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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후 국외연수프로그램 반드시 부활해야
박사후 국외연수프로그램 반드시 부활해야
  • 김재희 성균관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승인 2013.06.03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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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김재희 성균관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출근 길 전철을 종종걸음으로 빠져나와 출강을 위해 대전행 기차에 뛰어 오른다. “후우…”가쁜 숨을 고르며 가방에서 핑크색 사쿠라 텀블러를 꺼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기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입안에 퍼지는 커피 향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느긋한 풍경은 바쁜 아침의 헐떡거림에서 미끄러지듯 나른한 여우로 들어가게 한다. 손에 든 텀블러에 핀 사쿠라는 빨간 벽돌 건물에 흐드러지게 핀 게이오대학의 미타캠퍼스의 사쿠라가 된다.

 

일본 연수시절 빠듯한 살림에 나를 위한 사치라며 샀던 텀블러는 일본에선 벚꽃개화시기에 맞춰 한정판매로 나온 것으로 이렇게 종종 나를 연수시절의 기억을 슬쩍 밀어 넣곤 한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미 머릿속은 도쿄의 기억 속을 달리고 있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 자신만을 위해 하루 24시간을 전부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스스로 이 연수를 ‘7년만의 외출’이라 이름 붙였었다. 처음 외국생활, 그것도 혼자라는 두려움은 내가 얻은 소중한 기회와 곁에서 응원해주는 가족들 그리고 늘 감사한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계셔서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특히 김종원 교수님께서 방향치인 내게 손수 손 글씨로 주요 전철노선을 그려주시고, 한문위에 요미까타(讀み方)를 붙여 적어주신 법률용어 등의 자료들은 실(實)자료라기보다 내게 힘을 주는 부적이었다. 또 늘 어디가나 인복이 많아서 일본에서도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소중한 기간 한정판 자유를 100%로 활용하고 싶어 열심히 관련 기관들을 견학하고 학회에 참석했는데 이때에도 연수지도교수인 게이오대학의 오타 교수님의 도움이 매우 컸다. 특히 외부인의 견학이 쉽지 않은 법테라스나 도쿄피해자지원센타, 특수 교도소 같은 일본기관들은 오타 교수님의 추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법테라스직원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가운데가 필자이다.  연수중이던 가정법원의 김윤정판사와 이화로스쿨 홍경화, 특히 맨 왼쪽 나까시마中嶋 주임은 현재 한국법률구조공단에서 연수중이다.

또 전국 피해자연합워크샵이나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형법학회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저명한 교수님들을 일일이 불러 소개시켜 주셨는데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글로만 보았던 분들도 계셔서 명함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방에서 온 신진학자에겐 가슴 벅찬 감동이기도 했다.

2012년 봄 참가한 피해자학회의 인연으로 그 다음날 열린 전국 RJ(Restorative Justice)연구회(일본회복사법연구모임)에선 다까하시 교수님, 니시무라 교수님들과 같은 저명한 교수님들을 직접 뵙고, 연수마지막 달에는 그 분들 앞에서 일본어로 한국의 형사조정제도를 발표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이 모임에 참가하면서 실무기관 종사자 및 이론가들이 발표를 하고, 특히 주요 국제세미나에 참가했던 교수들이 돌아와서 주요한 내용을 복사해 주고 번역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은 자료 공유에 인색한 우리 학계와는 대조적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이때 만난 신진학자들과 함께 가까운 미래에 한일간 RJ 관련 공동연구도 진행할 계획도 이야기하는 수확도 얻었다.

좀 더 욕심을 부려 일본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참가했던 여러 모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게이오대학 졸업생으로 결성된 부인회에서 만난 멤버 특히 토치쿠라 상은 나이와 국적을 넘어 좋은 친구가 돼 일본의 여러 곳을 함께 하며, 유학생은 엄두도 낼 수 없던 가부끼도 구경시켜 주었다. 또 아나부끼 상 집에서 열린 신년파티에 초대돼 일본인들의 집과 신년음식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도 이들에게 직접 담근 깍두기를 선보이며 일본 슈퍼에서 파는 달달한 기무치가 아닌 제대로 된 한국의 김치를 소개하며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또 외국인을 상대로 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에도 참가하면서 만난 키노시타, 시즈메 선생님들과 맥주를 좋아하시던 호리바 선생님과 함께 레인보우브릿지를 걸어서 건너고 돌아오는 시바우라 행 보트에서 함께 마시던 맥주도 일본연수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런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은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노동이주민들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했다. 한국에도 이러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이 활성화된다면 외국인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한편 민간 주도적 자원봉사자인 자국민들의 입장에서도 그들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든든한 사회적 기반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후에 다문화사회관련 문제와 해결을 위한 연구로 적극적 발전시켜볼 생각이다.

늦은 밤 연구실에서 숙소로 돌아오던 밤길에 함께 하던 도쿄타워의 야경으로 옮겨가던 도쿄의 추억은 이동식 커피판매 케리어의 등장으로 다시 기차 안으로 돌아왔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내게 여유와 청량제로서 존재하는 연수기간의 추억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배울 수 없는 그 이상의 것들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귀국 후 후배들에게 해외 Post-doc.의 유용성을 열심히 권할 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선배 이젠 한국연구재단 해외 Post-doc.프로그램 없어.”

인문사회과학계열의 신진학자가 국내에서 신청할 수 있는 해외Post-doc.의 대표경로가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 박사후 국외연수과정’이 아니던가? 내경험이 아니더라도 학위 후 해외학자들과 개인적인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후에 공동연구의 계획을 함께 세워볼 수 있는 기회란 것이 신진학자에게 어떻게 가능할까. 개인적으론 마지막 기회(?)란 것은 내겐 다행이지만, 후배들은 이젠 이러한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겠다는 점은 매우 유감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경험을 한 사람의 입장에선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이 잠시 지원을 멈춘 것인지 아니면 아예 없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꼭 이것만은 자신 있게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 프로그램은 반드시 부활해야 한다고!”

 

김재희 성균관대 법학연구소 선임연구원


2011년 한국연구재단 후속세대 박사후 국외연수과정으로 2011년 8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연수를 했다. 현재 몇몇 대학에서 시간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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