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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의 해석에서 金冠의 상징 분석까지 … 태양숭배사상의 문화적 내면화 독해
神의 해석에서 金冠의 상징 분석까지 … 태양숭배사상의 문화적 내면화 독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10.08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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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동 교수의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지금까지의 줄거리

<교수신문>이 지난 2월 18일(672호)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金洋東 계명대 석좌교수의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은 7월 22일(694호)까지 와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사실 연재 내용은 김 교수가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연구해왔던 신선한 콘텐츠이지만, 그가 역사학이나 고고학·미술사학과 거리가 먼 서예·전각 전공자라는 점에서 논의의 제한성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가 제기한 ‘해석고고학’이 취약한 현실에서 그의 고대문화 원형 해석론에 엄격한 실증의 잣대를 적용해 논의를 한정하는 것보다는 그가 제안하는 미적 해석의 가능성을 경청하는 것이 한국고대문화론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홍익대에서 예술철학을 가르치다 퇴임한 김복영 서울예대 석좌교수는 “오랫동안 서구 이론에 의존해 우리 문화와 미학을 해석해왔는데, 퇴임후 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교수신문>에 연재중인 김양동 교수의 ‘상징과 해석’ 글을 보면서, 그의 작업이 새로운 미적 해석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어느 자리에서 의미를 짚어냈습니다.

그는 또 김양동 교수의 작업을 두고 “역사학이나 고고학의 지평에서보다 신화론과 종교학의 영역에서 더 비중 있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론적 체계와 학제적 연구 작업이 뒷받침된다면 향후 한국 고대문화의 심층을 ‘한국적 시각’에서 빼어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12회부터 연재를 재개하기에 앞서 1회에서부터 11회까지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이 어떤 내용을 담아왔는지 개략적으로 복기함으로써, 이후 전개될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神의 해석
한국 고대문화 원형 탐구의 핵심이 신화연구라면, 신화연구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작업의 기초적 순서를 따지는 문제가 된다. 문제의 차례는 신화의 주 대상인 ‘神’의 정체성부터 먼저 밝혀내는 작업이 첫째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출간된 신화 연구서들을 훑어보았지만, 신화의 주 대상인 ‘神’이 무엇이냐 하는 그 정체성을 밝혀낸 이론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서양 모델에 기초한 이론의 차용이 아닌 한국적 해석방법에 의한 ‘神’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위한 수단은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필자는 동양적 해석법과 한국적 해석법 두 가지를 일차적 해결의 요결사항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동양적 해석법은 한자 ‘神’자의 字解를 통한 문징으로 ‘神’의 정체성을 밝혀보는 일이다. 둘째, 한국적 해석법으로는 한자 ‘神’자에 대응되는 순수 고유어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고유어를 추적한 구징으로 ‘神’의 正體와 變體를 밝혀 보는 일이다.


즉 한자 ‘神’자의 字解를 기존 중국식 해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申(神)’의 정체성을 살펴보면, ‘神’자의 古本字는 ‘|’이고, ‘|’은 빛살(햇살)을 상형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神’자의 자해를 번갯불 상형 또는 手奉柱形으로 보는 중국 문자학계의 설을 따르지 않고 ‘부랄’이란 구징에 근거해 ‘神자는 인간의 생식을 위한 남녀의 교합을 문자화한 것’이라는 字解는 보다 새로운 주체적 발상의 견해로서 한국적 해석의 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字解는 1996년에 필자가 처음으로 제시했다(「한국추상회화의 원형」, <미술세계>1996년 9월호, 미술세계사, 59~61쪽).

2~3. ‘神’의 순수 고유어와 고대상징의 세계
언어는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의사표현과 전달의 수단으로서 오랫동안 사용돼온 도구이기 때문에 그 기층에는 독특한 사상과 문화적 특징이 반영돼 있다. 특히 부족이나 민족이 사용한 단일 언어의 경우 그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언어는 인간 사유의 창문으로서 그 속에는 이미 삶의 역사에서 형성된 지적 이미지층이 깊이 내장돼 있다. 그러므로 한자 ‘神’에 대응되는 순수고유어를 추적, 재구함으로써, ‘神’이 한민족의 의식과 사상을 표현하는 언어 속에선 어떻게 인식돼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신화론에서 어느 학자도 ‘神’과 한국어의 상관성을 연구한 예는 없었다. 언어가 인간 사유의 원천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신화의 주 대상인 ‘神’이 한국어에선 초기에 어떻게 표현됐을까? 그 말이 역사를 통과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변천돼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는 것은 신화연구의 기초단계에서 당연한 질문일 것이다.


