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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결에 있는 수많은 균열 드러내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
“역사의 결에 있는 수많은 균열 드러내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9.0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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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역사> 제98집『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둘러싼 서평-반론 화제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은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다양한 적대의 지점들을 드러냄으로써 매끄럽게 보이던 ‘역사’의 결에 수많은 균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일 것이다. 탄탄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가 수많은 조각들을 조합해서 만든 가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할필요가 있다."

후지이 다케시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출간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8년사』(역사비평사刊)에서 ‘족청계’에 주목했다.

주지하다시피 ‘족청’이란 이범석이 1946년 10월에 조직한 조선민족청년단을 의미한다. 족청계는 엄밀히 말하면 족청 해산 이후 일민주의를 매개로 결집, 형성된 정치세력을 뜻하지만 족청계의 태동이라는 맥락에서는 1946년까지의 족청도 포함된다. 이 논문을 놓고 <사회와 역사> 제98집에 흥미로운 서평과 반론이 나란히 실렸다. 역사가의 책무를 환기하고 있기때문에 눈길을 끈다.

다케시는 자신의 책에서 족청이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에 위치한 존재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검토하고 있다. 그는 족청계가 전간기 유럽에서 나타나 1945년에 패배한 역사적 파시즘은 아니지만 그 자장 속에서 형성됐으며, 1960년대 본격적으로 발흥했던 주변부의 제3세계주의는 아니지만 그 시발점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미군정의 후원을 받고 조직된 족청은 친미적 청년층을 양성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반제파시즘적인 경향이 강한 민족주의였으며, 일정 정도 반공주의적인 성격만큼이나 반자본주의적이었다.

이범석이 강조했듯 족청의 반공은 결국 ‘전향’의 문제와 연결된다. 당시 전향이란 자본주의로의 전향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로의 전향이었음을 감안할 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양한 민족주의적 사상이 필요했는데, 이는 이승만의 일민주의와 관련된다.

대한민국당의 ‘黨是’로 출발한 일민주의는 1949년 ‘國是’로 제시되는데 다케시는 이 일민주의가 좌익 포섭 전향공작이라는 과제와 맞물리며 변화가 발생했다고 저서를 통해 밝히고 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사상전’의 무기로 일민주의가 활용, 부각됐다는 것이다. 다케시는 “양우정이 체계화한 일민주의는 국내의 계급모순을 국제적인 민족모순으로 치환시키는 파시즘적인 민족주의의 특성을 강하게 지닌 것”이라고 말하며 따라서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한다고 봤다.

그러나 강성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서평「파시즘적이면서 사회주의적인, 반공적이지만 냉전적이지 않은」을 통해 현대사 연구자들이 일민주의 하면 족청계를 떠올리게 되는데, 일민주의가 족청 해산 이후 족청계를 형성, 결집시킨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독특하게 결합된 족청식 민족주의의 1949~1950년 형태는 좌익 포섭의 이데올로기이자 반공 사상전의 강력한 무기였으며 통치 이데올로기로 진화 중이었다는 것이다. 1951년 신당 조직의 이념으로 잠깐 사용된 일민주의는 6·25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그 자리를 보존하지 못했다. 1953년 ‘휴전반대운동’의 동원과 맞물리면서 다시 힘을 얻은 듯 보이던 일민주의는 수단으로서 가치가 다해 이데올로기로써의 생명을 잃게 됐다. 강성현은 다케시가 강조하고 싶어한 ‘해방8년의 종언’을 이 맥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며 질문을 던진다.

‘해방8년의 종언’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첫째, 학계에서 ‘해방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를 의미하는 ‘해방8년’에 대한 다케시의 종언 발언에 대한 질문이다. 강성현이 보기에 다케시는 이 전환기를 일민주의의 죽음과 함께 ‘대중이 직접 정치적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소멸’된 시기로 부각하는 것으로 읽힌다. 다케시의 시각에는 ‘해방3년’의 격렬한 계급투쟁을 수반했던 대중정치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사라진 것처럼 서술하는 경향을 비판하는 시선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성현은 묻는다. 분단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급투쟁과 대중정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주장인가?

