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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소수자’ 조명 통해 한국 사회의 자화상 읽어내다
역사 속 ‘소수자’ 조명 통해 한국 사회의 자화상 읽어내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1.04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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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세션 102편 논문 발표한 제56회 전국역사학대회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대회장 곽차섭, 부산대)는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역사 속의 소수자: 공존과 배려를 위해'를 주제로 제56회 전국역사학대회를 개최했다. 19개 세션에서 102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대회장 곽차섭, 부산대)는 부산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이틀간 ‘역사 속의 소수자: 공존과 배려를 위해’를 주제로 제56회 전국역사학대회를 개최했다. 19개 세션에서 102편의 논문이 발표된 이번 학술대회에서 역사학자들은 그간 소외돼 왔던 소수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포스트모더니즘시대가 환기시켰던 젠더, 소수자 등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동서양 역사의 시간을 넘나들며 연구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공간성에 있어서도 그간 서울, 수도권에 집중됐던 학술대회가 학문의 소수자로서의 지방, 부산에서 개최된 것도 이번 학술대회가 갖는 또 하나의 의의다.

학문의 소수자, 부산에서 열린 학술대회

한국서양사학회(회장 곽차섭)가 주관한 ‘서양사속의 소수자’세션에서 이종찬 아주대 의과대 교수(의학사)는「천만 명의 죽음에 대한 열대학적 탐구」를 통해 1880년부터 1920년까지 40년 만에 사망한 약 천만 명의 콩고인에게 주목했다. 종래의 콩고 근대사가 인류사적 관점이나 생태환경사적 입장에서만 분석됐다는 점에서 이 교수의 연구는 천만 명의 죽음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1884년에 열린 베를린서아프리카회의를 통해 유럽 열강은 콩고를 벨기에의 식민지로 결정했다. 이 교수는 아랍계 노예무역상인들을 몰아낸 레오폴드가 노동력 확보를 위해 200개가 넘는 콩고의 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며 상아와 야생 고무를 획득한 것보다 오히려 수면병을 비롯한 각종 열대 질병의 창궐로 헤아릴 수 없는 콩고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발표를 통해 ‘열대학’이 콩고의 自然史와 인류사 사이의 소통과 대화를 촉발시키고 접속에의 길로 나아가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 역사적으로 ‘유럽을 지방화’하는데 있어서 지리적 축으로 작용해왔던 아프리카에서 서구의 역사지질학적 힘이 콩고에서 어떻게 작용해 참혹한 양상으로 전개됐는지 밝히고 있다. 또한 최근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개념이 여전히 서구중심주의적 발상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린 발표도 있었다. 한국역사민속학회(회장 임학성, 인하대)가 주관한 ‘역사민속학 속의 장애인’세션에서는 조선시대의 환관, 19세기 제주도의 장애인, 맹인 침술·안마·점복업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왕의 남자 환관, 소수자로서의 삶과 생활」을 발표한 장희흥 대구대 교수(역사교육과)는 환관과 권력, 혹은 환관에 대한 정책 연구에 머물렀던 기존의 환관 관련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1천 명 내외의 환관 내부의 권력 투쟁과 자체적인 경쟁을 통한 가계 계승을 추적한 것이다. 장 교수는 환관 역시 이상적인 가정을 형성하기 위해 입양으로 대를 잇고, 벼슬 물려주기를 통해 자신만의 계파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한국교육사학회(회장 박연호, 광주교대)가 주관한 자유패널 ‘역사속 비주류 집단의 교육’에서도 조선 후기 소수자인 서얼들과 역관가계에 주목했다. 이상규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조선후기사)는「역관 가계의 형성과 양반 관료층의 견제」에서 단순 통역사를 넘어 외교관의 업무까지 수행했던 역관들이 부를 축적하던 17세기 전반에 기득권 세력인 양반의 견제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역관 가계 혹은 중인 가계가 형성되면서 이들이 조상의 분묘에 5척이 넘는 비를 세우며 관직·직함을 써넣는 일이 생기자 양반 관료들은 사대부처럼 분묘에 추증 관직을 새겨 넣지 못하도록 하고 2척 이상의 비는 깨뜨리도록 조정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역관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성장한 1710년대에 이르면 이런 금령이 무의미할 정도로 선대의 묘를 꾸미고 비문을 화려하게 새기는 일이 성행했다고 덧붙였다.

富 축적한 역관 견제한 기득권 양반 세력

로컬리티 인문학을 어젠다로 연구 중인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소장 김동철)의 자유패널 ‘소수성과 로컬리티’에서 차철욱 부산대 교수(한국현대사)는「한국전쟁 여성피란민의 전쟁경험과 생활」을 통해, 그간 한국전쟁에서 남성중심의 전쟁경험과 가부장적 질서에서도 소외됐던 여성피란민들의 삶에 주목했다. 차 교수는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 정착한 여성피란민들의 거주-노동-휴가라는 패턴으로 이뤄지는 생활 주기 분석을 통해 여성들이 경제활동 참여에서 자신들의 삶을 능동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이 결합된 시장에서의 여성피란민의 삶을 근거로 제시했다.

대부분의 분과 세션이 역사 속의 소수자에 집중했지만 역사가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자유패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일 역사교과서 소송의 의미와 평가’가 바로 그것. 여러 발표 중에서도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 명예교수「일본의 교과서 재판의 개요와 교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92년 집필에 참여한 신교육과정용 교과서『신고교현대사회』의 근현대사 부분에서 문부성 검정관이 4군데 수정을 요구했지만 이에 불복하고 국가를 상대로 100만엔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었다. 1심에서는 검정관의 일부 지시가 재량권을 벗어났다고 판단해 20만 엔 지급을 결정했지만, 이후 2심에서는 결과가 뒤집혔고 2005년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재량권의 일탈이 아니다’며 다카시마 교수의 역전 패소를 결정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카시마 교수의 발표는 현재 사학계의 화두를 넘어서 이념 투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한국의 교과서 문제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역사와 동떨어질 수 없는 현실

또한 국제한국사학회(상임공동대표 반병률, 한국외대)가 주관한 ‘해외학계와 한국학계의 한국사 이해에 대한 쟁점’ 자유패널에서는 조선사회와 고려시대를 바라보는 국내외 학자들의 시각차가 집중 조명됐다. 윤영인 영산대 교수(전근대 동아시아국제관계사)는 「서구학계 한국사 개설서의 고려시대 서술의 문제점」에서 서구 대학의 한국학 강의와 연구가 여전히 근현대시기에 치중돼 있다는 점, 특히 강의 내용이 20세기 일본식민통치와 한국전쟁, 전후 경제개발과 민주화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학문적 상황으로 인해 한국을 ‘전통이 없는 나라’ 혹은 중국의 문화를 모방한 나라로 인식하는 서구 학자들의 선입관이 재확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서구학계의 한국학 연구에 한국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기존 서구학계의 선입관(중국·일본 중심의 시각)의 문제가 중첩돼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오류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간 소외됐던 소수자에 대한 역사학계의 폭넓고 심도 깊은 연구를 보여줬다는 점, 서울·수도권을 탈피해 소외됐던 지방, 부산에서 개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곽차섭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대회장“다양한 함의를 가진‘소수자’를 돌아보는 불편한 대면을 통해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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