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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한서대·서원대 등에 기부한 젓갈장수 류양선 할머니
인터뷰 : 한서대·서원대 등에 기부한 젓갈장수 류양선 할머니
  • 교수신문
  • 승인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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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 생각하면 엔돌핀 돌아”
“못 배워 한이 된 사람들이 대학에 기부하는 게지. 똑똑한데 돈 없어서 공부 못하면 오죽 안타까워.” 평생 번 돈을 대학에 기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우문에, 지난 99년 10억원 상당의 재산을 한서대에 기증해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젓갈장수 류양선 할머니(70·사진)의 답은 간단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사연.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고 졸랐는데,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어. 아버지가 책보를 거름독에 던졌을 때 을매나 원망스러웠다구. 내 자식만큼은 원없이 가르쳐야지 하고 그때 결심했지.”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만 자궁발육부진으로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할 수밖에 없었고, 남편과 헤어진 다음 젓갈장사를 하면서 얻은 업둥이도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박사만들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83년 대출 받으면서 알고 지낸 노량진 수협의 백남석 대리가 새우젓과 쌀, 연탄, 과일 등으로 의정부의 한 고아원을 돕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책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애들에게 책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즈음. 고아원, 양로원, 재활원 등 책이 필요한 곳의 명단을 뽑고 한 곳 한 곳 책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을 중도하차하는 대학생들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들에게는 책이 아니라 장학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첨엔 어떤 학교 동창회에 장학금을 기부하다가, 몇몇 학생들에게 쏟아부어야겠다 싶어 거기 교수들에게 좋은 학생을 소개시켜 달랬더니 감감 무소식이여. 이 얘기를 단골 손님에게 했더니 자기네 대학 학생에게 장학금을 달래.” 그 대학이 건국대였다. 류 할머니가 전액 장학금을 주며 키운 건국대 학생도 여럿. “걔네들 중에 한 애는 김치며, 고추장이며, 된장이며를 지금도 갖다줘. 걔가 갖다준 것들은 맛없는 게 없어. 그게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행복이여. 걔들 생각만 하면 엔돌핀이 팔구월 목화송이 피듯 한다니께.” 자식자랑하듯 류할머니는 학생들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서대에 재산을 기부한 사연도 특이하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콕 집어놨던 고향 땅에 어느 머리 좋은 양반이 대학을 세워놨어. 나도 돈 모아서 거기다 대학을 세우고 싶었거든. 잘 됐다 싶어 총장도 만나고 그랬지.” 현재 한서대에 10억원 상당의 상가건물을 기부한 류 할머니는 사후에 자신이 갖고 있는 부동산과 현금 등 30억원 상당의 재산을 이 대학에 내놓기로 한 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기증하기로 약정한 상태다.

“장사가 안 돼 굶어죽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류 할머니에게 어둡고 습기찬 곳에서 젓갈 팔지 말고 이제는 여생을 즐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놀긴 왜 놀아. 일하는 게 제일 행복해. 일하는 것이 내 개성이여. 베풀고 사니까 을매나 좋아.” 딱 떨어지는 대답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칠순된 노인이 쉰 갓 넘은 노인처럼도 보였다. 화장실 간 사이에 손님 놓칠까봐 30년 가까이 물 한컵 안 마시며 자리를 지키는 억척스러움과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으며 보낸 세월의 고통이 사람 좋은 웃음에 감춰졌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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