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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_ 지역미술, 풍성한 볼거리에 잃어버린 전문성
세평_ 지역미술, 풍성한 볼거리에 잃어버린 전문성
  • 정명주 대구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 승인 2013.11.0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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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주 대구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지역미술계는 요즘 대형 전시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데 여념이 없다. 각 지자체마다 비엔날레, 프로젝트형 전시, 국제교류전 등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당연히 지역미술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실정들이다. 지금 한국의 예술판은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눈에 띄는 전시, 유명한 이름과 풍성한 모양으로 동시대성의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나 맛있는 요리를 먹고 나서도 허기진 것처럼 전시를 보고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 동안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마음 한 곳을 차지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대구지역에서도 올해 수많은 전시들이 이뤄졌다. 대구시나 문화재단 등에서 주최하는 전시의 규모와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늘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현재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대구예술발전소. 옛 KT&G 창고를 국·지방비 16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이 곳에서는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올 4월 28일까지 ‘대구예술발전소; 수창동에서’라는 개관 전시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박영택 이하 5명의 감독들이 전시(1부 ‘매너와 풍경’과 2부 ‘나에게 너를 보낸다’), 포럼(정체성·미래·상상력)과 만권당 워크숍 등 전시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시는 이 전시를 통해 대구예술발전소를 국제레지던시와 복합예술공간으로 조성하고 시민을 위한 문화플랫폼의 역할을 두루 수행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역의 언론 및 기획자들은 개관전시가 주최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운영을 위해 전시를 꾸미기에 급급해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출발하지 못했으며, 지역의 예술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시간도 없이 급조해 지역민뿐 아니라 예술인도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9억6천만원이라는 예산으로 개관전시가 이뤄졌지만, 대구예술발전소의 방향성과 콘텐츠가 불분명한 단일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어 투명하지 못한 행정에 대한 잡음이 무성하다. 무엇보다 주최가 명확하지 못하고 또 예술발전소를 대표할 만한 전문가도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예산 낭비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롭게 단장한 역사적 건물이 문화예술로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구예술발전소를 이끌어갈 관장이나 큐레이터, 매니저 등 운영팀이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현재는 시에서 파견된 직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전문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는 벌써 독일의 ZKM미술관과 MOU를 체결했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협약서이지만 시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성공적인 결과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대구시가 예술발전소에 많은 애정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예술을 책임지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나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 없다는 것으로 비쳐진다. 문제는 이러한 행정적 협약이 지역의 예술을 알리며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가야 할 전문가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 시에서는 묵묵부답인 상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의 한사람으로서 지역예술 행정에 바라는 바는 딱 한가지다. 대형전시도 좋고, 서울이나 해외 기획자를 초대하는 것도 좋고, 시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퍼블릭 위주의 전시도 좋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전문가들에게도 딱 그만큼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어떨까. 글로컬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로컬이 글로벌화 할 수 있는 콘텐츠는 이미 보유하고 있다. 단지 행정이 로컬을 보는 안목과 육성할 수 있는 지속성 그리고 오픈마인드가 필요할 뿐이다.

정명주 대구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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