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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대가 달라졌어요!
우리 군대가 달라졌어요!
  •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 승인 2013.04.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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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지난 몇 개월간 내게 있었던 가장 유쾌한 경험을 꼽으라면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레밀리터리블’의 시청을 빼놓을 수 없다. 현역 군인이 제작하고 직접 출연까지 하여 만든 패러디물. 물론 인터넷 패러디물이야 이미 예전부터 차고 넘쳤던 것이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 중 특히 각종 선거를 앞두고 제작되는 정치 패러디물은 우리 네티즌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레밀리터리블’은 이런 패러디물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군 홍보물 '레밀리터리블'의 기발함

먼저 ‘레밀리터리블’은 군홍보의 일환으로 제작됐으면서도 사병의 관점을 취하고 있고 또 그러면서도 군의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 주지하듯이 군홍보물의 제작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배달의 기수’로 대표되는 과거 군홍보물을 보면 등장인물은 사병이지만 그 관점은 일반적으로 군 지휘부의 관점을 취하고 있었다. 국가와 민족, 또는 “나를 믿고 오늘 밤에도 단잠을 이루고 있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고된 훈련을 견디며 씩씩하게 군생활을 하는 병사의 모습이 주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 홍보물 속에서 군을 바라보는 사병 자신의 관점, 사병 자신의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레밀리터리블’이 채택한 소재는 사병들이 가장 힘겹고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작업, 제설이다. 철책선의 철조망을 점검하거나 혹한을 헤치고 눈밭을 구르는 병사의 모습이 아니라 끝도 없는 제설작업에 시달리며 짜증을 내는 병사가 소재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제설작업에 동원되느라 면회 온 애인과 제대로 시간도 보내지 못하는 존재이다. 애인과의 짧은 만남을 안타까워하는 사병의 모습 속에서 과거 군홍보물의 주제였던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레밀리터리블’은 우리 군이 지난 20여년의 이른바 문민화를 거치며 과거의 경직성을 탈피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사실 무의미한 제설작업에 시달리는 군인의 모습은 홍보용 소재로는 결코 적합한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모병제를 취하고 있었다면 이 소재는 당장 퇴짜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밀리터리블’은 군이 스스로를 웃음의 소재로 삼음으로써 오히려 역으로 군대가 가볼만한 곳임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차피 갈 수밖에 없는 군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군대가 그렇게 두려워해야 할 공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를 벗어던지고 스스로를 웃음의 소재로 내놓는 군을 보며 ‘배달의 기수’에 익숙한 세대는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패러디물을 제작한 곳은 우리 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육군이 아니라 공군이다. 공군의 광활한 활주로가 제설작업의 고단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는 하지만 특히 동부전선의 산골에서 도로 확보를 위해 제설작업에 매달리는 육군의 어려움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

그런데 왜 육군은 이런 패러디물을 만들지 못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육군 위주로 편제돼 있는 우리 군의 체제 속에서 여전히 권위주의를 벗어던질 기회를 제대로 가지지 못한 육군의 현실과 연관돼 있는 것은 아닐까. 신라의 6두품이나 조선의 중인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새로운 사상이나 변화의 흐름에 더 빨리 적응한 사람들은 당대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기존 체제의 주변에 있다 보니 그들은 기존 체제의 모순을 더 빨리 볼 수 있었고 변화에 대한 욕구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육군과 달리 공군은 선택에 의해 가는 곳이다. 가만히 있어도 다수의 사병이 자동적으로 충원되는 육군과 달리 군입대자의 선택에 의존하는 공군은 그만큼 변화의 필요를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재향군인회 현수막과 세대변화

근자에 들어와 우리 군의 변화를 보여주는 소식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부모를 안심시킬 수 있는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병영생활 역시 신세대 장병들의 기호에 맞춰 많은 변화를 이뤘다고 한다. 당연히 그들 소식 중 다수는 육군과 관계된 것이다. 이는 육군조차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변화가 젊은이들에게 군대 가고 싶은 마음을 함양하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분명하다. 육군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육군의 변화는 기껏 ‘푸른 거탑’의 방영을 방해하지 않는 것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내를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친 재향군인회의 건물 밖으로는 북한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형식은 재향군인회이지만 압도적 다수의 일반 사병 출신 재향군인과는 거의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 곳. 그렇다면 신세대 사병과 직접 맞닥뜨리는 육군조차 장악하지 못 한 변화의 물결이 재향군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기는 당연히 시기상조일 것이다.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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