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9-17 16:24 (금)
16세기 선교사 ‘세스뻬데스’의 서간문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16세기 선교사 ‘세스뻬데스’의 서간문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8.20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_ 박철 한국외대 총장 저서 일본 학계에 번역·소개돼

박철 한국외대 총장(사진)이 스페인에서 발간한 연구 저서 『한국방문 최초 서구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가 최근 일본 아이치현립대학(愛知懸立大學, Aichi Prefectural University) 토모코 타니구치(Tomoko Taniguchi) 교수에 의해 번역돼 일본에 학계에 소개됐다.

토모코 타니구치 교수는 책 머리에서 “극동에서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에 관한 연구는 여러 갈래로 이뤄져 있으나 16세기 한국 땅을 최초로 밟았던 세스뻬데스 신부에 대한 연구가 일본에서 거의 없는 점이 안타까워 번역을 하게 됐다”라고 번역 동기를 밝혔다. 토모코 타니구치 교수는 3년간에 걸친 번역서 출간을 기념해 원저작자인 박철 총장을 하계방학이 끝나면 오는 9월경 아이치현립대학으로 초청해 특강 및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1986년 스페인 외교부에서 첫 출간
박철 총장은 지난 1986년 스페인 외교부 출판문화국에서 ‘1593년 한국을 최초로 방문했으나 국내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세스뻬데스 예수회 신부’에 대해 최초로 연구 발굴한 『극동에서 스페인 선교사들의 문화적 활동에 관한 문헌적 연구: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를 출간한 바 있다. 이후 박 총장은 『한국 방문 최초 서구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1987, 서강대출판부)와 『16세기 서구인이 본 꼬라이』(2011, 한국외대출판부)를 출간하기도 했다.

박 총장은 이들 저서에서 우리 한국 땅을 최초로 밟은 스페인 예수회 신부인 세스뻬데스 신부에 대해서 스페인, 로마, 포르투갈, 일본 등지에 산재해 있던 고문서 자료를 스페인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발굴해 국내외 최초로 모호했던 점들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16세기 서구인이 본 꼬라이』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 스페인 문학 작품을 연구하던 중 아주 우연히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Gregorio de C´espedes) 신부에 관한 언급을 접했다. 그 후 국내외 문헌에 세스뻬데스의 국적이나 한국방문에 대한 기술에 일관성이 없음을 알고서 그에 대해 면밀히 연구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이러한 연구 충동에서 출발해 결과물로 빚어진 것이 바로 이들 일련의 저작들인 셈이다. 한국 땅을 최초로 밟은 스페인 예수회 신부 세스뻬데스에 관한 연구는 역사적, 교회사적, 문학적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박 총장은 이 가운데 특히 16세기에 세스뻬데스 신부가 남긴 서간문들과 당시 서구 선교사들의 기록들을 스페인 문학사적 관점에서 발굴해 분석했다.

‘연구 충동’이라고 그 스스로 말했듯, 세스뻬데스를 좇는 그의 시선은 확실히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박 총장은 16세기 선교사들이 남긴 서간문들을 유럽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발굴해, 역사적으로 그들의 활동 연구에 도움이 될 자료를 모아서 정리했다. 저자에 의하면 “16세기 스페인 선교사들이 극동에서 남긴 서간문이나 기록들은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스페인 문학과 역사분야에도 큰 의미가 있고 스페인 학계에서도 새로운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

바로 여기에 그의 저작들의 의미가 있으며, 이점에 착안해 일본어판 번역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세스뻬데스 신부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외국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해 소개한 정도에 불과했으며, 원전을 통한 직접적인 연구는 드물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일반 역사학자들이나 기타 연구가들이 16세기 스페인 및 포르투갈 고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현실로 볼 때, 필자는 이 분야의 16세기 문헌과 문학적 기록들을 읽으면서 어휘 하나하나의 뜻을 바로 해석해 우리 역사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의미를 매기는 저자는, 실제로 연구 도중 「1592년 일본 예수회 연례보고서 부록」편에 실린 스페인어로 작성된 임진왜란 관련 기술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3자로서의 유일한 증인인 스페인 선교사들이 적은 이 역사적 기록은 실로 그 가치가 크다”는 게 박 총장이 내린 평가다. 16세기 일본 땅을 최초로 밟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신부, 중국땅을 최초로 밟은 마테오 리치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은둔의 나라 조선 땅을 은밀하게 임진왜란 중 밟았던 세스뻬데스 신부는 네덜란드인 하멜에 가려져 왔다. 세스뻬데스 신부는 1년간 오늘날의 경남 진해 웅천에 머물면서 4통의 서간문을 통해 꼬라이(한국)의 존재를 유럽에 최초로 알렸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야만적이라고 고발했다.

스페인 정부는 1991년 11월 9일 세스뻬데스의 문화 기념관을 라 만차 지방의 발야누에바 데 알까르데떼 마을에 세운 바 있으며, 기념관 뜰에 태극기를 새겨 만든 세스뻬데스 방한 기념 조형물을 세워 한국 최초 방문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1993년 스페인 정부는 세스뻬데스의 방한 400주년을 맞아 그가 첫 발을 디딘 경상남도 진해시에 똑같은 조형물을 기증해 제막했다.

임진왜란때 종군 … 조선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
책의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토모코 교수의 ‘역자 후기’ 일부를 소개한다.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는 예수회 스페인 선교사이다.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 전에 내일한 선교사로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나 포르투갈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 등과 같이 16세기 일본에서 크리스트교 포교에 일역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이 인물이 16세기의 극동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세스뻬데스는 일본을 경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반도를 방문해 근세초기의 조선인의 생활을 경험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를 중심으로 한 크리스트교 다이묘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에 의한 조선 출병 (임진왜란)에 종군하여, 그 병사들에게 전지에서 미사를 행해주고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1587년의 히데요시의 금교령에 반하는 것이므로 주로 규슈의 크리스트교 다이묘들의 청원에 의해 비밀리에 행해졌던 것이다. 세스뻬데스가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서구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 또 조선 반도의 사정을 기록했고 이문화 접촉과 이문화 교류의 귀중한 목격자이며 기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조사하고 그가 남긴 기록을 정성들여 분석한 것이 박철 박사의 저작 『한국방문 최초의 서구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이며 이 책은 그 일본어 번역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