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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에 대한 고민 공유
문학사에 대한 고민 공유
  • 이강옥 영남대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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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이강옥/영남대·국어교육과

“나는 국문학사 강의의 첫 시간을 마치고 내 연구실에 들어가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내 옷깃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뒤에 알았다.” 민족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국문학을 연구한 도남 조윤제 선생은 해방되던 해 한국문학사 강의를 시작한 소감을 이렇게 술회했다.

대학 교수가 된 1986년부터 한국문학사 강의를 시작해 지금까지 16년간 계속해오고 있다. 도남 선생처럼 비장하지는 못했지만 강의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려고 애썼다. 한국문학사 강좌는 학생들에게 한국문학 공부의 벼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문학사가 최소한 20년 간격으로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말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문학이 끊임없이 조망돼야 한다는 뜻이다. 조동일 교수의 ‘한국문학통사’는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근간으로 기술된 대표적 한국문학사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의 1, 2, 3 권을 교재로 선택해왔다. 학부 학생들에게 한 한기 동안 세 권의 책을 읽게 한 것은 무리였는 지 모른다. 책값도 만만찮아 언제나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그런 데다 여기서 한술 더 떴다. 분단 체제의 남한에서 나온 ‘한국문학통사’는 ‘반쪽 문학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분단 시대 한국문학사에 대한 공부는 통일을 위한 문학 부분의 간절한 모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예비교사들에게 반쪽의 문학사만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1982년 김일성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조선문학사’(천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문학통사’를 읽어가며 ‘조선문학사’와 비교했다. 5, 6 명으로 구성된 모둠들은 통일 문학사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마음가짐을 흩뜨리지 않고 함께 공부하며 발표와 토론을 준비했다. 수업시간에는 내가 총괄적인 설명을 한 뒤 발표단이 발표를 한다. 발표요지는 맡은 시기의 문학사적 특징, ‘한국문학통사’와 ‘조선문학사’의 기술내용 및 서술방식 소개,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비판을 담아야 한다. 토론단은 발표단 수준으로 깊이 공부해 와서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발표단이나 토론단에 속하지 않은 학생들도 두 책을 읽고, 문제점이나 질문사항 등을 정리해 온다.

남북한 문학사를 비교하면서 남한 자본의 위력이 문학 연구에도 나타나는 걸 절감하게 됐다. ‘봉건 통치배의 악랄함’이나 ‘비판적 지식인의 제한성’이란 말을 되뇌는 북한 문학사는 북한 경제력의 빈약함을 반영하는 것일진대 연민이 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인민의 아름다운 도덕성’을 찾아가는 따뜻한 시선에서는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북한문학사가 1926년을 현대의 원년으로 잡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15세 소년이 조직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북한 체제의 출발이 되는 까닭을 해명해주는 데는 금단의 정보가 필요했다. 여전히 근대에 머물고 있는 남한에 비해 북한은 이미 근대를 극복하고 ‘현대’에 접어들었다고 표방했다. 통일 문학사가 이 차이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학생들도 어느덧 그 고민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문학사를 보려 애썼다. 학생들이 보여준 그런 열정은 나에게 크나큰 힘이 됐다. 치열하고 알차게 한국문학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긍지를 학생들도 간직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간 우리 학생들은 두 책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많이 밝혀냈다. 마침 조동일 교수가 ‘한국문학통사’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하니 그 결과를 정리해 보내드리겠다. 지방대학 학생들의 패기 있는 생각이 더욱 온전한 통일 문학사를 탄생시키는 한 계기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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