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1:30 (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 교수신문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속’ 보다 ‘발전’ 택한 세계 회의…反생태적 자본주의 속내 드러내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4일까지
전 세계에서 몰려든 6만여 참가자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린 요하네스버그의 세계정상회의는 환경 단체들로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the World Summit of Sustainable Developement)가 아닌,
‘부끄러운 협상을 한 세계정상회의’
(the World Summit of Shameful Deals)라고 공격받고 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중부 유럽과 동북아시아에는
‘엘니뇨’와 ‘갈색구름’ 때문으로 추측되는
이상 폭우가 쏟아져 환경 재앙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체감하는 환경 문제는 아직 모호한 듯,
이번 회의는 ‘행동’이 없는 공허한
‘말’만 남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교수신문에서는 이번 회의를 바라보는 한국과 유럽의 시선, 국내 전문가가 바라본 환경 문제,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참석중인 시민단체 인사와의 현지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번 회의가 남긴 성과와 의미를 진단해본다.

이번 정상회의는 1992년 리우 회의 10주년을 기념해 열린다는 의미에서 ‘리우+10’이라고 불리며, 당시 권고사항으로 채택된 ‘의제 21’의 주요 시행 내용을 평가하고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겠다는 목적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1백4개국 국가원수, 총리 등 지도자와 1백89개 유엔 회원국 정부 및 비정부기구 대표, 보도진 등 총 6만여 명이 참석하고,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포함한 과학자 1백여 명이 각국 지도자들에게 ‘지구를 재앙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호소하는 등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던 이번 회의의 시작에 부시 미 대통령과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은 불참 선언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은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임하자”며 참가자를 독려했지만, 회의가 진행되면서 뚜렷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자 각국의 시민단체와 언론으로부터 비난이 쇄도했다. 특히 예견됐던 미국의 무성의한 태도는 많은 환경 관련 단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지난해 교토 의정서 탈퇴로 ‘세계 환경의 적’으로 떠오른 미국은 이번 정상회의에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대신 참석, 2010년까지 재생가능한 에너지 비율을 전체 에너지의 15%까지 늘리자는 유럽연합의 제안을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결국 ‘세계 각국은 대체 에너지의 사용을 신속히 늘린다’는 모호한 문구가 이번 에너지 부문의 협상 결과로 올랐다. 그 외 △2015년까지 위생시설이 결여된 상태에서 생활하는 인구수 절반 감축 계획 및 깨끗한 식수 공급 계획 △중국 및 러시아의 교토의정서 인준 등이 미약하나마 이번 회의의 성과물로 평가되며, △2015년까지 생물 종의 다양성 감소를 ‘현저히’ 줄여나갈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 △각국에 농업 및 다른 보조금을 철폐할 것을 요구 △부패와의 전쟁 필요성 강조 및 민주주의와 법치 장려 등의 조항은 구체적인 내용이 결여돼 그 시행여부가 불투명할 전망이다.

“미국은 환경 악의 축”…각계의 우려 쏟아져


붕어빵에 붕어 없듯 5천5백만 달러를 들여 리우 회의 두 배의 규모로 치른 사상 최대 규모의 이번 정상회의가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 없이 폐막되자 전 세계 시민단체는 “예견됐던 바”라면서도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 환경 및 구호 단체를 대표한 세계야생생물기금(WWF)’과 ‘옥스팜’, ‘그린피스’ 등은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회의는 가난한 자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했고, 기후 문제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평했고, ‘지구의 벗(FOE)’의 리카르도 나바로 의장은 “미국은 ‘환경 악의 축(axis of environmental evil)’”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이 “이번 합의는 세계가 처한 기아 빈곤 질병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번 회의는 기실 그 출발부터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지속개발 담당 국무장관인 토키아 사이피가 “미국의 지나치게 완고한 태도가 정상회의의 진전을 해치고 있다”라고 지적했고 AP통신은 지난달 28일 “미국과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정상회의의 행동 계획에 구체적인 목표치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라고 보도하는 등 출발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막대한 규모의 세계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이행된 결과를 집행할 법적 기구나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우려스럽다. 이번 회담에서도 ‘자발적인 노력’ 정도의 문안만이 채택돼, 결국 구체적인 실행은 각국 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이와 관련, “수많은 국제회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환경은 계속 악화됐다”며 “리우 회의 당시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0.7%를 빈국 지원에 내놓겠다고 한 선진국들의 약속도 일부 북유럽 국가와 네덜란드를 제외하고는 지키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환경 정책에 대한 엇갈린 평가


한편 한국의 환경 정책에 대해서도 정부의 긍정적인 자체 평가와 시민단체의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명자 환경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정부 대표단 25명과 시민단체 회원 2백여명 등 총 3백 60여명이 이번 회의에 참가했다. 정부는 그 가운데, 지난 5월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 추진성과 평가보고서’ 결과, 한국이 빈곤퇴치 분야에서 원주민 문제를 제외한 11개 요소 모두, 그리고 보건분야에서 10개 분야 모두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우수국가’로 분류됐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그러나 한국 내 4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리우+10 한국민간위원회’는 한국을 지속가능발전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국가로 평가했다. 그 이유로 민간위원회는 △사회 경제 분야에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는 점 △환경 보전 및 관리 분야에서 녹지 파괴와 에너지 사용량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실제로 한국은 에너지원을 전적으로 원자력, 화력 등에 의존하는 국가로, 재생가능에너지의 사용 비율은 전체 에너지 비율의 2%에도 못 미친다. 이와 관련,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과학사)는 “전 세계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현재 16기 가동 중이고, 앞으로 14기 확충하겠다는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무척 낙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빈곤 퇴치 문제에 있어서도 개도국이 국민총생산(GNP) 대비 0.7%까지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한국은 2001년도에 0.06% 제공하는 데 그쳤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공적개발원조 확대 요구나 환경 친화적인 재생가능에너지를 15%까지 늘리자는 유럽연합(EU)의 주장이 무산되기를 내심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이번 회의는 인류의 공영이라는 이상의 배후에, 시작부터 각 국가와 집단간의 실리 계산이 촘촘히 얽혀진 상태로 시작됐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개발을 포기할 수 없고, 선진국들은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바꿀 수 없으며, 다국적 기업, 특히 에너지를 다루는 기업들은 정상회의를 통해 무역 규제나 체제 변화가 일어날 것을 적극 반대해 왔다. 따라서 세계 환경을 오염시킨 주역들은 오염의 대가로 얻은 힘과 특권을 쉽게 버리고 싶어하지 않으며, 개발에 동참하고자 하는 개도국들 또한 이에 편승함으로써 ‘적극적인 무관심’에 일조한 것이 이번 정상회의가 환경문제에 대한 별다른 합의점을 남기지 못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즉 경제가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는 상황에서 ‘가치’는 ‘물질’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사회학)가 “드디어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적인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연의 적’이라는 본질을 드러냈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더 이상 정부나 거대기업들에게 환경의 문제를 맡긴 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것은 이번 회의가 인류에게 남긴 교훈이자 역설적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