연재 1회 분에서 漢字 ‘神’자의 古本字는 ‘|’이고, ‘|’은 빛살(햇살)을 상형했다는 문징을 한 바 있다. 그렇다면 태양의 ‘빛살과 햇살’에서 공통되는 음절인 ‘살(sal)’이 ‘神’의 고유어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그래서 口徵에 의한 ‘’을 어원으로 했음직한 어휘군을 조사했다.


태양을 神의 원형으로 사유의 시원을 삼은 것이 天孫族의 의식세계였다. 태양의 최초 한자는 ‘日’이다. ‘日’의 고유어는 ①날 ②해 ③살 ④불 네 가지가 있다고 추정된다. 이 네 가지 어휘의 공통점은 단음절이란 점과 원인은 모르겠지만 세 가지 음절의 종성 받침이 ‘ㄹ’이란 점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 처음 사용하는 초기언어의 세계에선 다음절일 수 없는 것이 원시어의 특징이다. ‘日’의 고유어 중에서 전회에서 살펴본 ‘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해’와 ‘날’이다. 이들을 분석한 결과 태양의 순수고유어 즉 神자 연구에서 걷어 올린 키워드와 거기에서 분화된 상징어들을 통해, 한국 고대문화의 시원적 성격에 대한 보편성은 물론 특수성까지도 발라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4. 한국 최초의 문양 ‘빛살무늬토기’의 상징과 해석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에 대한 해석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등장한 ‘빗살무늬’에 대한 상징해석을 여하히 하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최초의 문양에 대한 상징해석이 존재하지 않고선 한국고대문화의 원형에 대한 설계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문화의 초기 유물에 저장된 정보의 해석은 시원적 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가늠하는 바로메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빛살무늬에 대한 상징 해석이 명쾌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은 그 즐문토기(빗살무늬토기)란 용어 속에 사고력이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즐문토기 또는 빗살무늬토기로 인식해온 그 문양의 명칭은 문양의 발생 원리를 모르고 잘못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오류를 밝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토기를 엎어놓고 문양을 평면으로 환치하거나 엎은 토기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해바라기와 같은 태양문이 되는데, 이것이 태양의 빛살을 문양화한 명확한 物徵이란 사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이런 사실과 증명 때문에, ‘빗살무늬’는‘빛살무늬’라고 고쳐 불러야 하며, 동시에 우리의 시원사상에 대한 해석도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태양의 광망을 표현한 삼각문은 후대에 와서 銳角이 부드럽게 처리돼 기물의 상·하단에 빙둘러가며 시문됨으로써 마치 연꽃처럼 보인다. 때문에 흔히 연화문으로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청자나 분청사기의 연화문은 형태적 유사성만을 취한 명칭일 뿐, 굳이 불교와 습합될 이유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양은 불교적 연화문에 그 연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광명을 상징하는 태양문의 빛살무늬가 변용된 사례로 재인식할 것을 주장한다.


태양처럼 둥근 기형에 표현되는 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그 발상의 공통점은 빛살의 광망을 표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고대문화의 정보를 해독하지 못한 채, 유물을 무조건 불교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시각은 재검토와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란 명칭은 고대문화의 상징성을 해석한 바탕위에서 이름 붙여진 명칭이 아닌 즉물적 명칭이다.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최초로 등장한 이 문양에 대한 해석은 태양숭배의 원시종교적 사유가 기호화된 고대정보의 창고라는 인식하에 재해석할 때, 시원문화의 원류에 대한 상징과 해석은 비로소 그 첫걸음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巴形銅器의 기원과 상징
파형동기의 출현은 유목민인 북방의 흉노와 선비족들이 그들의 고유한 태양숭배사상을 문양으로 표현해 여러 가지 기물에 사용한 것이 그 배경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파형문동기의 기원은 태양숭배의 원류사상에 있는 것이지, 일본의 주장처럼 오키나와 연안에 서식하는 뿔 모양의 조개인 스이지가이의 모양을 모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오르도스 지역에서 출토된 파형동기도 태양문이 아니고 조개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논리가 된다. 파형동기의 기원이 북방과 남방이 각각 다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일본 고고학계는 이 銅器의 제작이 그 당시 자체기술로 제작된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청동기 기술이 유입된 것인지, 유입된 것이라면 한반도를 경유한 유입인지, 중국에서 직접 유입한 것인지, 그런 것부터 먼저 밝혀야 될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더라도 1~2세기의 고대 일본이 외부의 기술도입 없이 고도의 청동기를 제작할 수준에 이르렀는가 하는 의심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유입경로를 생각한다면, 일본열도에서 만들어진 청동파형기가 거꾸로 금관가야에 유입됐다는 문화의 역류현상은 신뢰할 수 없는 구석이 많은 주장이다.

