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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오래된 이야기 … 그런 암흑기 다시 와선 안되겠죠”
“20년 전 오래된 이야기 … 그런 암흑기 다시 와선 안되겠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8.28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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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상지대 교수의 특별한 ‘해직일기’

박정원 상지대 교수(59세, 경제학)의 명함 아래쪽에는 보기 드문 글귀가 새겨져 있다. ‘교육, 노동 그리고 행복’이란 진한 명조체 표어다. 어쩌면 이것만큼 박 교수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1990년대 초반 ‘해직 경험’을 했던 그는 상지대가 다시 어수선해지던 2009년 부총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9월부터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나 시작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홈페이지(www.professornet.org)에 대학민주화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자신의 ‘해직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명함에 새겨진 ‘교육, 노동’과 관련된 부분이다.

민교협 홈페이지에 자신의 해직경험과 상지대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를 연재하고 있는 박정원 교수.

그는 “학문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교권이 침해를 당하는 곳에서 어떻게 소신껏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교육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대학교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일 것이다”라고 연재에 앞서 밝혔다. 20년 전 ‘해직’에서 ‘복직’, 그리고 상지대 정상화까지의 과정이 담긴 글인데, 지금 시점에서 이런 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조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편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어떤 경험의 공유라기보다는 그런 암흑기가 다시 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연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들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시대마다 다르다고 지적했다. 20~30년 전의 교수들이 학문과 양심의 자유 및 사학민주화를 위해 싸워야 했다면, 오늘날의 교수들은 대학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력 즉, 상업주의와 겨뤄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대학과 학문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우리가 당연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면 대학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심심장한 비유를 들었다. 실용학문, 응용학문 중심으로 대학체제가 정착된 미국에서도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환기하면서, “미국 대학들은 이들 분야가 바로 ‘식물의 뿌리’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뿌리로 가야할 자양분을 열매로 돌린다면, 당장 따먹을 수 있는 과실이 풍성하게 열리겠지만, 바람만 불어도 그 식물은 생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과 학문의 상업화 과정이 대학의 구조적 비리나 부패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대학민주화는 계속되는 우리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해직일기를 시작하며’라는 그의 글에는 이런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1975년 교수재임용제가 시행된 이후, 비자발적으로 교단을 떠난 교수들의 숫자가 어림잡아 400~5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도 이러한 억압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학입학 지원자 수가 감소하고 대학운영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는 시기에 교권탄압은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대학에 대한 선진국 수준의 국가지원이 없는 한, 운영이 어려워진 대학들은 외길 수순을 밟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상지대는 지금 총장, 부총장 없이 ‘직무대행’ 체제로 학사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대학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이사 9명 중 5명의 추천권을 구재단에 준 뒤의 일이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새로운 생각과 비전으로 대학을 운영해야 하는데, 다시 대학에 복귀한 ‘구재단’은 솔직히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커다란 배가 선장이나 일등항해사 없이 온갖 파도와 풍랑을 맞아가며 6개월을 항해해 온 셈이다. “정상적인 대학들도 위기국면 아닌가. 그러나 다행하게도 총장직무대행을 비롯한 보직교수들과 직원들이 한마음이 돼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좌초하지 않았다. 시민대학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여정이 더 큰 일이다.”

교육부는 곧 재정지원제한대학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재단 복귀전 상지대의 경우, 2007~2008년까지는 높은 입시 경쟁률을 보였다. 교수업적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상지대는 아슬아슬하다. 대학 예산도 제때 승인해주지 않고, 교수채용도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교육부에 이렇게 주문했다. “이명박 정부의 씻을 수 없는 과오 중에 하나가 옥석을 가리지 않은 비리사학재단 원상복귀다. 비리사학 문제는 권한만 있고 아무런 책임도 없는 사분위가 아니라, 감독기관인 교육부가 다시 풀어야 한다. 교육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지난해부터 ‘행복경제학’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조금 더 다가섰다는 박정원 교수.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행복’하게 해줬을까 반문하는 그는 점차 편하게 살면서 평범한 기능인으로 변해가는 교수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파우스트』의 대사 한 대목을 인용했다.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서 차지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오래된 경험’, 해직일기를 연재하는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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