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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교육의 근본과 이상’ 우선의 교육
원로칼럼_ ‘교육의 근본과 이상’ 우선의 교육
  • 이홍수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음악교육학
  • 승인 2013.09.0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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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음악교육학

요즈음 무심한 듯 흘려보내도 한두 마디 귀에 남는 우리 사회에 대한 지적이 있다. ‘외형상으로 풍부하고 편리하게 살면서도 내면으로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국민’과 ‘경제와 물질 문명적 삶에는 선두그룹에 속하나 정치와 정신문화적 삶에서 후미그룹에 속한 나라’가 그것이다. 사실이라면 그런 불균형, 부조화의 개인적 삶과 국가의 정황은 무엇에 기인하며, 우리의 교육 양상은 그것과 무관한가. 교육으로 평생을 지낸 내게 짐으로 느껴져 같은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부끄러운 고백과 한 점 권고를 드리고자 한다.
 
나는 오랫동안 교육의 근본과 이상을 외면한 채 전공과목의 내용만을 가르친 ‘敎者’였고, 많은 제자들을 ‘유능은 하되 불행한 지식인’이 되도록 오도했다. 비록 종반에 교육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과목내용을 스스로 사고하며 탐구하도록 이끄는 ‘敎育者’가 돼 소수의 제자들이나마 ‘유능하면서도 행복한 지성인’이 되게 이끌었다 하더라도 ‘교자’였던 그 기간은 아픈 과거로 오래 남을 것이다.

국민의 삶과 국가 정황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정상의 상태라면 그 원인과 책임은 정치와 교육에 있다. 정치권과 교육계가 건국이념과 교육이상을 외면해온 수십 년간 ‘홍익인간’ 구현 의지는 실종됐고, 정치와 사회, 교육 전반에서 ‘추구돼야 할 가치’보다 ‘추구되고 있는 가치’가 앞세워졌다. 보통교육은 단편지식 획득에 매달렸고, 고등교육은 취업방편 습득에 몰두했다. 국가 이상과 교육이념 부재로 현실적 요구에 황급히 대응했던 그 많은 정책들의 결과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런 불합리를 알아차리는 것은 쉬우나 개선이 쉽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정치와 교육의 제도나 과정이 부당, 불합리하다고 평가돼도 개선은커녕 개혁을 명분으로 개악만 일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치와 교육에서 부당한 정책이나 과정, 잘못된 관행이 바로 잡히기를 기다릴 때가 아니라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교육자’의 능력과 노력으로 개선할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대학과 교수사회는 먼저 ‘교육의 근본과 이상’을 다시 확인하고, 근본에 합당하며 이상을 지향하는 교양과목을 편성해야 한다. 대학에 따라 설립목적은 다를 수 있으나 교육의 근본과 이상은 동일하며,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고등교육은 직업교육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실용성을 앞세워 철학, 인문학, 예술 과목들을 교양에서 제외함으로써 합리적 사고력 배양과 인간정신 고양의 기회를 빼앗고 휴머니즘적 감성과 예술 향유의 능력, 창의력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했다.

교양필수의 대명사였던 ‘철학개론’을 제외한 것은 그것이 철학적 지식을 주입했을 뿐 철학적 사고양식을 터득하게 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되지만, 철학교육은 교수방법의 개선을 거쳐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 또한 직업에는 실제적으로 유용하지 않을지라도 인문학과 예술 과목을 통해 인간과 삶을 탐구하고 생명체의 경외와 인간 내면의 고귀함을 만남으로써 자신도 그토록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정신을 높이고 가슴을 채우는 교육이 무엇보다 앞서 실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을 고양하는 교육은 논리적 사고력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그것을 이상과 의미 있게 결합시키도록 이끄는 일로, 철학적 사고양식 터득 중심의 철학을 비롯한 모든 전공의 강좌에서 지식을 주고받는 강의가 아니라 느낌과 사고를 통해 지식을 획득하고, 그 지식을 다루면서 갖게 된 새롭고 가치 있는 생각을 주고받는 강의로 진행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을 채우는 교육은 내적욕구와 정서를 스스로 다스리는 힘을 갖추고 이성과 감성의 연합 속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지식과 상상력을 창의적으로 결합하게 하는 일로, 인문학과 예술을 교육받고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을 공허한 말의 성찬이라 말하거나 예술을 한낱 사치스런 유희고 오락이라 오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다. 인문학과 예술은 인간과 삶에 관한 진지한 사유요 성찰이며, 미래와 희망을 향한 거대한 담론이다. 이제는 대학사회가 대학생들에게 바른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감각과 감정의 과잉상태 속에 온 국민의 감성을 훼손하고 있는 사회문화의 연예오락화 질주를 멈추게 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교육자들’의 강의로 철학적 사고양식과 균제적인 감성을 갖추고 아름다운 열망과 심미적 지성을 지닌 ‘홍익인간’으로 육성돼 정상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와 높은 문화의 나라를 이룩하며, 나아가 인류공영의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홍수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음악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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