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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내용에 대한 합의가 더 중요
교육 내용에 대한 합의가 더 중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9.23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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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에 대한 역사학계의 시선

지난 2005년 MB정부는 한국사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변경했다. 이후 수능에서 한국사 선택 비중은 점점 낮아져 지난해 전체 수능응시자 대비 국사 채택률은 7.1%까지 내려갔다. 특히 올해부터 사회탐구 선택과목이 2개로 줄어들면서 한국사의 선택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사 수능 필수화에 대한 역사학계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역사인식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일단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국·영·수로 편중된 시험제도의 본질적 보완 없이는 다른 사회과목들과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칠 것이라는 우려감이다.

한국사 전공 교수라면 당연히 수능 필수과목화가 타당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김영하 성균관대 교수(한국고대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했다. 첫째는 국가적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국사지식을 함양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 둘째는 국사학과를 졸업한 제자들의 일할 공간을 넓힌다는 도의적 영역이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인간의 사고 영역에는 공간적 사고와 시간적 사고가 있는데, 역사학이 시간적 사고를 통제하는 학문이다. 수천 년간 우리 몸에 DNA로 내재돼 있는 역사를 교육을 통해 어떻게 체화됐는지 알려주는 것이 역사교육이 할 일이다”라고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그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의 교육은 이성적 판단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라 교육 시수와 필수 과목 선정을 위한 로비가 오가는 과목들 간의 살벌한 싸움판”이라고 지적했다.

중·고등학교 일선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를 배출하는 역사교육과 교수들의 고민은 김영하 교수의 그것보다 더 깊이 들어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교원대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과목 전체의 재조정 없이 국·영·수 과목을 그대로 둔 채 한국사만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다? 결국 사회과목 선생님들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 같다. 사회탐구 영역에서 수능필수 과목은 4->3->2개로 줄어들었다. 한국사를 필수로 지정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10개 가까운 사회과목 중에 한 과목만 필수 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다. 나머지 과목을 모두 죽이는 거다. 공교육 정상화를 생각한다면 모든 과목에 시험을 봐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한국사 수능 필수화가 학계에서 제기된 주장이 아니라 정부 주도하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역사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하일식 연세대 교수(사학과)는 “원론적 차원에서 얘기해서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이 되면 학생 부담이 가중되지만, 워낙 학생들 역사인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한국사 수능필수화가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한 것인지에 대한 우려로 입장 표명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집권여당의 역사모임과 관련해 탄력을 받고 있는 한국사 수능 필수화가 이대로 통과되면 ‘국정교과서’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역사학자들 사이에 팽배해있기 때문이라고 하 교수는 말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한 역사교과서를 예로 들며 “비뚤어진 가치관으로 쓰여진 교과서로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도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는데, 엉뚱한 책이 공교육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며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도 교육 내용에 대한 합의 없이는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태 교수 역시 한국사 교육이 중립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사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선정되는 것에 대해서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는 “과거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역사교과서편찬부터 역사교육에까지 정치권력의 과도한 개입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헌법정신에 위반된다거나 사회 통념, 건강한 상식에 위배된다거나 외국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정도의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라면 역사학계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교육내용에 대한 합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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