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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畵와 함께 민중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분야 …迷信이라고 폄하말고 조형적·상징적 가치 찾아야”
“民畵와 함께 민중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분야 …迷信이라고 폄하말고 조형적·상징적 가치 찾아야”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02.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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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 -1. 符籍 연구·수집가 윤열수 가회박물관장

 

▲ 소원성취부적.

▲ 윤열수 가회박물관장
한국 전통문화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오를까. 어느 프랑스 여행자가 한국 전통문화를 상기해주는 현대적 물품이 지나치게 획일화돼 있다고 지적한 것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일례로 인사동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전통상품을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아마도 우리 문화의 원류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일 것이다. <교수신문>은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의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과 함께 격주로 ‘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이하 ‘원류를 지키는 사람들’)을 연재한다. ‘원류를 지키는 사람들’은 민화·부적, 무속, 탈춤, 꼭두, 족보, 단청물감, 장례, 염색 등 전통시대에 형성된 한국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재해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 문화의 원류를 재인식하기 위한 기획이다. 이번 첫호에서는 부적 전문가인 윤열수 가회박물관장을 만났다.

사람의 생은 유한하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기껏 살아봐야 90살 안팍이다. 이 한정된 생 속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추구한다.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자손을 많이 낳아 별 탈 없이 편안하게 오래 살고 많은 복을 받고싶은, 즉 부귀다남과 수복강녕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한마디로 표현해 복을 비는, 이런 祈福을 위해 인간은 뭔가에 기댄다. 종교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측면의 한 수단이지만, 전통적으로 민중의 삶과 함께 해온 게 있다. 바로 부적이다.

부적은 종이에 글씨, 그림, 주술적 기호 등을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 낸 주술적 도구로 전통 기복신앙의 한 수단이다. 집안에 붙이거나 몸에 지녀 복을 불러들이고 액운을 물리치게 하는 도구가 바로 부적이다. 부적의 역사는 깊다. 그 연원은 5천년 전 이상의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적에는 시대를 달리하면서 이 땅에 살아온 기층민중의 진솔한 삶의 애환과 희망이 묻어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과 땅의 조화를 비는 부적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 유산이지요.”

고교시절부터 부적 소중함에 눈떠
윤열수(尹烈秀, 66세) 가회박물관장은 부적이 민초들의 애환이 깃든 소중한 전통문화 유산임을 일찍이 깨닫고 부적 연구와 수집에 거의 평생을 바쳐오고 있다. 윤 관장은 고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 초부터 부적에 관심을 가진다. 그 시기, 부적이라면 그저 무슨 미신 나부랭이 종이로 알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때인데, 윤 관장은 부적의 소중함에 눈을 뜬 것이다. 그 때부터 부적을 모으고 연구한다. 그러니 반세기를 넘긴 이력이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종류의 부적을 모았다. 800여점에 이른다. 서울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그의 가회박물관은 부적을 포함해 민화 300여점과 민속자료 등 조선시대 우리 문화의 기저를 엿볼 수 있는 1천800여점의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에게 듣는 부적 이야기가 재미있다.

부적은 주술적 방법으로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길흉을 관장케 하려는 도구로, 우리 조상들은 그것으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바꾸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조선시대 후기, 우리 조상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부적에 의존하다시피 했다. 아이를 낳을 때, 집을 지을 때, 심지어 나무하러 갈 때도 부적을 사용했다. 부적은 어떤 의미로 보면 옛 유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인간의 일에 시기가 있을 수 없는 만큼 오늘까지도 그 전통과 맥은 이어지고 있는데, 이와 함께 옛 부적은 옛 조상의 시선과 염원이 내포된 기묘한 기호와 도형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이고 있다. 윤 관장은 “민화와 함께 부적은 민중의 마음을 여실하게 읽을 수 있는 분야”라며 그 가치를 내세운다.

