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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제의 침략 실체 보여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100년 전 일제의 침략 실체 보여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 교수신문
  • 승인 2013.09.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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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군 주둔의 역사 현장 ‘용산기지’


서울의 중심부 남산에 올라 용산 쪽을 바라보면 마천루가 솟아있는 빌딩 사이로 넓은 녹색 숲이 보인다. 용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곳, 바로 주한 미8군 기지다. 용산에는 임진 조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임오군변 때는 청군이, 청일전쟁 승리 후 다시 일본군이 주둔했다. 러일전쟁 이후 한국주차군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용산 일대는 군사 도시로 급속히 변모했다. 한국주차군사령부는 1918년 한국주둔군사령부로 편재를 바꿨는데 그 사령부는 이전처럼 용산 기지에 있었다.

용산 기지 시설과 부지가 해방 이후 그대로 미군에 넘어가면서, 이곳은 100년 넘게 우리의 땅이 돼 본 적이 없는, 비극의 땅이 됐다. 조선시대 용산은 국내 유수의 江港이었다. 전국 물자의 대부분은 배로 한강변 용산, 마포, 서강에 들어왔는데, 그 중 용산에서는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및 경기도 상류의 稅穀을 집하했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일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도성 방위에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 조일전쟁 때 일본군은 한양을 점령하고 용산 등을 본거지로 작전했고, 평양 전투, 함경도 방면에서 패전한 일본군도 이곳에 주둔했다. 명나라 군대와 和戰 교섭을 했던 장소도 이곳이었다.

100년 넘게 외국 군대가 주준했던 곳
용산은 1884년 8월(양력 10월) 開市場이 됐는데, 개시장 용산에 최초로 입주한 외국인은 프랑스인 신부였다. 조불수호통상조약(1887)에 의해 선교의 자유가 인정되자 프랑스는 용산에 신학교를 건축해 1891년 완성하였다(현 성심수도원, 성심여고). 인천-마포 간 증기선의 왕래가 성행하자 화상 동순태(同順泰) 등은 증기선을 구입해 용산-인천 간을 왕복, 취항하고, 용산에 전용 부두를 설치했다.

이어 일본 측도 여기에 가담함으로써, 인천에서 주로 행해진 경기도 양곡 거래가 용산, 마포, 서강에서도 활발히 이뤄졌다. 1894년 동학군의 토벌을 명분으로 일본군은 용산 효창원 일대 사령부를 설치하고 만리창 계곡, 효창동 일대, 둔지리(현 이태원동), 서빙고 등지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용산 주둔의 일본군은 청일전쟁의 선도, 주력 부대의 역할을 했다. 러일전쟁은 철도 및 군사기지로서 용산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시대의 용산은 이른바 구용산으로 지금의 원효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다. 현재 서울역에서 한강철교에 이르는 일대는 원래 모래벌판으로 인가가 들어서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경인선 철도 공사의 일환으로 한강철교가 가설되면서 수많은 노동자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1899년 용산역이 세워지고 그 다음 해 경인선 철도가 완공돼 인천에서 용산까지 기차로 화물 수송이 가능해지자, 용산역 주변 지역 곧, 신용산이 활성화됐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경의선 철도 부설을 서두르기 위해 임시철도감부를 설치하고 용산역 동편 광장에 3천940평에 달하는 청사 건물을 1개월 만에 급조해 완성했다. 철도 건설을 위해 파견된 6개 대대병력과 다수의 노동자로 신용산은 흡사 골드 러시 때의 미국 서부를 방불케 했다. 이후 철도 관계 건축물이 세워지면서 신용산은 철도 경영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1906년 일제 군사기지화 작업 시작
한일의정서 제4조에 근거해 일본은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하고, 군용지로서 용산, 평양, 의주 등지에서 1천만 평에 가까운 토지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대한제국에 통보했다. 일본이 남대문에서 한강변에 이르는 300만 평을 군용지로 수용하고 실제 건축에 들어간 시점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통감부가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06년의 일이었다. 이태원 일대 등지의 주민을 강제 이전시키고 대대적인 토목공사와 도로, 병영을 건축함으로써 115만 평이 넘는 광대한 규모의 군사 시설이 들어섰다.

이로써 신용산은 일본 식민통치의 본거지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전쟁기념관, 국방부는 일본의 병기창, 작업장, 기병중대, 야포중대 등이 들어섰던 자리에 세워졌다. 미국과 소련 간 한반도의 38선 분할이 결정된 이후 미군은, 1945년 9월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미군정기가 끝난 뒤 잠시 철수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진주했다. 주한 미군의 심장부 용산의 미군 기지는 바로 일본의 한국주차군사령부, 이후 한국주둔군사령부가 들어선 자리에 들어섰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 한국주둔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를 주한 미군이 한국전쟁 이후 그대로 차지한 것이다.

용산의 미군기지 주변에는 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이 형성되기 시작됐다. 이태원 일대는 미군에게 위락을 제공하는 성매매 산업과 미군과 기지촌 여성을 고객으로 하는 상업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1950년대 후반 이후 급속히 번창했다. 기지촌은 이른바 ‘PX경제’라고 불리는 지하경제의 원천이었고, 미군의 폭력과 그 대중문화를 받아내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것이 다시 한국의 도시 문화에 여과되는 방식으로 이른바 ‘미국 문화’는 한국 사회 전체에 확산됐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이태원은 본격적인 기지촌 문화, 혹은 미군 문화의 산실이 됐다. 미8군 쇼 등을 통해 대거 유입된 서구 대중문화는 한국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60~1960년대 한국 대중문화는 투자와 생산 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 면에서 또한 미군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태원은 일제 식민지의 사회, 문화적 잔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중층적으로 재식민화된 한국의 전반적 상황과 맞물려 있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미군기지 이전이 남긴 과제들 이 용산 기지는 평택으로 이전하고 2016년 반환된다. 2014년 말 용산기지이전협정안(YRP),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협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용산 기지의 이전과 공원화 사업이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최대 이슈는 기지의 오염 정화 문제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기지 내부의 조사가 사실상 거부되면서, 기지 반환 후 공원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오염 정화 비용은 국가 예산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최근 문화재청,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용산 기지 안에 있는 1천245동의 건물 중에서 132동이 일본군 병영 건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의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던 일본군 충혼탑은 미군이 비문만 바꾸어 한국전쟁 전몰 희생자 충혼탑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군 장교 숙소는 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소련군 대표의 숙소로 사용됐고, 현재는 미군 합동군사업무단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출입문 2층 박공에 별이 새겨져 있는 일본군 막사 건물도 원형이 거의 유지된 채 현재 미군 사무동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외 한국주둔군사령부 벙커, 20사단 사단장 관저, 위수감옥 등의 건물도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100년 전 일본의 한반도, 대륙 침략의 실체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유산인 셈이다. 주한 미군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분단사다. 그 기지는 원래 일본 식민통치의 상징이었다. 용산 기지 공원화 과정에서 이러한 전쟁과 아픔의 공간이 어떻게 회복과 치유, 그리고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은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의화단운동 전후의 산동』, 『개항기 재한 외국공관 연구』 등이 있다. 현재 근현대 한·중 외교, 재한 중국인노동자 등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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