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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는 주체의 주관적 경험 분석해야 행복해져”
“음식 먹는 주체의 주관적 경험 분석해야 행복해져”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9.0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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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식 패러다임 제시한 전재근 서울대 명예교수

인간은 오감을 통해 보고 들으며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문화가 발달됐다. 김치냉장고 발명가이자 2009년 정년퇴임한 전재근 서울대 명예교수(식품공학과, 74세)가 ‘음식’에도 철학이 있다는 저서(『Meta Food Physics』, 글을 읽다, 2013. 6)를 발간했다. 전 명예교수는 마음의 문제로 식품학에 접근했고, 이 책에는 세계 식품학계 최초로 정립한 새로운 이론이 담겨 있다. 영어로 썼다. 제자들의 요청으로 국내에서 출판기념회를 했지만, 곧 킨들에도 ebook으로 발간된다. 서울대 농대(수원, 현 중소기업창업센터) 명예교수실에서 여전히 연구 중인 그를 만났다.

식품과학, 식품영양학, 식품공학의 용어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저서 『Meta Food Physics』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는 식품이 대개 생물체다보니 화학, 생물학이 관여하는데, 이런 성분을 중심으로 하는 학분 분야가 식품 과학이고, 식품을 섭취할 때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 식품영양학, 그리고 식품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제조해 소비자에게 상품을 만들어주는 분야가 식품 공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Meta Food Physics』는 생소하다. meta에는 ‘초월’의 뜻이 있으니 meta physics는 정신을 다루는 분야. 정 명예교수는 자연과학의 층위를 설명하면서 책 제목을 풀었다. “생화학 위에는 화학이 그 위에는 물리학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의 정점에 있는 물리학의 양자역학 분야는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기원을 연구하죠. 전제가 ‘everything is empty’인데요, 빈 곳에서 세상이 존재할 수는 없죠. 최근 중력장도 자기장도 아닌 의식, 혹은 마인드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는데, 이건 quantum physics, 즉 ‘everything is connect’라는 전제를 갖고 있어요. 양자역학자들이 meta quantum physics란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나는 meta food physics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식품학 개념 재정립한 의식이론 전개

식품학자는 소비자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현재의 식품과학은 육체의 건강이 인간의 행복을 이끈다는 명제 아래 발전돼 왔는데, 전 명예교수는 이에 반대한다. 음식 섭취로부터 얻는 행복감은 사람마다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다르기에 주관과 객관적 경험이 함께 다뤄져야 하며, 행복을 느끼는 주체인 의식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그의 저서 제목이 확실히 이해된다. 식품과학의 범주를 초월하는 심리학, 철학을 함께 다루며, 소비자의 심리와 인식에 관련된 문제가 주관적 경험의 이해 부족에서 온다는 점에 착안해 주관적 경험을 이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다.

그는 음식의 맛을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소금, 설탕, 식초를 먹을 때 경험하는 짜고 달고 신맛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객관적인 경험이다. 반면 소금, 설탕, 식초를 넣고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기호도,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른데 이것이 주관적 경험이다.

전 명예교수는 이 주관적 경험을 사람마다 마음이 반영돼 나온 의식작용의 결과로 본다. 객관적 경험은 주관적 경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이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의식의 구조와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음식이라는 객체에 치우쳤던 식품과학에서 먹는 주체에 더 집중한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다. 『Meta Food Physics』에서 그는 주관과 객관적 경험을 하나의 관점에서 관조하려는 시도를 했다. 감각신경세포가 식품으로부터의 자극을 감지, 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일어나는 인식의 편기현상을 3분기법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는 의식의 끈(식사, consciousness fiber), 의식망과 의식망층(식망, consciousness mesh-CM, 식망층 CMLayer(CML))으로 이뤄진 다층 식망론(CM theory)를 의식이론으로 제안해 의식의 전달현상과 각종 형태의 형상 없는 의식의 요체들을 형상화했다.의식의 요체들은 consciousness aggregate(식단), consciouness aggregate cluster(식체, CAC)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자아(self)는 식체만으로 구성된 2종 자아(CAC, CACP)와 물질과 결합된 형태의 자아(CACM)의 3종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각기 CML에서 life cycle을 갖는다.

그는 경험이란 이 자아들의 순환경로 과정(passive route)에서 일어나는 산물로 정의한다. 따라서 객관적 경험이란 주관적 경험 중에서 육체(CACM)로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주관적 경험의 토대 위에서만 존재한다.

그는 다층의식구조를 활용해 맛을 평가하는 방법과 다양한 표현방법도 소개한다. 그는 관능평가에서 하층구조인 관능에만 의지하기보다 심층의식의 주관적 경험을 중시하는 인지적적 관능평가법 이론을 만들었다. 식품의 맛을 표현하는 가청 영역의 주파수를 찾아 악보도 만들었다. 식품학 관련 학술서에 악보가 등장한 것은 최초다.

그의 의식이론에 따르면 기존의 식품학적 용어나 개념이 새로운 각도에서 재정립 된다. 식품, 요리, 섭취, 영양, 맛, 평가 등이 모두 물질과 의식을 아우르는 범위의 확대속에서 새롭게 정의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비만 문제도 가상식품론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상식품도 의식 속에 실재하는 주관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국제 학계에서 이어지는 후속 연구

사실 전 명예교수는 2000년 세계식품학회에서 처음으로 마음 식품학 이론을 밝힌 바 있다. 독일의 라메르라는 학자가 2004년 그의 이론과 유사한 논문을 발표한 걸 보면, 이 문제에 대한 국제 학계의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 명예교수는 지도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함께 이론을 다듬어 가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저서는 그 결과물.

전 명예교수는 32살 한창일 나이에 중증 근무력증에 걸려 죽다 살아났다. 학생들과 여행을 갔다가 식중독에 걸린 것이다. 식품공학자로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고, 병원에서도 남은 목숨은 15년이라고 선고했다. 부인의 헌신으로 3년의 투병 생활을 끝냈고, 지금은 밭일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새겨진 15년이라는 단어가 그를 괴롭게 했다. 병상에 있던 3년간 부인이 갖다 준 불교 경전을 독파했던 그는 참선, 명상으로 ‘15년 후에 죽는다’는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를 결국 극복해 낸 그의 마인드 콘트롤이 ‘마음 식품학’의 뿌리가 된 셈이다.

“一切唯心造라고 하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단 말입니다. 육체를 타고난 이상 음식은 섭취 안 할 수 없죠. 똑같은 음식을 섭취해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요. 지금 살이 찐다고 다이어트하고, 지방제거수술을 받는데, 결국 자기의 마음을 컨트롤하는 것이 바른 해법입니다.”

글·사진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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