그러므로 대성동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정보는 새로운 발언으로서 일방적인 일본 고고학계의 주장을 반론할 근거가 된다. 따라서 대성동고분의 파형동기가 왜계유물이라는 종래의 주장에 대해 일정 부분 불가피한 수정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거듭 말하지만, 파형동기의 상징은 태양이 끊임없이 회전한다고 믿은 고대인들이 태양의 기운을 문양으로 변환해 시각화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바퀴 문양과 동일한 개념이다. 바퀴의 회전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 한다.

6. 청동기시대 銅鏡과 銅鈴
선사시대의 이른바 기하학적 문양에 속하는 雷紋, 渦紋, 同心圓紋, 鋸齒紋, 波狀文등은 모두 태양숭배사상에 바탕을 둔 빛살무늬의 변형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런 유물의 명칭엔 반드시 태양의 빛살이라는 고대정보가 깔린 이름을 지어야 고대문화의 원류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개, 소용돌이, 동그라미, 톱니, 물결 등 피상적 이미지만 심게 돼 ‘왜?’라는 질문에 이해를 돕기는커녕 도리어 혼란만 가중되는 계통의 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각적 의기의 동경과 청각적 의기인 동령에 문식된 부호들은 태양의 이미지를 형식언어로 변환해 최고 존자가 지닌 권위의 상징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그 기능은 다르지만 상징의 내용은 동일한 성격임을 고찰했다.


동경은 청동기시대 통치자가 지니고 있는 권능의 상징물로서 분권시에는 중앙에서 내려주는 頒賜物이자 빛의 아들, 해의 자손, 천손임을 증명해주는 神物임을 상징하고 있으며, 청동방울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소리를 전달하는 소통의 의기로서 특히 한국에서만 출토되고 있는 팔주령은 전체 조형과 문식면에서 태양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동경과 동령을 총체적으로‘ 神意의 상징물’이라고 해석한다.

7. 琵琶形 銅劍
비파형동검의 상징을 해독하기 위해 살펴본 내용은, 첫째 이 동검을 사용한 문화주체는 요하유역을 중심으로 태양숭배의 원시신앙을 가지고 생활한 古東夷族 계통이란 사실, 둘째 이 동검의 용도와 기능은 최고 존자가 사용한 巫具와 같은 儀器의 성격이라는 점, 셋째 이 동검의 조형이 상징하는 의미는 태양을 意符한 주인主 즉 불꽃봉오리를 아름답게 디자인한 형태라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비파형동검은 불꽃봉오리를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상형한 태양숭배족의 표지물로서 지도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심볼인 의기 또는 무구라는 것으로 그 상징성을 해석하려고 한다. 청동기시대 동경과 동령 및 비파형동검은 형태와 문양에서 태양의 神意를 상징한 神物이란 공통성이 증명된다. 맥락상 그 성격들이 같은 유물임도 알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위와 같은 종합적인 해석에 의해 비파형동검의 명칭을 ‘청동 불꽃형 神(巫)劍’으로 명명하면 어떨까 하는 방안을 제시해 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8~9.고대 새 숭배사상의 原流와 한국의 고대문화
새 숭배사상의 원류를 『三國志』 「魏志·東夷傳」 ‘弁辰 條’나 또는 고구려 고분의 삼족오를 언급하는 정도에서 찾는 일부 시각에는 무리가 있다. 마치 삼족오가 고구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三이란 숫자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한국의 고대사상이 모두 거기서 나온 것처럼 논리를 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하모도문화와 양저문화의 두드러진 새 숭배의 유물은 陽鳥骨刻文을 비롯해 ‘옥으로 만든 매’, 玉璧上의 鳥紋, 여항시 반산 묘장구 11기좌의 묘에서 출토된 수많은 玉冠狀器 등이 있다. 양저문화의 유물은 대부분 새 중에서도 맹금류인 응조류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이다. 이것은 새 토템사상이‘태양=솔개=으뜸 지도자’를 등가물로 인식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솔개, 소리개, 수리는 모두 정상, 봉우리, 으뜸을 의미하며, 그 어원은 태양의 고유어 ‘살’에서 분화된 말임을 총론에서 이미 밝혔다.


특히 관식인 옥관상기는 규모가 비록 작지만, 비상하는 새의 간결하고 추상적인 디자인과 아주 精微한 새김은 美의 極品이라 할만하다. 옥관상기의 面에 역시 새의 문양과 신비로운 神人像이 線刻돼 있는데, 이것 역시 고대에 새를 어떻게 인식해 유물에 반영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새 숭배사상은 태양을 意符한 天神의 使者인 새와 생식의 심볼로서 난생설화의 모태가 된 새로 복합 상징됐다고 할 수 있다.

