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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을 사유한 지적 모험가들 … 수의 언어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히다
無限을 사유한 지적 모험가들 … 수의 언어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4.1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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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수의 비밀-세상의 코드를 찾은 괴짜 탐험가들』 피터 벤틀리 지음 | 신항균 옮김 |경문사 |256쪽 | 20,000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형태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수들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원의 지름과 둘레의 비율이나 조개껍데기의 곡선에 숨어 있는 비율과 같은 수들이 자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동일한 기하학적 형태로 수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심지어 빛의 속도와 같이 생각지도 못한 수에 우주 구조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수가 감추고 있는 미지의 영역을 풀어보려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 일군의 탐험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진실을 찾아내 그 진실을 설명하고 기록하기 위해 ‘수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영국 런던대 컴퓨터과학학부 선임연구원이자 교수로 있는 저자는 솔직히 털어놓는다. 우리는 모두 수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저자는 수의 본질에서부터 수가 커지면 얼마나 커질 수 있을지를 따져본 무한대 등 다양한 수학의 지평선을 항해하면서,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탐험가이 개척한 미개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곳곳이 다 흥미롭지만, 눈길 끄는 부분은 무한을 다룬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는 우주를 설명해주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수가 우주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수가 가진 가장 독창적인 특징은 가장 큰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이 끝없음 앞에서 사유의 항해를 시작해왔다. ‘무한대로 큰 규모의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한대로 작은 어떤 것은?’ 이러한 고민을 했던 초기 인물 중에는 제논(Zeno)을 거론할 수 있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였던 제논은 스승에게서 ‘일원론’을 배웠다. 일원론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유일한 궁극적인 존재의 단면이라고 한다. 여기에 변화는 있을 수 없었다. 일원론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고 존재가 아닌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제논은 일원론에 관심을 가져서, 40개의 역설을 담은 책을 쓰기도 했다. 바로 이 책 때문에 수세기 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두통을 겪어야 했고 좌절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누군가가 이 책을 훔쳐서 제논의 허락 없이 출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논은 유명인이 됐고, 아테네로 건너가 젊은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아킬레스의 역설’, 즉 아킬레스가 느리게 뛰는 거북이를 절대로 추월할 수 없다는 역설이 탄생했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논법이 착오로 가득 차 이의를 제기할 가치도 없다고 폄하했다. 제논은 역설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한대로 작아지는 수를 사용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무한대의 개념은 좀 더 실용적인 개념이었다.

그는 눈으로 직접 관측한 내용과 논리적 사고를 통해 다양한 우주의 작용을 설명했다. 유한을 확신했지만, 무한대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은 알 수 없지만 무한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다만 그는 무한대를 현실이 아닌 가능성의 개념이라고 보았다. 13세기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언급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수용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무신론자들의 암울한 믿음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많은 이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우주가 유한하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지지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서 어긋나면 ‘이단’으로 취급당했다. 『무한 우주와 세계에 대하여』(1584)를 쓴 지오다노 브루노는 그에게서 ‘무한대’를 믿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려 애쓰던 교회로부터 결국은 ‘무한대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불태워졌다. 이 시기 상상력이 풍부했던 갈릴레오는 브루노의 화형 소식을 듣고서도, 위험한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대는 오직 가능성에 불과하며 물리적 현상이 될 수는 없다고 했지만, 갈릴레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유한한 마음으로 무한대를 논하려고 한다.

유한하고 제한된 것들을 정의하듯 무한대를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한한 양을 비교할 때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크다거나 서로 같다는 등의 등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썼다. “모든 수들의 총체는 무한하다. 제곱값들도 무한히 존재한다. … 유한대를 나타내는 ‘같다’, ‘더 크다’, ‘더 작다’와 같은 표현들은 무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칸토어와 아인슈타인을 거쳐 무한대의 문제를 소개한 저자는 20세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마지막으로 불러냈다.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내 물리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무한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이구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돌아간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았는지 모른다. 무한대는 생각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른 의견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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