미국식을 고수했죠. 어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 다루는 한에 있어서는 모두 다 관련돼 있다는 생각을 열어뒀던 것입니다.”


비록 2013년에 『알타이문명론』을 펴냈지만, 그의 관심은 이 유학시절 이미 싹터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가와바타를 공부하다보니 우익의 내셔널리즘 문제가 걸렸다. “그래서 그 문제 저변을 살펴보니, 우익과 천황, 우익과 천황제 왕정복고에도 눈이 가게 됐죠. 전근대의 어떤 사상, 일본 사상을 계발하는 역할을 일본 근대문학이 수행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저의 지적 관심사 였죠.”


유학을 마치고 모교에 자리를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아니, 제가 공부한 이런 내용들, 일본의 제국대학 출신 문인들의 활동, 그들의 문학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그게 다 천황제를 옹호하고 문학적으로 지지하는 우익의 사상 계보에 놓여 있는데. 그래서 고심하다, 당시 반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에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일본 사회주의자들에게 눈이 갔어요. 그래서 그런 강의를 준비했는데, 당시 전두환 정권 때라 수업시간에 안기부 요원들이 들어오고, 참 살벌했죠.” 그 결과가 바로 『일본 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문학』(1997)이었다. 그런 문제의식은 『日本右翼의 활동과 사상연구』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일본의 우익, 특히 문학자들 예컨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주로 예를 들었다. “그도 역시 도쿄제대 출신이었어요. 문학자라면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데, 측면지원하고 그랬죠. 중일전쟁 발발했을 때, 두 차례 만주로 가서 교육에 나섰거든요. 배를 타고 귀국하기 전, ‘요동반도는 내 정신의 원향’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을 이렇게 측면 지원했던 거죠. 그는 만주 요동을 천황의 나라로 정체화(identify) 하는 일을 했던 겁니다.” 문인들의 이 미세한 감각에서 식민지적 무의식을 읽어낸 김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알타이문명’을 제대로 이해하면 오늘날 일본이 왜 과거사에 침묵하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천황의 원향을 무력을 써서 점령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논리였던 거죠. 그렇게 합리화하고 국민들을 계도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일본 근대문학의 한 계열이 제국주의침략을 합리화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와바타가 고향 같다고 말하던 만주, ‘천황의 원향’이라는 요동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가 보기에 그곳은 바로 고조선의 강역이었던 요하문명지이다. 윤내현, 김정배 등 한국 고대사학계의 주요 이론을 탐색한 김 교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곳에 찬란한 청동기문화를 가져다 준 문명의 기원을 추적하고 싶었다. 실크로드를 추적하면서 김 교수는 알타이산맥 너머에 걸쳐있는 알타이문명, 그리고 나아가 흑해와 카스피해, 지중해까지 걸쳐 있는 메소포타미아문명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지금은 글로벌시대입니다. 전지구적 관점, 마치 저 우주에서 지구라는 푸른 공을 바라보듯 그런 관점으로 문명의 교섭과 형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 내셔널리즘적 시각, 여기서 좀 더 진보한 리저널리즘(regionalism)적 시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글로벌리즘적 시각에서 우리 한민족의 기원과 문화적 형성과정을 추적해볼 수는 없을까,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글로벌리즘적 시각은 사실 그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던 20년 전에 이미 착안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立論은 다분히 논쟁적이다. 그는 역사가의 섬세하고 꼼꼼한 실증성 대신에 문명의 형성과 전개라는 큰 틀을 한 눈에 조망해볼 수 있는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즘적 시각에서 고조선 연구 필요성 제기
확실히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그는 메소포타미아문명-알타이문명-요하문명-고조선 이 등식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로 천손강림 신화, 대형고분, 황금숭배, 청동기문화의 전파 등을 꼽았다.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환인의 아들 환웅만 봐도 쉬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한 가지 독특한 시각을 제시했다. 알타이지역 특히 우르무치를 세 번이나 다녀왔다는 김 교수는, 황금숭배를 ‘아침 해가 뜰 때의 빛나는 순간’의 상징적 변이로 이해하고 있었다. “알타이산맥은 7천킬로미터에 걸쳐 있어요. ‘알타이’라는 말은 ‘황금’이란 뜻인데, 이게 아마도 해뜰 때의 그 빛나는 광채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알타이 산맥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황금빛이 나거든요. 그걸 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朝鮮, 아사달, 아수르 이건 모두 동쪽, 아침 해가 빛나는 지역이란 의미입니다. 끝없이 해가 뜨는 지역을 향해 나간 과정들도 이들 문명의 연결고리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 교수가 『알타이문명론』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세 가지 동력이 작용한다. 앞서 설명했던 ‘자유로운 학제적 분위기’에서의 공부, 일본 우익의 활동과 제국주의 확장에 대한 비판, 그리고 방법론으로서의 ‘과정학’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 그리는 동선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이것을 하나의 방법론(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연구재단지원을 받아 작업중인 『과정학 원론』도 그런 방법론의 모색을 담고 있는데, 2005년과 2009년에 쓴 ‘과정학’ 관련 책이 모태가 되고 있다. “내년 8월이면 정년입니다. 알타이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긴 해요.

한 십년 정도? 갑골문에 보면 SOV, SVO형 신텍스가 등장합니다. 전자가 70%, 후자가 30%정도라고 하더군요. 요하문명이 한민족에 의해 주도됐다는 건 이런 언어적 요소를 살피면 확실한 것 같아요. 갑골문을 통해 동서문명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통일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과정학을 좀 더 확장해보는 일인데, 지금 고민 중이에요. 뭘 할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는 느릿느릿 말했지만, 말에 힘이 가득했다. 분명 그의 책과 주장은 곳곳에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원을 향해 회귀하는 연어처럼, 민족의 고유한 시원을 응시하는 큰 시선을 하나 탁 던지면서,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분과학문의 벽에 갇혀 자기 학문만 연단하는 게 아니라, 학문과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유영하는 자유로운 사유의 더미를 풀어헤친 것이다. 문득 창문을 바라보니,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연어가 숨을 고르며 저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황홀하게 비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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