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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사용 가이드
연구비 사용 가이드
  • 교수신문
  • 승인 2013.03.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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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각종 재단에서 운영하는 신학기 장학기금과 학술연구비를 지원하는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특정 재단이나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비 명목으로 논문의 연구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는 경우, 그 지원금에 대해 어떻게 영수증 처리를 할 것인지를 한 시간 넘게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현금으로 프린터에 들어가는 소모품을 구입하거나 자동이체를 통해 카트리지 등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사업자등록증을 제시해 국세청을 통해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처리돼야 한다. 국가지원금이기 때문에, 그 액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논문 등 저서 작업을 위해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영수증으로 처리해야한다.

하지만, 실제로 도서구입비나 번역에 대한 감수료 등이 온라인으로 지급 가능한 요즘, 영수증을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해외에 논문을 투고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편집인(editor)을 둘 경우, 은행에 직접 인보이스(invoice)를 가지고 해외송금 내역 사항에 ‘원고교정비’라고 쓰지만, 실제로 이러한 서류만으로 연구비 정산을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영어권 에디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지불이 거래 가능한 페이팰(Paypal) 방식으로 지불하기를 선호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돈을 지불하는 내역도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융복합 프로젝트로 지원금을 받는 경우는 더욱 복잡해 아마존이나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에도 재단에서 발급하는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연구원과 함께 온라인에서 주문내역을 마쳐야 한다. 연구비 정산관리 연구원이 따로 있거나 간사가 없는 경우 더욱 난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학술지원, 예술진흥기금 등을 모두 국가차원에서 관리·감독하기 때문에 국가의 예산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지침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통제된 상황이라면 연구와 예술활동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이를 처리하고 고민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재단 측의 연구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뉴욕에 본부가 있는 사무엘 H. 크레스(Samuel H. Kress) 파운데이션에서 해외 연구를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금을 받았었는데, 연구 이후 보고서를 작성해 재단 측에 전달해야 했다. 보고서에는 예산사용내역을 밝혔지만, 영수증을 수합해 제출하는 방식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재단 측이 연구비 수혜자들을 믿고 연구를 진행하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상호 신뢰를 통해 구축된 믿음이 재단 측의 업무수행에서 느껴졌다. 이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이 많은 사회에서 가능한 신뢰시스템인 것 같았다. 대학원 수학시절, 레옹 레비 재단(The Leon Levy Foundation)에서 적어도 미술사와 미술이론에서 특정 시수를 이수하면 누구나 지원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 있었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은 한 두 학기동안 자신이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실제로 가고 싶었던 도시나 미술관, 유적지를 직접 방문해 문화와 예술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보통 대학원생들은 긴 여름 방학을 이용해 유럽, 아시아, 남미, 미국 등을 여행했고, 9월 초에는 레비 부부를 학교로 초대해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기업과 민간에서 주도하는 문화와 예술 영역의 지원금과 연구비는 지금은 미국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상당히 위축됐겠지만, 크레스 재단, 레옹 레비 재단, 왈리스 재단(The Wallace Foundation) 등에서 받은 연구지원금은 사용내역을 관리, 감독하기보다는 연구에 필요한 제반사항 등에 큰 도움을 주도록 체계화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 세계, 통섭과 융합의 시대라고 도처에서 말하고 있지만, 국내의 연구 시스템은 아직도 변화하는 흐름을 받아들이며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또한 통섭과 융합의 시대라고 하지만, 연구비 지원에 있어 융복합 프로젝트 지원금은 해마다 줄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과 과학, 인문·사회·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기 다른 용어로 설명되는 개념들을 서로 이해하는데 근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연구과제가 시작하면, 연구원들은 영수증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할지, 최종 결과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먼저 살펴보게 된다. 이러한 사항들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모든 연구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엄격한 규정은 연구진행에 있어 깔끔한 정산처리는 가능하지만 연구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연심 홍익대·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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