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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찾아서] <56>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을 찾아서] <56> 덕성여자대학교
  • 특별취재팀
  • 승인 200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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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으로서의 뿌리 찾고, 투명한 경영으로 대학 개혁 이뤄내
덕성여대가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규대학’이라는 꼬리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면, 이제 덕성여대는 ‘민주 대학’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게 됐다. 최근에는 민주적으로 사학 개혁을 이뤄낸 모범적인 대학으로도 꼽힌다. 박원국 이사장으로 대표되는 사학 재단의 전횡을 비판하며 ‘덕성의 민주화’를 외쳤던 덕성여대의 교수, 학생, 동문, 직원들의 길고 긴 싸움의 결과였다.
덕성여대가 ‘민주 대학’으로 거듭나기 전까지, 덕성여대가 겪은 풍파는 이루 열거하기 어렵다. 지난한 투쟁의 일정만을 보아도 그렇다. 성낙돈 교수(1990)와 한상권 교수(1997)의 부당 재임용 탈락으로 촉발됐던 덕성여대 학내 분규는 1997년의 교육부 특별감사에서 박원국 이사장의 비리 행위를 적발, 이사장 취임 승인을 취소함에 따라 정상화의 단초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해 1월 박원국 씨가 교육부를 상대로 대법원에 낸 임원 승인취소 처분 소송 상고심에서 승소, 이사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덕성여대 분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그 과정에서 덕성여대의 설립자 차미리사 여사 초상화 봉정식에 참가한 교수협의회의 교수 3명은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 ‘임시이사 파견’ 등을 요구하며 이루어진 학생·교수·직원·동문들의 삭발, 30여 일간의 단식, 교육부 앞 1인 시위, 4백47일간의 천막농성. 마침내 지난 해 10월 2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4명의 임시 이사를 파견했고, 같은 해 12월 26일 덕성학원 이사회는 교수협의회 회장이었던 신상전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총장직무대리로 선임, 덕성여대는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차미리사 동상 건립과 ‘역사 바로세우기’

어렵게 얻어낼 수밖에 없었던 만큼, 대학의 정상화도 쉽지만은 않은 일. 이를 위해 덕성여대는 지금, 박씨 재단으로 인해 일그러진 대학의 이미지와 대학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들을 하나 하나 이뤄내고 있는 중이다. 우선 꼽히는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
덕성여대는 지난 6월 3일 덕성학원의 전신인 근화학원을 설립한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선생 동상 제막식을 열어, 덕성여대의 설립자가 친일 인사 송금선 씨(박원국 전 이사장의 모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백방에 알렸다. 남녀 평등 사상의 선구자이자 민족운동계열 여성 교육가였던 차미리사 여사의 건학 이념이 덕성여대의 뿌리를 이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원국 전 이사장이 어머니인 송금선 씨를 덕성학원의 설립자로 내세우는 것을 통해 재단을 사유화하는 것을 정당화시켰다면, 덕성여대의 설립자가 차미리사 여사임을 강조하는 것은 박씨 일가의 정통성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즉 차미리사 여사 동상은 덕성여대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음과 동시에 박씨 일가와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동상을 떠받치고 있는 계란 모양의 커다란 바위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연상시켰던 덕성여대 분규의 승리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덕성여대가 지난 학기에 학교 정문 앞의 다리 이름을 송금선씨의 호를 딴 ‘남해교’에서 ‘근화교’로 개명한 것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친일 행적이 뚜렷한 송금선씨와 명백한 선을 긋는다는 측면도 있지만, 민족 사학으로서의 덕성여대를 부각시키는 측면이 강했다.

