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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눌린 ‘단행본 저술’ 활로 찾는 계기될까
논문에 눌린 ‘단행본 저술’ 활로 찾는 계기될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7.1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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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연구자들‘집단서평’ 잇따라

출판사와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댄 ‘집단서평’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과연 논문 중심의 글쓰기가 지배적인 학계 상황에서 단행본 학술출판의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을까.
집단서평은 지난 2011년 6월 푸른역사(대표 박혜숙)에서 ‘논쟁-대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들의 새마을 운동』(김영미 지음)과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이광일)를 논쟁서평의 첫 주인공으로 삼았다. 지난 6월에는 건축학자와 전직 기자가 함께 쓴 『오래된 서울』(최종현·김창희 지음)을 놓고 역사학자, 미술사학자 등이 함께 모였다. 계간 <문화/과학>을 발행하는 문화과학사(대표 강내희)도 지난해 6월부터 ‘북클럽 논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4회의 북클럽 논쟁이 진행됐다.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권명아 지음), 『광주, 여성』(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구술채록), 『1960년을 묻다』(천정환·권보드래 지음) 등을 호명해 각자 생각을 밝혔다. 문화과학사의 북클럽 논쟁은 관련 내용이 <문화/과학>에 그대로 게재된다는 점, 번역서보다는 국내 저작을 대상으로 집단서평을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문화과학사는 오는 8월 『1980 대중봉기의 민주주의』(김정한 지음)를 조명할 예정이다.

갈무리(대표 조정환)도 지난 6월 앙리 르페브르의 유작 『리듬 분석』 출간에 맞춰 집단서평을 시도했다. 도시, 음악, 환경 등 다양한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서평’도 시도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갈무리측은 “국내에서는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새롭고 혁신적인 해외 저자들의 사상을 토론하고 소통하기 위해 집단서평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화/과학> 편집인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예술학과)는 다양한 형식의 ‘집단서평’에 일단 긍정적이다. “우리는 국내 저서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비교적 젊은 학자들의 저서에 주목해서 독자들과 함께 논의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라고 말하는 그는 집단서평이 실적에 쫓겨 등재지 논문을 중시하는 학계 분위기에 작은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동연 <문화/과학> 편집인은 “연구재단 위주로 지식이 제도화 되고 있다. 단행본은 연구자 자신이 갖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네 차례 북클럽 논쟁을 진행했는데, 단행본 저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힌트를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푸른역사가 지난 6월에 마련한 집단 화평회에 참석했던 이경구 한림과학원 HK교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교수업적 평가를 논문 중심으로 하고 있는 우리 학계에서는 결국 정량평가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가 중요할텐데, 집단서평은 대중을 상대로 한 학술출판사의 가능성을 따져보게 한다. 해외에서는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간행하는 단행본에 많은 신뢰를 보낸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집단서평을 하고 이런 것이 축적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척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렇지만 경계해야 할 대목도 있다. 이경구 교수는 집단서평이 좀 더 엄밀한 방식으로 대상 저작을 선정하고, 학술서와 교양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양서와 학술서의 수준은 틀림없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집단서평이 수준높은 학술서를 대상으로 엄밀성을 확보한다면, 단행본 정성평가란 측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대한다.

집단서평, 어떤 출판사에서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2년 전 6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필운동 289에 위치한 푸른역사아카데미에 흥미로운 자리가 마련됐다. ‘논쟁-대담’이란 이름을 붙인 서평대회였다. 동일한 대상을 역사학과 정치학이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집단서평’의 자리였다. 『그들의 새마을 운동』의 저자인 김영미 국민대 교수(국사학과)와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의 저자인 이광일 당시 성균관대 강사(정치학)가 주인공이었다. 3시간에 걸쳐 논쟁-대담이 진행됐다. 이 ‘논쟁-대담’은 비정기적인 형태로 잠시 소강상태로 있다가 지난 6월 18일 다시 수면 위로 올라섰다. 한양대 도시공학과에서 정년을 한 최종현 교수와 기자생활을 오래했던 김창희 씨가 같이 쓴 『오래된 서울』을 주제로, 이경구 한림과학원 교수 등 관련 전문가 15명이 ‘화평회’ 방식으로 모였다.

건축학자와 발품 파는 기자의 눈에서 빚어진 책을 놓고 역사학자, 미술사학자 등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박혜숙 대표는 “주례사서평에서 탈피, 적나라하게 자기생각을 밝히면서쟁점을 분명히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문화전문지 <문화/과학>을 발행하고 있는 문화과학사도 지난해 20주년을 계기로 ‘북클럽 논쟁’을 시작했다. 2012년 6월에 열린 제1회 북클럽 논쟁에는 『인지자본주의』의 저자인 조정환(다중지성 정원 대표)과 김공회(런던대 SAOS 경제학과 박사과정), 심광현(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이 참여해 끈질기게 토론을 벌였다.

제2회 북클럽 논쟁(2012.9)에는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권명아 지음)이, 제3회 북클럽 논쟁(2013.1)에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에서 만든 5·18 광주항쟁 여성 구술 채록서인 『광주, 여성』이 조명됐다. 제4회 북클럽 논쟁은 지난 3월 서울 대학로에서 『1960년을 묻다』(천정환·권보드래 지음)를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렸다. 권경우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신간 가운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시대에 대입할 수 있는 책을 골라 성과와 한계를 짚고 있다”라고 기준을 제시했다.

도서출판 갈무리 역시 집단서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1일 앙리 르페브르의 유작 『리듬 분석』 출간에 맞춰 권철범(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김진호(안동대 음악과 교수), 오정학(월간 <환경과 조경> 편집장), 이성혁(문학평론가), 임태훈(문학평론가) 등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머리를 맞댔다. 르페브르의 이 책은 “철학이 결여하고, 정치가 망각했던, 감성과 육체가 체험하는 구체적 보편이 바로 ‘리듬’이다”라고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해 의견을 주고받은 것. 갈무리는 다른 시도도 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서평단’을 모으고 있다. 신간 『자본과 언어』(크리스티안 마라찌 지음)의 서평자를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인터넷상으로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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