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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行 바닷길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지도 등 희귀본 수록
燕行 바닷길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지도 등 희귀본 수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4.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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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화제_ 「수로 연행도」 등 증보한 『연행록총간 증보판』 나왔다

 

▲ 녹도에서 석성도, 장산도를 지나 광강도까지 가는 물길은 매우 거친 곳임을 나타낸 그림지도. 크고 거센 파도로 풍랑이 심한 지역임을 나타냈다. 또 그림의 상단을 보면 구름 위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이는 ‘용오름 현상’을 기록한 것이다. 洪翼漢(1586~1637, 조선 후기의 문신)의 연행록에도 이 지역을 지날 때 용오름과 격랑이 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항승람 건ㆍ곤」(미상, 1624년)
조선시대의 사신이 바닷길을 통해 중국에 갈 때, 수로와 지형, 위험지역 등을 생생하게 채색 그림에 담은 희귀한 자료가 일반에 공개됐다. 이 작업의 주인공은 임기중 동국대 명예교수(75, 고전시가). 임 교수는 지난 17일 「수로연행도」등 휘귀본 13종을 비롯 101종의 연행 관련 자료를 추가한 데이터베이스 『연행록총간 증보판』(누리미디어)을 펴내면서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그는 2011년 10월 연구자들을 위해 관련 내용을 USB에 담아 공개한 바 있다(<교수신문> 619호, 2011.10.17. 8면 참조). 이번에 공개된 「수로 연행도」는 1617~1636년 사이에 후금(청나라의 전신)을 세운 건주 여진의 등장으로 육로를 통한 중국행이 차단당했을 때 뱃길을 통해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면서 작성된 것이다.

 

육로와 달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로 연행의 여러 가지 위험 요소에 대비하기 위해 화공을 대동해 지형, 위험지역 등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한 것이 「수로 연행도」다. 이는 화공이 직접 사신의 배에 동승해 현장에서 채색한 것으로, 조선으로 돌아와 부본을 작성해 다음 번 수로 연행을 갈 이들에게 참고 자료로 남겨졌다. 당시 바닷길은 사신 일행이 생사를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길이었다. 1617~1636년 사이에 수로를 통해 명나라에 다녀온 바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安璥(1564~?)은 풍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조선으로 돌아와, 후손들이 자신처럼 또 위험한 수로로 연행을 가야 할 것을 우려해 “문과 급제를 시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

다섯 번 째 증보… 총 556종 수록
이번에 펴낸 『연행록총간 증보판』에는 「航海朝天圖」(작자 미상, 1624년)를 비롯해 모두 13종(138면)의 수로연행도가 수록돼 있다. 이 중 「梯航勝覽 乾ㆍ坤」 은 평안도 곽산을 출발해 중국 蓬萊(오늘날의 산둥성 펑라이시)에 도착할 때까지 주요 지명과 연행 과정에 위치한 섬 등을 ‘의궤’ 형식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형과 방향만 표시하는 일반 해도와 달리, 풍랑이 심했던 지역은 파도를 높고 험하게 그리고, 승천하는 용을 그림으로써 용오름 현상을 표현하는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실용적 정보를 담기 위해 노력한 점도 매우 흥미롭다.

또 중국 봉래의 봉래각과 항구의 지형 등 연행 경로 주변의 지형과 정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높다. 특히 「항해조천도」에는 요동 도독으로 있다 후금에게 패해 압록강변으로 도망친 뒤 평안도 앞바다의 가도에 숨어 있던 명나라 장수 毛文龍(1576~1629)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어, 후금-명-조선 사이의 긴박한 삼각관계의 일단도 엿볼 수 있다.

중국측에서도 자료의 역사적 가치 높이 평가
산둥성 펑라이시는 최근 임 교수에게 봉래각이 그려진 수로 연행도 관련 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청해왔다. 중국 쪽도 이 자료의 역사적 문화사적 생활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에 출시된 『연행록총간 증보판』 데이터베이스는 임 교수가 2001년 398종의 연행록을 100권에 실어 출간한 이래 진행한 다섯 번째 증보다. 증보를 거듭하면서 국내외 연행록과 관련한 자료를 거의 망라했으며, 증보 때마다 이본, 희귀본 등 주요 연구자료들을 추가해 화제가 됐다.

이번에는 모두 101종이 증보돼, 수록 연행록 수는 총 556종에 이르렀다. 「수로 연행도」 13종 이외에도 ‘심양일기류’ 17종과 ‘열하일기 이본’ 19종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임 교수는 『瀋陽日記』를 연행록에 포함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연행은 구체적으로 연경(오늘날의 북경)을 다녀온 기록이라는 뜻이기 때문. 하지만 당시 후금과 청의 수도였던 심양, 명의 임시 수도였던 남경은 연경과 똑같이 수도 구실을 했고, 이러한 이유로 임 교수는 명나라 때 남경에 다녀온 것도, 청나라 때 심양에 다녀온 것도, 여행으로 북경을 다녀온 것도 모두 『연행록총간 증보판』에 추가 수록했다.

명말 청초 조선의 외교 관계와 조선인들의 세계 인식, 동아시아의 국제교류와 경제적 관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의 폭을 더 확장한 것이다. 『심양일기』는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1612~1645)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면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심양일기』는 소현세자가 볼모로 끌려갈 때 수행했던 시강원의 관리들이 기록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총간에는 『瀋陽狀啓』류도 수록했는데, ‘장계’는 세자의 행적을 조선 본국의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어서 어떤 부분은 『심양일기』보다 더 상세히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심양일기류 17종과 열하일기 이본 수록
이번 증보판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주요 이본 19종을 한데 모았다는 점이다. 문학·역사·사상적 측면에서 연행록의 백미로 평가받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조선 말기 지식인 사회에서 비교적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인사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텍스트였기 때문에, 그 필사본 등 이본들도 텍스트로서 수준과 내공이 매우 높다고 임 교수는 지적한다. 하지만 『열하일기』 이본들은 각 소장처마다 ‘귀중본’으로 관리돼 있어 열람이 쉽지 않았고, 정본의 추정과 이본의 가치 판단 등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텍스트 연구의 차원에서 『열하일기』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 교수는 『연행록총간 증보판』을 통해 미국 UC버클리대 등에 산재해 있던 열하일기의 이본 19종을 한 데 모아 공개함으로써, 『열하일기』의 정본화 작업과 이본 텍스트 연구의 새 장을 여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연행록총간 증보판』 데이터베이스는 DVD와 웹 서비스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DVD는 12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국의 대표적 지식 콘텐츠 KRpia(http://krpia.co.kr)에서 웹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행록총간 증보판』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13C~19C)의 작자가 확인된 314명과 그밖의 여러 연행사들이 중국을 왕래하며 남긴 556종의 개인적 기록을 담고 있다.

10만1천 여 면의 영인본 이미지는 물론, 『通文館志』, 『同文彙考』 등의 참고자료를 수록하여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으며, 1천800여 회의 중국 왕래 일람표를 정리 수록해 동아시아 700년 교류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한편, 임 교수는 연행록 연구와 함께 연행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데도 공력을 집중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연행록을 반드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해, 한·중 두 나라를 축으로 동아시아와 세계사로 이어진 700년 평화의 기록을 지구촌 사람들의 자산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데서 그의 뚝심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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