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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고 있는 선택교과서 현대사 부분
논란이 되고 있는 선택교과서 현대사 부분
  • 교수신문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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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교과서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민의 직접 선거로 행해진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분열에 힘입어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이 합해서 절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이른바 ‘여소야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정치적 어려움을 겪던 노태우 정부는 여당인 민주 정의당과 일부 야당을 통합하여 민주 자유당(민자당)을 만드는 정계 개편을 하였다(3당 합당). 한편, 1980대 말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노태우 정부는 이들 국가와 적극적으로 수교하여 국내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북방 정책은 소련, 중국과 수교로 이어졌다.

1993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 자유당의 김영삼이 당선되었다. 5·16 군사 정변 후 처음으로 ‘문민 정부’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공직자 재산 등록, 금융 실명제, 지방 자치제의 전면 실시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보수 세력을 기반으로 성립한 정권의 속성상 개혁은 한계에 부딪혔다. 특히, 집권 말기에는 세계의 경제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 나라는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자금에 의존해야 하였다.

뒤를 이어 야당 출신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기울이면서, 사회 개력과 민주화의 추진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일단 외환 위기에서는 벗어났으나, 사회 계층 간의 소득 격차 확대와 개혁의 부진 등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를 남기고 있다.

대한교과서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강력한 야당 때문에 궁지에 몰린 노태우 정부는 야당과 손을 잡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여당인 민주 정의당과 야당인 통일 민주당, 신민주 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 자유당을 만들고, 김영삼이 대표최고 위원이 됐다.

1992년의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거대 여당의 후보인 김영삼이 당선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5·16 군사 정변 이후 33년만에 들어선 민간 정부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새 정부는 도덕성 회복과 경제 발전을 국정 목표로 삼고 과감한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여러 가지 비리 의혹과 경제 위기로 인해 차츰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야당인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정부 수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여야간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과 공공 부문의 구조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고, 대북 포용 정책(햇볕 정책)을 실시해 남북 화해를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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