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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문화인가?
과학은 문화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13.02.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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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인간은 건강이나 환경문제 같은 이슈뿐만 아니라 도시의 적절한 규모, 빈곤의 원인, 도덕성의 근원과 시장의 복원력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생각한다. 과학은 지속적인 탐구, 철저한 자기-비판적 태도와 엄중한 방법으로 획득한 증거에 기반을 둔 방법론이자 철학이다. 과학은 복잡한 문제를 가시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렌즈다. 세상만사는 과학에서 시작되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온라인 과학 잡지인 <시드(Seed)>가 출간된 것은 2001년의 일이다.

 ‘과학은 문화다’는 애덤 블라이(Adam Bly)가 기획한 <시드>의 표지부제로 ‘시드 살롱’을 개설한 후 5년에 걸쳐 진화학자, 철학자, 예술가, 물리학자, 디자이너 및 유전학자 등 저명인사들이 모여 진행한 대화를 정리한 잡지다. 대화에 참여한 이들은 도덕성의 기반, 진실의 본질, 지식의 한계 등의 주제를 주로 진화론적 측면에서 논의했다. 과학은 이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문화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예술적 그리고 지성의 지표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의 과학은 문화인가? 요즈음은 여러 학문 분야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경계를 장벽이 아닌 널찍한 미지의 영역으로 보고 인간의 내면에는 미개척지를 탐색하는 영역이 존재할 것이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대니얼 데넷’은 이 미지의 영역을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서서 밧줄로 서로를 묶으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서로 상대편 배에 밧줄을 던지기는 했지만 배는 아직도 삐걱거리며 부딪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밧줄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 설명한다. ‘데넷’은 진화론이 위대한 것은 모든 것을 통합하는 시각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앨런 라이트먼’과 ‘리처드 콜턴’은 현 시대의 매우 빠른 변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창의력의 첫 번째 요소는 지루함’이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표현을 빌려 항상 뭔가를 해야 하고 더 소비하고 점점 빨라지는 이 시대의 광기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단조로운 반복도 필요한 현대인의 생활을 얘기하고 있다. ‘라이트먼’의 지적에 따르면 과학기술이 지닌 나쁜 점 가운데 하나는 생활의 페이스가 너무 빨라지고 이에 따라 위에서 말한 지루함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항시 바쁘게 뛰어 다니기만 한다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창의력 발휘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가치관은 무엇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마저 빼앗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인간을 시간의 개념으로부터 이탈시키기 때문이다. 예술의 시간은 시계의 시간과는 다르다. 음악회건 무용 공연을 보든 예술 속에서 사람은 시간표에 묶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런 면에서 ‘라이트먼’은 세상이 빨리 돌아 갈수록 예술을 감상하면서 시간이 정지하는 느낌을 갖는 것이 정신건강과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라이트먼’은 사람들이 초보일 때 눈과 귀가 가장 활짝 열려 있으므로 과학자건 예술가건 초보자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초보자는 어떤 선입견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업적은 그들의 젊은 시절에 이뤄진 것이라 여겨진다. 젊을 때는 이미 알려진 법칙이 강요하는 전통이나 도그마가 별로 없고 어떤 의문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특정 학문 분야에 정통해 있으면서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시각을 지닌 학문적 아웃사이더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와 연관된 주제로 객관성과 이미지에 대한 논의에서 ‘알바타’는 불변의 개념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사회, 예술, 과학 모두에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대의 산업발전과 도시화에 따라 인류는 생물종다양성의 감소와 자연생태계의 파괴라는 스스로 부른 재앙과 함께 살고 있다. 세계화에 의해 추동된 단일문화 때문에 인류의 문화다양성도 감소하고 있다. 이런 재앙은 디지털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결국 인간은 가상 세계에 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는 사물의 이미지를 볼 수만 있으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환경변화에 따른 인간 및 자연생태계의 교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면에서 과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 변화가 사회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뛰어난 과학은 학문적인 언어와 전문용어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적 시각이 필요한 때다. 과학적 지식은 선하고 보다 많은 과학적 지식의 축적이 인류를 더 여유롭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再點火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이 우주 개발이나 우주 식민지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식의 제국주의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과학은 공평하고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디어든지 누구에 의해서나 어느 때든지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문화의 근본이며 과학의 지속성이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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