“가식 없이 그려진 민화엔 순수하면서도 장난을 좋아하는 민중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들의 원초적 욕망과 꿈이 배어 있지요.” 그 기원이 원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부적은 특히 조선시대 때 그 사용이 일반화 됐다. 전통의학서인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도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있도록 하는 ‘催生符’가 실려 있고, 19세기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는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에 정월 초하룻날, 歲畵를 벽에 걸거나 문을 지키는 神將을 그려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있다고 적혀있다. 부적은 보통 승려나 역술가, 무당이 만든다. 부적을 만들 때는 택일을 해 목욕재계한 후에 동쪽을 향해 淨水를 올리고 분향한다. 그리고 이[齒]를 딱딱딱 세번 마주치고 주문을 외운 후에 부적을 그린다. 부적에 그려지는 그림은 용, 호랑이, 독수리 등의 동물과 해, 달, 별 등이 많으며, 이 외에도 추상적인 渦紋形, 탑형, 계단형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글자는 日月, 天, 光, 金, 神, 火, 水, 龍 등이 많은데, 부적 전체가 한자로 된 것도 있지만, 한자의 破字를 써서 여러 가지로 결합하고 여기에 줄을 긋는 형태들이 많다. 특히 벽사용 부적에 이 파자 구성이 많다. 액을 물리치게 하려는 벽사용 부적에 많이 그려지는 게 호랑이다.

호랑이 부적은 호랑이의 용맹성을 부적 속에 도입해 부적의 효능을 확대시키려 하고 있는데, 예컨대 白虎符의 경우 흰 호랑이를 白公으로 중앙에 정중히 모시고 진칠 시 또는 주검 尸자를 상하에 배치해 아래쪽의 사냥할 田자에 꼬리를 달아 백호를 가두어 두고 경계선에 넘어서면 사냥꾼에게 잡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술적 힘이 강한 부적에 나타나는 글자로는 활 弓, 지게 호 또는 막을 戶, 베어죽일 斬, 귀신머리 甶, 나기지 못할 屆자 등이 있다. 사냥할 田자의 경우 잡신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지게 戶자는 잡신을 지게에 태워 버린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는 게 윤 관장의 설명이다.

부적을 쓸 때 사용하는 글씨는 붉은 빛이 나는 鏡面朱砂나 靈沙를 곱게 갈아 기름이나 설탕에 개어서 쓴다. 경면주사는 유화수은의 일종으로, 특히 神藥의 약재 일종으로 다뤄지고 있는 영험스런 물질이다. 부적을 붉은 색으로 쓰는 이유는 붉은 색이 陽色이라, 陰鬼를 쫓는데 효과가 있다고 여겼고, 붉은 색 자체를 鬼物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위력과 힘을 가진 색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색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동물을 죽여 그 피를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닭의 피는 어둠을 물리치고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 효험을 크게 하려는 부적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부적이 그려지는 종이는 회화나무 열매로 물들인 槐黃紙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치자물을 들인 창호지를 쓰기도 한다. 부적은 보통 종이로 만들어진 것으로 인식되지만, 奇, 나무, 곤충, 동물, 뼈, 청동, 조개 등을 이용해 만든 것도 더러 있다. 나무 부적 중에는 벼락을 맞은 복숭아 나무나 대추나무로 만든 게 상서로운 힘을 갖는다고 여겨지고 있다. 나무가 벼락을 맞을 때 번개신이 깃들여져 잡귀가 달아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적의 형태와 크기도 다양하다. 부적 목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棺을 덮었던 탑다라니 부적으로, 크게는 길이가 2m 넘는 것도 있다. 작게는 2~3cm에 달하는 호신부적, 扇錘부적, 호패부적 등이 있다.

▲ 부적 가운데 가장 예술성이 돋보이는 삼두일족응삼재부.