둘째, 다케시는 일민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반자본주의와 반제국주의 성격을 분석하며 족청의 반공주의가 냉전구조와 완전히 상반돼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내적인 반공과 국제적인 냉전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벌어진 간극이 존재하며, 그 간극으로 인해 반공주의가 유동성을 지니게 되는 역사적 공간이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촉구한다. 강성현은 다케시의 발언이 냉전을 진영(bloc)의 문제로 이해하는 기존 시각과는 다르다고 봤다. 강성현은 다케시에게 냉전이란 무엇이며, 냉전과 반공주의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묻고 있다.

셋째, 다케시가 책 말미에서 말한 ‘긴 30년대’개념에 대한 질문이다. 다케시는 “1930년대에 제기된 문제들이 이미 과거의 것이 됐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대규모 개발이나 신자유주의가 답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파시즘이 부활할 것이라는 진부한 경고를 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는 아직‘긴 30년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파시즘이 등장하게 된 기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처럼, ‘30년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인간사회의 구성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강성현은 이와 관련해 ‘30년대의 계속성’을 이야기할 때, ‘50년대의 일본의 개발주의’와‘60년대 한국의 개발주의’는 어떤 위상이고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50년대 말 냉전과 맞물리면서 미국의 개발주의가 동아시아로 확산됐다는 주장보다는 다른 한편으로 30년대 파시즘 일본의 개발주의의 원형이 계속적으로 작용해 얽힌 결과기이도 하다는 생각에서다.

다케시는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재검토를 위하여」라는 반론글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 다케시는 과거 현대사 연구의 문제점을 먼저 짚었다. 1980년대 후반 현대사 연구의 초기 경향은 ‘해방3년의 재발견’이었는데, 이는 해방직후 존재했던 다양한 변혁의 가능성을 발굴해낸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다케시는 당시 해방3년사 서사는 기본적으로 ‘해방3년’과 ‘분단정부 수립 이후’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분단정부 수립 이후에 대해서는 이미지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연구는 없었다고 말한다. 다케시는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계급투쟁이 ‘전쟁’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해방3년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이념 또는 실체화된 정치세력들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로 보는 관점이 많았다고 봤다.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재검토

다케시는 그의 저서의 숨겨진 주제가 ‘계급투쟁’이라고 답한다. 그는 제3세계주의로 이어지는 이 ‘혁명적’인 흐름은 동시에 소렐에서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반혁명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는데, 이 주체 생산의 영역에서는 혁명적 주체가 아니라 파시즘적 주체가 생겨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족청계가 보여준, 좌와 우가 만나는 영역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다케시는 이 영역이 형성될 수 있던 배경에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있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국민이 14%였던 토대 위에서 해방8년의 정치과정이 형성됐고, 초기 대한민국 정부의 성격 역시 이 지형에 의해 크게 규정됐다는 것이다.

다케시의 두 번째 대답 역시 첫 번째 질문의 영역과 관련된다. 냉전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진영으로 이해되고 있었지만, 냉전 후 드러난 것이 ‘제국’으로서 미국의 모습이었듯이, 냉전이 단순히 세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점, 즉 남한의 경우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현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다케시 역시 분명하게 답하기 어렵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강성현이 지적한 대로 ‘개발’이라는 것 자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TVA(1933년 미국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테네시강 유역 개발계획)에 주목한 까닭은 TVA가 지역사회라는 단위에서 개발과 민주주의를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파시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의 개발과는 차별성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뉴라이트, 민족사관, 진보사관… 다케시는 역사의 결에 수많은 균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겹친다는 것, 족청의 민족주의에 좌와 우가 만나는 영역이 있다는 것, 국내적인 반공과 국제적인 냉전 사이에 역사적으로 벌어진 간극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반공주의가 유동성을 지니게 되는 역사적 공간이 형성됐다는 것 등등이다. 다케시는 강성현과의 서평-반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잃어버린 역사를 추적했다. 세밀한 사료 실증과 큰 스케일에서의 이론적 함의를 갖는 주장을 펼치는 다케시의 태도는 우직한 역사가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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