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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냅스와 뉴런 혹은 하극?
시냅스와 뉴런 혹은 하극?
  • 교수신문
  • 승인 2013.04.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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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하극이란 낱말을 구성하는 두 글자는 모두 틈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두 글자가 한문 고전들 속에서 종종 사용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많은 한자어들이 그런 것처럼 요즘 시대에는 좀처럼 쓰이지 않는 낱말이라는 점이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한참 동안을 잊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의 『시냅스와 자아』를 읽으면서였다. 시냅스(synapse)는 뇌세포인 뉴런과 뉴런의 연결 부위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연결이라기보다는 뉴런 사이의 미세한 틈을 뜻하기 때문이다.

뉴런의 이쪽과 저쪽은 이 틈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전기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는다. 흥분과 억제 사이를 오가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과 도파민 같은 신경조절물질 등이 이 사이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주역들이다. 감각과 사고, 정서와 느낌, 사유와 욕망은 바로 이 시냅스를 사이에 둔 상호작용의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연극의 각 장에 붙여진 변별적인 이름들이다. 르두가 책의 마지막을 “당신은 당신의 시냅스들이다. 그들이 당신의 정체성이다”라는 선언으로 마감하는 것도 일면 수긍이 간다. 이 선언의 밑바탕에는 ‘연결을 위한 분리’라는 시냅스 시스템의 독특한 구조가 갖는 가소성(plasticity)이 놓여있다. 가소적이라는 말은 시냅스가 특정한 상호 작용에 의해 양쪽 뉴런의 구조를 변경할 수 있다는 뜻이다. 뉴런은 주변의 뉴런을 통해 신체의 여타 부분에서 오는 감각 신호들에 반응하기 때문에, 뉴런의 상호 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은 주변의 뉴런에서 특정한 신호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 체감각 세포들이 외부 혹은 내부의 자극에 노출된 것이고, 보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이 무언가를 경험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가소성이란 결국 경험을 통한 뉴런의 구조 변화 가능성을 뜻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뇌 시스템들이 처음부터 가소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대부분의 뇌 시스템은 특정한 작업을 처리하기 위한 뉴런 네트워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소성은 원래 이러한 특정한 작업의 수월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뉴런 구조의 특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즉, 가소성은 부분적인 것이지 전면적인 뉴런의 구조 변경에 간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미세하고 부분적인 변화 가능성 속에는 놀라운 것이 잠재돼 있다. 르두의 통찰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이러한 희미한 가소성을 인간의 자아 형성을 위한 생물학적 기초로 삼으려는 순간이다. 뉴런 네트워크의 초생적 특징과 결합된 이 미약한 변화 가능성이 인간의 자아가 조립되는 생물학적 기원이라고 르두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통찰이 갖는 타당성의 정도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검증할 것이다. 반면에 내가 의미심장하게 여기는 것은 가소성과 연결을 위한 분리라는 이 기묘한 구조가 해내는 역할이다. 뉴런들이 틈을 갖는다는 사실은 그들이 연결을 준비하는 상태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늘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극이 발생하더라도 글루타메이트는 흥분 신호를 실어 나르는 반면,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는 반대로 신호를 억제한다. 주변의 뇌조직과 신체에서 분비되는 온갖 조절물질들이 그 사이에 개입해서 벌이는 상상할 수 없는 상호 작용의 회화적 이미지는 떠올리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신경 신호들은 기본적으로 흥분이거나 억제이고, 뉴런들은 서로 떨어진 상태로 공간을 사이에 둔 채 신호들을 주고받는다. ‘따로 또 같이’라는 표현이 문자 그대로 딱 들어맞는 이 기묘하고 단순한 상호 작용은 전체 뇌의 뉴런 네트워크라는 복잡한 상관물을 배경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유기체를 균형 상태로 유지시킨다. 이 균형 상태를 항상성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다마지오(Antonio Danasio)였다.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는 신체와 뇌, 환경의 상호 관계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들에 도전한다.

존슨(M. Johnson)의 말처럼 ‘사람은 마음과 몸이 다소 이상스럽게 짜맞춰진 두 ‘사물’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몸 내에서 작용하는 뇌를 지닌 일종의 신체적 유기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이 분리될 수 없는 일원적인 세계 경험의 뿌리가 뉴런의 비좁은 하극을 배경으로 한다는 생물학적 사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럽거나 불쾌한 주장일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이런 생물학적 특징이 모든 문화와 예술, 철학과 과학의 창조와 발달로 나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오히려 자연의 경이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여기에 비한다면 시냅스를 ‘뉴런 하극’ 혹은 ‘뇌 신경세포 하극’이라는 애매한 조어로 에둘러 이해하려는 시도는 정말로 사소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향준 전남대 BK21박사후연구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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