소원성취부적과 액막이 부적으로 대별
윤 관장은 ‘부적은 재앙을 막고 복을 누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주술물로, 인류가 생겨나고 원시종교가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인 만큼 그 종류는 사용목적과 기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 된다”고 말한다. 하나는 呪力의 힘을 빌려 좋은 것을 더욱 증가시키는 소원성취 부적이고, 다른 하나는 邪, 鬼, 厄을 물리치거나 질병 등을 방어하는 벽사용의 액막이[厄防止] 부적이다. 전자에는 칠성부, 소망성취부, 초재부, 재수대길부, 대초관직부, 합격부, 생자부, 가택편안부, 만사대길부, 정토황생부, 탈지옥부, 조개부 등이 있다. 조개를 형상화한 조개부의 경우 조개의 모양이 여성을 상징하고 있는 만큼 풍요와 다산의 염원이 담겨져 있는 부적이라는 게 윤 관장의 설명이다. 일명 벽사부적이라고도 부르는 액막이부적은 종류가 가장 많고 쓰이는 용도 또한 생활 전반에 걸쳐 다채롭다.

 

半세기에 걸친 부적수집과 연구 … 발로 뛰는 ‘地식인’으로서의 성실한 문화지킴이

부적은 祈福신앙의 대표적 산물, 그 기원은 원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迷信으로 여기지 말고 옛 조상의 지혜와 염원을 읽어내는 가치의 재조명 작업 필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움, 질병이나 재난 등을 막기위해, 또는 煞이 끼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공교롭게 큰 탈이 날 때 귀신 때문이라고 믿었는데, 이 모든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부적이다. 그 종류로는 각종 질병퇴치부, 재앙퇴치부, 귀신불침부, 야수불침부, 호신부, 악몽퇴치부, 도적불입부, 삼재예방부 등이 있고, 이 밖에도 부정에 관한 부적, 농축산물보호부적, 전쟁피하는 부적[避兵符] 등이 이에 해당된다. 윤 관장은 이들 부적을 통해 옛 우리 조상들의 내면에 담겨진 생각과 뜻을 읽음으로써, 그 시대 인간문화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지만, 이와 함께 이들 부적에 담긴 예술성과 회화성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게 꼽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윤 관장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액막이 부적의 하나인 三災부적이다. 특히 머리가 셋이고 몸뚱이와 발이 하나로 그려져있는 ‘三頭一足鷹三災符’는 그 가운데 가장 예술적인 작품으로, 윤 관장이 아끼는 부적 중의 하나다. 윤 관장은 오늘 날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부적은 우리 생활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의미의 길상적 의미와 벽사적 내용이 조금씩 더해져 근래에는 종합적, 다목적 부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 관장은 현대적 부적의 종류로 이를테면 테니스를 할 적에 다치지 않게 하는 부적, 자전거 탈 때 다치지 않게 하는 부적, 그리고 커플은 커플대로, 싱글은 싱글대로 사랑이 영글어지기를 염원하는 ‘밸런타인 데이 부적’ 등을 예로 들었다.

“부적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믿음,”
“모든 현상에 과학적인 증명이 가능하고 의학이 발달된 지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적을 찾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적·심리적으로 각박하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윤 관장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윤 관장은 부적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부적을 그저 단순히 迷信의 한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부적을 통해 모든 불안을 해소하고 복을 빌고자 했던 조상의 지혜와 염원을 읽어내는 한편으로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부적의 상징성과 독특한 조형성을 통해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의 반세기에 걸친 부적 연구와 수집은 앞으로도 이어갈 ‘진행형’ 작업임을 강조한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윤 관장은 원광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미술사학으로 문학박사를 했다. 1970년대 초 우리 민속학의 ‘중시조’로 꼽혀지는 故 조자용 선생의 ‘에밀레박물관’ 학예관 시절 민화와 부적에 빠져든다. 이후 삼성출판박물관을 거쳐 가천박물관 부관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민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에는 『산신도』, 『민화 이야기』, 『민화의 즐거움』 등 다수가 있다. 가회박물관은 2002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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