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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함께 한 다산과 재물의 상징
긴 세월 함께 한 다산과 재물의 상징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3.11.1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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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94_ 돼지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十二支중에서 마지막 亥는 돼지다. 집돼지는 멧돼짓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 산돼지를 馴致한 것이다. 그것을 품종 개량한 것이 우리 토종돼지를 포함해 요크셔, 버크셔 등 여러 품종이 있다한다. 산돼지가 말 그대로 공격적이고 猪突的(‘猪’는 돼지나 산돼지를 이름)이라면 집돼지는 길이 들어서 순하다. 그리고 돼지는 새끼를 열 마리 넘게 낳아대니 多産을 상징하고, 돼지(豚)의 한자발음이 돈(화폐)과 같아서 돼지가 재물을 뜻해, 사람들은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 또 돼지해에 태어난 돼지띠는 잘 산다고 한다.

돼지는 잡식성으로 몸통에 비해 다리가 짧고, 껍질과 피하지방이 아주 두꺼우며, 눈이 작은 편이고, 유달리 꼬리가 말린 것이 몽탕하다. 발가락은 4개씩이고 그 중 2개가 크고 짜개진 발굽인데, 소와 돼지는 발굽이 둘인 偶蹄類이지만 말(馬)은 한 개로 奇蹄類다. 그리고 돼지는 목통이 아주 굵고, 삐죽한 입 위에 뚱그렇고 두꺼운 肉質이 있으며, 거기에 콧구멍이 뻥 뚫려있다. 주둥이가 튼튼하고 길어서 땅을 잘 판다는 말인데, 잘 보면 돼지주둥이는 코와 윗입술이 따로 없이 둘이 하나로 붙었으며, 코끼리 코 또한 코와 입술이 합쳐진 것이다. 또한 코끼리의 象牙는 앞니가 길어난 것이라면 산돼지의 뻐드렁니(엄니)는 송곳니가 변한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는‘도야지’가 표준어였다. 말도 진화(변화)한다. 돼지의 원래 말은 ‘톹’이었는데 그것이 ‘도야지’, ‘도치’로 불려졌다 한다. 또한 도 개 걸 윷 모(돼지, 개, 양, 소, 말)가 달리기를 한다! 윷놀이에서 ‘도’는 돼지의 곁말이 아닌가. 그리고 ‘돼지’라거나 ‘돼지 같은 녀석’하면, 아무거나 잘 먹거나 욕심이 많으며, 몹시 무디고 미련한 사람을 비유하며, 뚱뚱한 사람을 놀림조로 쓴다. ‘똥돼지’란 말은 그래도 귀염성이 잔뜩 묻어있는 놀림 말이라 하겠다.

동네방네 감나무 밭에서 네 다리 꽁꽁 묶인 꼬마 돼지를 누여놓고 불을 깔 때나, 다 큰 成豚의 멱을 딸 때‘꽥~꽥~꽥~꽥’동네방네가 떠나가게 내지르던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돼지 불알 따는 소리’말이다. 새끼 수퇘지의 생 불알은 사금파리로 까니 去勢(castration)라는 것으로, 그래야 얌전하게 잘 자라며 살코기에서 수컷냄새(지린내)가 나지 않는다. 모질고 잔인한 인간들, 罪는 지은 데로 가고 德은 쌓은 데로 간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장골이 꽁꽁 묶인 돼지에 올라타 누르고선 예리한 칼로 목 줄기(기도와 식도)를 따서, 푹푹 숨결에 쏟아지는 피를 함지박에 받았으니 순대용이다.

그리고 집집이 거름을 얻기 위해서라도 돼지를 한두 마리씩 키웠다. 꿀꿀 꿀돼지는 고기에다 기름, 가죽, 내장, 갈비, 털, 피, 족발까지 준다. 돼지기름으로 전을 부치고, 피와 내장(대장)으로 순대를 만들며, 뼈다귀로는 감자탕을 해 먹으며, 옛날에는 억센 털을 구두 솔로 썼다. 그뿐인가. 웃음 띤(?) 입 벌린 돼지대가리를 祭物로 바치니 사람들은 그 앞에 절하고, 아가리에 돈을 꼽는다. 돈이 돈을 물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돼지족발은 우리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멕시코 인들과 중국 사람들도 즐겨 먹는 것을 봤다.

그런데 돼지를 잡는 날에는 우리 조무래기 꼬마둥이들도 한껏 기대에 부푼다. 손질하는 물가에 까지 따라가서, “다, 가져가라!”하고 아랫도리에서 떼어 던져주는 오줌보쟁탈전이 벌어진다. 돼지오줌보를 얻어다가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어 논바닥에서 뻥뻥 공차기를 한다. 늘 가는 새끼를 둥그렇게 둘둘 말아 찼던 볏짚 공에 비하면 돼지 방광 공은 펑! 펑! 소리뿐만 아니라 물컹하게 발등에 닿는 감촉까지 그리도 좋았다. 콧물 줄줄 흘리면서 공차기 하던 그 어린 시절은 정녕 다시 오지 않는 것일까. 정녕 세월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일까.

그런데 어쩌다가 산돼지가 그렇게 많아졌단 말인가. 도시근교에는 물론이고 한가운데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생태계는 참 오묘하게 얽혀 있고, 먹고 먹히는 복잡한 관계에서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성립한다. 알고 봤더니 산돼지의 포식자가 없으니 무적 멧돼지가 된 것이다. 사람에게도 덤비는 놈들이 아닌가. 먹이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범, 늑대들이 차지해야 할 터인데 얄궂게도 산돼지가 그 자리에 올라서 판을 친다. 개체수가 늘어나다 보니 끼리 먹이와 삶터다툼질이 일어나 힘 약한 놈들이 밀려나니 그것들이 도회지에도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묏등의 지렁이를 잡아먹겠다고 封墳을 파헤치는 것은 다반사이고. 나쁜 놈들!

돼지는 참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다. 당뇨가 덧나 아주 심하게 되면 결국 인슐린주사를 맞는다. 생체인슐린으로는 주로 소나 돼지의 췌장(이자)에서 뽑은 것을 쓰는데, 소 인슐린보다 돼지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고 하며, 이렇게 척추동물의 호르몬은 사람 것과 아주 흡사하기에 동물의 것을 사람에 쓸 수 있다.

그리고 無菌돼지를 들어 봤을 것이다. 그 돼지의 심장이나 콩팥 같은 臟器를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해 그렇게 키우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장기와 돼지의 것은 아주 닮았고, 크기도 비슷한 탓이다. 부부가 닮는다더니만, 긴긴 세월 우리와 같이 살아온 돼지라 사람을 닮은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그들을 닮는 것일까?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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