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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믿지 못할 업적평가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믿지 못할 업적평가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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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뚫린 평가기준…교수들 “못 믿겠다”
연봉제나 재임용과 밀접히 관련돼 교수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업적평가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제몫을 다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 기준부터 불명확해 업적을 평가하는 정확한 잣대로 사용하기에는 무리일뿐더러, 평가과정도 베일에 가려 있어 정작 평가받는 교수들은 어떤 경위로 연봉이 삭감됐는지, 재임용에 탈락했는지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교수들이 업적평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가.

두 달 전, 김 아무개 교수(관광경영학)는 12년간 몸담아 온 ㄷ대로부터 ‘임용기간만료’ 통지서를 받았다. 학교측이 든 이유는 ‘근무실적이 불량하다’는 것. 업적평가에서 83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터라 결과에 납득할 수 없었던 김 교수는 학교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사실 김 교수는 업적평가에서 전체 4위를 차지했다”며 말문을 연 학장과의 면담에서 김 교수가 알게 된 것은 이 대학이 ‘업적평가’의 탈을 쓴 ‘자의적 잣대’로 교수들의 임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과급 연봉제 시행을 위한 전제조건인 교수업적평가제는 국가적 차원에서는 경쟁 유도를 통해 대학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측면에서, 대학 차원에서는 운영 및 특성화 방향을 설정·지원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돼 현재 많은 대학들에서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불명확하고 학문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한 탓에 교수들의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업적평가가 대학측에 ‘찍힌’ 교수들을 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고무줄 평가에 우는 교수들

김 아무개 교수 재임용 탈락의 경우도 ‘업적평가 결과 근무실적 불량’이라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 이면에는 ‘학장과의 불화’라는 내막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일본 대학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항의’의 활동들은 어쩌면 내 자신에게는 별 필요없는 것일 수도 있다”라는 김 교수는 “그러나 내가 당한 일은 앞으로 다른 교수들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상 법인과 싸운 교수는 다른 대학에서도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까닭에 교수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냥 혼자 삭히기 십상이다”라고 꼬집는다.

업적평가제에서 제시하는 ‘업적’이란 ‘교수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총체’를 말하는 것으로, 평가는 교육, 연구, 봉사의 3개 영역으로 나누어 교육업적은 수업지도, 논문지도, 교육수상 등을, 연구업적은 논문, 저서, 연구보고서 등을, 봉사업적은 행정보직, 학술단체 봉사, 수상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대학의 현행 업적평가 기준에는 아직까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을뿐더러 정량적, 획일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정확한 평가의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실제 ‘평가대상’인 교수들의 평가다.

실제로 평가기준을 비교적 세부항목까지 정해 놓고 있는 ㅅ대의 경우 ‘논문’ 부문을 국제전문학술지 A 150점, B 100점, 국내전문학술지 A 100점, B 70점, 종합학술지 50점, 박사학위 논문 200점, 국제학술회의 논문발표 30점, 국내학술회의 논문발표 20점으로 세분화했다. 반면, ㄱ대학은 ‘국외학술지’, ‘국내학술지’의 단 둘로 나누어 각각 40~60점, 20~40점을 부여하고 있어 그 기준이 정량적, 획일적일뿐더러 평가자의 주관이 크게 작용할 수 있게 돼 있다.

한편, ㄷ대학은 ‘교육자로서의 인품’, ‘학내에서의 인간관계 및 협동성’, ‘전문대학에 대한 교육관과 전문성’까지 평가항목에 포함하고 있어 ‘누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런 항목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마저 제기한다.

이창수 서일대 교수협의회 회장 역시 “심사기준에 들어가 있는 점수표 가운데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 객관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연구실적의 경우 5단계마다 20점씩 올라가게 돼 있기 때문에, 같은 실적이라 하더라도 평가자들의 주관에 따라 편차가 크게는 18점까지 벌어질 수 있다”며 현행 업적평가 기준에서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큰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명성 제고 통해 신뢰 높여야

많은 교수들이 ‘부당한 업적평가’를 호소해 온다는 전국교수노동조합의 김제남 차장은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이 학교측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직접적 대응을 꺼려한다”라고 지적한다. 한번 법인측에 ‘찍히면’ 다른 대학에서도 일제히 문을 닫는 현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쉬쉬해 버리는 교수들. 그러나 업적평가가 ‘교수들을 휘두르는’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는 지금, 대학이 ‘믿지못할 업적평가’를 버리지 않는다면 대학은 계속해서 추문에 휩싸일 것이다. 투명성 제고를 통해 신뢰를 높여야 할 때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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