열린 경영으로 구성원들간의 신뢰 확보

덕성여대에서 보이는 대학 개혁의 두 번째 모습은 ‘투명한 대학 행정’으로 나타났다. 현재 덕성여대의 교수, 학생, 직원 대표는 학교 당국의 모든 정책 입안과 집행에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학교는 예산의 수립과 집행은 물론 세부 내역까지 인터넷과 학교 신문 등을 통해 낱낱히 밝히고 있다. 덧붙어 구성원들의 예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노조 대표와 총학생회 대표들을 각각 초청해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임시이사가 파견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올해 등록금 협상만 해도, 학교 구성원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주적·공개적으로 이루어져 분쟁없이 등록금 인상을 타결하는 선례를 남겼다.
다음으로 꼽히는 것은 학생들을 위한 행정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원스탑 서비스’ 도입 등의 교육환경 개선이다. 덕성여대는 이를 위해 학생 서비스 센터를 개설, 오는 2학기에 개소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덕성여대는 교수의 안식년제도의 확대, 교수 연구비 지원, 우수 교수진 유치, 학생들의 해외연수 지원 등을 마련해 놓고 있다. 교수 연구비 지원은 파격적일 정도다. 교수수가 1백40여명에 불과하지만 올 한해 교수 연구비 명목으로 마련된 것만해도 총 23억원이었으며, 이는 지난 해에 비해 53%를 증액한 것이다. 더군다나 교수들의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연구 논문 계획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논문 한 편에 4~6백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덕성여대는 2004년 완공을 목표로 체육관, 전산·어학·교양관, 제 3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산·어학·교양관은 올 10월에 공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특히 총 4천2백여 평 규모의 첨단시설을 갖추게 될 전산·어학·교양관은 최첨단 멀티미디어 어학 시설 등을 갖추도록 할 방침이다.
부패한 이사진을 퇴진시키고 임시이사 파견 등을 얻어내 성공한 사학 민주화 투쟁의 모델이 된 덕성여대. 지난 상반기 동안 보여준 민족사학으로서의 뿌리 찾기, 대학 개혁을 위한 주체적 노력 등으로부터 이미 덕성여대의 완전 정상화가 손에 잡히듯 성큼 다가와 있는 듯하다.

특별취재팀

덕성여대 민주화연혁

1997. 2. 한상권 교수(사학과) 재임용 탈락.
덕성여대 분규 야기
1997. 6. 교육부 특별감사, 박원국 이사장의
불법 비리 1백46건 적발
1997. 10. 교육부, 이사 및 이사장 취임 승인 취소
권순경 박사 총장직무대리 취임
1998. 3. 제 5대 총장에 이강혁 박사 취임
1999. 3. 교육부 임시이사 파견
2000. 5. ‘덕성 민주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결성, 학교 정문 앞 천막 항의농성 시작
2000. 10. 종로구 운니동 덕성여대 재단 앞 천막농성 시작
2000. 11. 교육부 특별감사
2001. 1. 박원국, 교육부 상대로 낸 임원 승인취소처분 소송 상고심에서 승소. 이사장으로 복귀
2001. 2. 차미리사 여사 초상화 봉정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남동신 교수, 양만기 교수, 김경만 교수 등 5명의 교수 재임용 탈락
2001. 3. 권순경 박사 총장직무대리 취임
덕성여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2001. 4. 남동신 교수 복직 대책위 구성
2001. 5. 교육부 특별감사
2001. 7. 조계사 천막농성
2001. 8. 교육부, 덕성여대 교원임용 비리 관련 감사결과 발표
2001. 10. 박원국 이사장 임기 만료하루 전, 덕성여대 구성원 삭발식 단행.
교육부 임시이사 파견.
2001. 12. 신상전 박사 총장직무대리 취임
606일간의 항의농성과 447일간의 재단 앞 천막농성 해단식
2002. 2. 남동신 교수, 양만기 교수, 김경남 교수 복직
2002. 5. 전교조, 덕성여대 교수협의회에 참교육상 특별상 수여
2002. 6. 차미리사 여사 동상 제막식
2002. 8. 차미리사 여사 건국훈장(애족장)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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