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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移民史에 대한 관심 … 나는 왜 역사를 배우려 했나?
미국 移民史에 대한 관심 … 나는 왜 역사를 배우려 했나?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3.05.25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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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48) 새로운 고향, 코네티컷주립대 시절 3

나는 한국을 떠날 때 고등학교 은사님으로부터 미국유학 선물로 역사책 3권을 받았다. 부산에서 미국의 시애틀 까지 2주일 동안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나는 『조선역사 개설』 (서울대출파부)와 『도산 안창호』(도산기념사업회) 그리고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를 전부 읽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는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 했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에도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미국에 이민 온 역사는 한말 고종시대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노동인력을 보낸 1903년부터 그 시초를 찾아 볼 수 있다.

2003년은 한국인이 미국에 이민하기 시작한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서부의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동부의 뉴욕과 보스턴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는 미국에 거주하는 100만 명의 한인 이민 100년사를 편집하기 시작했다. 나는 뉴욕의 ‘뉴욕 이민 100년사’의 편집위원장의 중책을 맡고 『대뉴욕 한인 100년사』를 한국어로 편집해 출판했다. 그리고 『Korean-Americans: Past, Present and Future』의 영문책을 편집해서 출판하기도 했다.

한국말로 된 100년사는 출판위원회가 한국의 출판사에 보내서 출판했다. 제본을 잘못해 책 크기(사이즈)가 화보와 같은 크기의 책으로 500쪽이 넘었기 때문에 도서관의 서가에 꽂을 수도 없고, 또 개인 집이나 아파트의 책장에 꽂아 놓을 수 없는 전형적인 화보 책이 되고 말았던 책이었다. 많은 한인들의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 때문에 500페이지가 넘는 『대뉴욕 한인 100년사』를 화보판으로 제본해 하나의 ‘장식품’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아래 두 권 참조).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를 정리한 국문판, 영문판 이민사. 이 두 책의 운명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러나 영문판으로 출판된 책 『Korean-Americans: Past, Present and Future』라는 책은 미국의 텍스트 사이즈로 제본됐기 때문에 미국의 대학 교과서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미국에 이민한 一世들의 자녀들이 미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논문을 한국이민사에 관해 썼기 때문에 미국 각 대학의 사회학 혹은 아시안-아메리컨 (Asian-American Studies)과목의 교과서로 사용하는데 매우 적절하다고 서평을 쓴 학자도 있었다. 이 책은 집필자들이 자기의 박사학위 논문 중 한 장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기고한 원고를 바탕으로 편집한 것이다. 때문에 매우 좋은 서평을 받았으며 미국의 대학도서관뿐만 아니라 일반 도서관에서도 반드시 보유해야 할 책이라고 높이 평가됐다.

영문 책은 각 대학의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인 이민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고 있다. 미국이민 100년을 맞아 미국의 각 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는 한국인은 각 도시의 한인 이민 100년사를 출판했다. 예를 들면 보스턴의 한인 이민사, 애틀란타의 한인 이민사, 그리고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스의 한인 이민사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한국인들이 미국유학을 시작하기 이전인 일본 식민지 시대(1910~1945)에는 미국 이민이 거의 불가능했고, 해방이 된 1945년부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미국으로 본격적으로 유학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제 시대에도 일본 패스포트(여권)를 갖고 1920년대와 30년대에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에 건너온 한국인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관계되는 역사공부는 많이 하지 못했다.

일본의 게이오대(慶應大)를 창립한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 같은 학자는 미국에 왔다 돌아가서 『西遊記』라는 서방 시찰에 관한 여행기를 썼다. 이 책은 일본사람들의 서양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주었으며 또 서양의 근대화 과정을 많이 공부할 수 있게끔 자극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근대화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데 기반이 된 책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일본 유학생들이 유럽과 미국에 유학한 후 미국에 관해 연구한 결과도 많이 출판됐으며, 또 미국에 대한 일본 서적은 수없이 많은데 왜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서적은 별로 없단 말인가. 일본인과 한국인의 미국연구를 비교하려고 해도 한국 유학생들의 연구결과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 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한국 유학생은 대부분 미국의 대외정책을 공부하며 미국의 외교정책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한미관계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역사는 서술해 놓았지만 미국 역사에 관한 전문적인 책을 쓴 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1950년대의 미국 유학생 중에는 미국역사 교과서를 번역해 한국에서 출판해 한국인들이 미국을 이해하는 데 공헌한 학자도 있다. 한국인 유학생은 미국 역사에 관해 전공할 필요가 없었든지 아니면 전공하기에는 너무도 벅차고 어려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유학생 중에는 미국 역사 전문가는 1940년대에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국역사는 20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부할 재미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역사공부는 흥미가 생기고 취미가 생겨야만 파고들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역사는 구라파의 역사에 비하면 매우 짧고 또 흥미가 없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고 전공도 하지 않았다면 5천년의 한국역사는 재미가 있어서 공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1950년대의 미국 유학생과는 달리 1960년대부터는 한국에서 해외에 유학을 떠나는 유학생들에게는 한국역사도 유학시험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미국에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은 반드시 국사 시험을 치러야 했다고 우리 후세 한국 유학생들은 말한다. 한국역사 공부는 너무도 지루하고 힘들었다면서 유학시험의 암기식 공부 때문에 역사공부에서 점점 멀어지고 역사공부는 피하게 됐다고 실토하는 유학생도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저명한 역사교수 E. H.카(E. H. Carr) 박사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저술해 출판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의 사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가에 대해 도움을 많이 주는 책이다. 역사공부는 과거와 현재의 다이아로그(대화)를 객관적으로 기록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를 해야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공부를 통해서 우리의 현대사를 이해하고 또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고록의 서사 시간대를 1960년대로 다시 돌아가 시간의 흐름을 다시 간추려 보겠다. 그 당시 나는 뉴욕한국학생회 회장의 임기를 무난히 끝마치고 몇 개월 동안 문을 닫아걸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콜럼비아대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 예비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1963년 가을,시험 결과 무난히 합격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 이와 함께 나는 하와이에 새로 설립된 동서문화센터의 선임연구소(Institute of Advanced Studies)의 연구위원으로 임명됐다.

그 무렵 프린스턴대의 한국학 전문가이며 정치학자인 그랜 페이지(Glenn Paige) 교수가 주축이 돼 동서문화센터에 개발도상국가의 개발행정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박동서 교수와 스위스 대사를 역임한 이한빈 교수가 참여했고,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일본과 필리핀에서 국제문제와 개발도상국의 개발 행정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참여한 세미나였다. 나는 주로 개발행정세미나의 보고를 기록하고 세미나 아젠다를 설정하는 조정관(Coordinator/Rappotour) 역할을 담당했다. 그와 같은 학술적인 역할은 나의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1964년부터 1965년까지 하와이에서 동서문화센터의 연구위원으로 월급을 받아가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내가 하와이로 떠나기 전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공부하면서 뉴욕의 한인단체에 관여한 일이 있다. 특히 뉴욕한인회를 창립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이라 함은 뉴욕시뿐만 아니라 뉴저지 주와 코네티컷 주를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뉴욕주재 한국총영사관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됐을 때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거주하는 한인들과 유학생의 여권관리와 다른 업무를 담당해 왔다. 나는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생활(1963~1965)을 거쳐 인디애나주립대(University of Indiana at Bloomington)(1965~1970)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대학생을 가르친 몇 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반세기동안을 메트로폴리탄 뉴욕에서 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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