10. 고구려 折風의 기원과 語源

먼저 절풍의 어원에 대해서 ‘折’이 ‘東’이란 자료를 확보했다 .『山海經』 「大荒東經」에 ‘日月所出 名曰 折丹 - 東方曰折, 來風曰俊 - 處東極以出入風’ 이란 문징을 보았다. 그 외에 『禮記』 「祭法」에서, 그리고 胡厚善과 丁山의 논문에서 ‘折’이 ‘東’이란 해석 자료를 더 확보했다.

‘折’이 ‘東’의 의미라면 ‘折風’은 ‘東風’이란 의미가 된다. 그런데 東風을 다른 명칭으로는 ‘晨風’이라 하는데, ‘晨風’은 『詩經』 「秦風」과 「晨風」에서, 『爾雅』 「釋鳥」, 『廣韻』등에서 보이는데, 해석하기를 솔개(鷹類, 鷙類, 鴟類)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풍’의 어원은 ‘折風 → 東風 → 晨風 → 솔개(鷹)’로 해석된다. 고구려 민족은 솔개처럼 강인하고 날쌔며 용맹하기도 했지만, 태양숭배사상과 새 숭배사상을 생활 속에 실천했으며, 그것을 그들의 고유사상으로 발전시켜 나간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조상이다.

11. 신라 금관의 기원과 상징의 세계

닭은 그 울음으로써 최초로 새벽을 알리는 새다. 그래서 태양과 동방을 상징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볏이 태양의 광망을 닮고 있는 점을 인식했던 고대인은 닭을 솔개(뒤에 봉황으로 상징됨) 다음쯤으로 태양의 등가물 위치에 올려놓는다. 경주를 鷄林, 始林이라 부르는 것도 신성한 닭으로 대신한 태양의 원형적 이미지, 즉 ‘탄생의 땅’, ‘광명의 땅’, ‘시원의 땅’이라는 의미를 문학적으로 윤색한 말이다.


신라 金氏 왕족이 김씨로 氏稱한 이유도 그 母型의 원리는 그들이 태양숭배족임을 표방한 姓氏이다. 굳이 알타이를 거론하지 않아도 이해되리라 믿는다. 고대 군주는 태양과 같은 신적 존재로 절대 권력과 통치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 위상에 맞는 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초기에는 태양문과 태양문의 상징인 화염문(불꽃무늬)을 간박한 형태로 표지하다가, 점차 관식에 草華形, 唐草形, 蓮花形, 瑞鳥形 등이 가미된 미적 장식성으로 변환되는 디자인적 진화가 이뤄진다. 거듭 말하거니와 金冠의 기원은 시베리아 샤먼의 무관이나 김알지 신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숭배사상을 기본원리로 삼아 태양의 화염문과 새(솔개)를 군왕의 심볼로 관식화한 원류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또한 상징적 의미를 전혀 해명하지 못하면서 山字形, 出字形 식으로 이름 붙이는 것은 ‘빗살무늬’ 식의 즉물적 명칭과 다를 바 없으며 고대사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임을 천명한다. 동시에 나뭇가지[樹枝形] 세움장식, 사슴뿔모양[鹿角形] 세움장식이란 명칭도 그 형태에 따라 의미를 추론하고, 북방 유목민의 샤먼사상과 연계함으로써 금관의 기원을 삼으려는 발상인데, 그것 또한 고대 사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접근방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움장식 꼭대기의 상징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종전의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하다.

 ⑴ 寶珠(하트, 양파, 복숭아 상징 등) : 김원룡, 김열규, 김병모 ⑵ 러시아 비잔틴 교회 양식의 돔으로 해석 : 존 코벨 ⑶ 神樹의 움, 촉, 순으로 생명력 상징 : 임재해 세움장식을 수지형, 녹각형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그 조형적 양식이 태양숭배의 화염문을 簡化한 디자인적 구성에서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움장식 꼭대기의 상징은 불꽃봉우리가 그 원형이 된다.

동이족의 고대관식은 그들 사유의 원형을 시각화해 상징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상징이 관식을 비롯해 服飾, 巫具, 馬具, 武具 등에 시문되는데, 나무나 사슴은 태양을 앞서는 최고의 숭배대상물이 결코 될 수 없다고 본다면, 초기 관식의 디자인은 태양 그 자체가 아니면 불꽃무늬 즉 화염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뭇가지와 사슴뿔에 이론적 근거를 자꾸 찾다보니 神樹, 宇宙木 등 구름잡는 식의 표현을 쓰고, 신라 금관보다 천년 이상 下代인 시베리아 샤먼 관을 예로 들게 된다. 기존학설에 매몰되지 말고 해체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탐색해 그 상징을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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