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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역사학회 50주년 기념 역사학 국제회 ‘역사 속의 한국과 세계’
학술대회 : 역사학회 50주년 기념 역사학 국제회 ‘역사 속의 한국과 세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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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5 11:57:10

친일청산이라는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역사학계의 반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역사학회(회장 이주영 건국대 교수)가 탈국수주의적 ‘역사교육’을 새롭게 제기하고 나서 주목된다.

지난 15일부터 사흘동안 서울대 호암관에서 세계사학회(World History Association)와 함께 ‘역사 속의 한국과 세계’를 주제로 역사학회 50주년 기념 역사학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학회 창립후 50년간 역사학회의 과제가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것에 있었다면, 이제 미래를 결정할 역사교육으로 그 시선을 돌린 것은 중요한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학계의 내부적인 시선 변화와 함께 외부적으로는 세계 역사학계와도 그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는 시도였다.

제리 벤틀리 미국 하와이대 교수, 장카이유안(章開沅) 중국 화중 사범대 교수, 하마시타 타케시 일본 도쿄대 교수 등 세계적 석학을 비롯해 11개국 역사학자·교사 2백여 명이 참가한 것도 역사학회의 눈에 띄는 성장이라 평가할 만 하다.

이번 국제회의는 장카이유안 중국 화중 사범대 교수,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전체 강좌, 역사학회와 세계사학회가 같이 진행한 연합 분과 그리고 37개의 개별 분과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 중 역사학에 대한 큰 안목을 제시한 전체 강좌와 조선과 일본, 조선과 청나라의 국제무역이 활발했음을 증명하는 연구가 발표된 ‘16∼18세기 한국의 대외 교역’을 주제로 열린 연합 분과도 주목을 끌었다.

개별 분과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발표됐으나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 역사교과서의 사회사’,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의 위상’, ‘세계사의 내용 재구성 방향’, ‘세계사 시험과 교재’, ‘일국사와 세계사’ 등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교육에 관한 논의가 두드러졌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그 논의가 진척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눈에 띄는 결실이었다. 일선의 역사교사들과 함께 역사교육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세계사학회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눈길 끈 역사교과서 서술체계 비교

백영서 연세대 교수(사학)는 ‘동아시아 국민국가의 궤적과 역사교과서’라는 발표에서 “동아시아의 역사교과서는 일본 학제의 영향 아래 처음부터 국사와 만국사 체제로 분리되어 형성된 공통적인 특징이 있고 이를 지금까지 답습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역사교과서를 관통하는 역사의식은 ‘진화론적 문명사관’에 머물고 있는 것인데, 이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근대성이 만들어낸 국민국가와는 다른 국가의 모습을 동아시아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박명규 서울대 교수(사회학) 역시 ‘일본역사교과서 문제와 탈식민주의’에서 일본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설명한 후, “일본교과서에 대한 국가적·비국가적 차원의 비판을 다 포괄하기 위해서는 탈식민주의의 이론적 지향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탈식민주의를 특정한 식민 과거를 망각하려는 욕망의 결과로 나타난 ‘기억상실에 대한 이론적 저항’이라고 본다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된 ‘기억상실’의 영역을 재구성하면서 궁극적으로 국가주의의 한계까지도 넘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보인 것이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회의 경험에 기초해 전개된 탈식민주의의 개념체계들을 한국 및 동아시아적 맥락 속에서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역사교과서가 국민국가의 틀에 잡혀있는 것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극복할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탈식민주의의 이론적 명제를 절대화해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설명 가능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고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이밖에도 역사교육 관련 분과 중 관심을 모았던 것은 5명의 중·고등학교 현직 역사 교사들이 진행한 ‘현장교사가 보는 세계사 교육의 문제’라는 토론이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한 것은 “역사교과가 사회교과에 통합돼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김범석 중산고 교사는 “현재 사회교과의 교육목표는 ‘민주시민성의 함양’이다. 이것은 자국의 역사가 민주주의 성립과정과 일치하는 미국식 교육과정을 그대로 이식한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의 역사는 민주시민이라는 개념 성립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교육목표로는 역사교육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외 학자 상호토론 부족 아쉬워

또한 세계사를 선택 과목으로 지정한 7차 교육과정으로 인해 절름발이 역사교육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과 역사과목이 입시에서 비중이 낮아지면 현실적으로 역사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역사교육의 위상에 대한 학계의 논의부족이 남긴 현장의 어려움과 학문의 식민성이 재생산되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편 역사학 국제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적극지지했다는 하이디 로프 前 세계사학회회장은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개최한 이번 대회가 진행이나 내용면에서 훌륭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박흥식 신라대 교수(역사교육학과)는 “이번 대회의 개별 주제가 연구자들의 관심에만 초점을 맞춘 세부적인 논의들이라 일반인의 참여를 끌어내기 쉽지 않았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또 “국문·영문판 자료집이 있기는 했으나, 통역기 없이 한국어 또는 영어로만 진행되는 분과가 많아 국내외 학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토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역사학 국제회의는 역사학계가 지난 50년 동안 쌓아온 역량을 발휘한 기회였다. 동시에 절름발이 역사교육을 재고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금 상기시킨 자리기도 했다. 역사교육에 눈돌린 학계의 시선이 앞으로 또 어떤 성과를 가져올 지 궁금하다. 이지영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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