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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은 사리와 정황에 합당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
“변혁은 사리와 정황에 합당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
  • 이종묵 서울대·국문학
  • 승인 2012.12.29 16: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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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포신, 이래서 추천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彗星은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혜성이 출현하면 이를 ‘除舊布新’의 징조로 삼았다. ‘제구포신’은 낡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포진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동아시아의 고전 『춘추좌전』에 보인다. 昭公 17년 겨울,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노나라 大夫인 申須라는 사람은 이를 ‘제구포신’의 징조로 해석했다. 이래 혜성이 나타나면 동아시아의 문인들은 제구포신의 변혁을 주장하곤 했다. 

이처럼 변혁은 불길함의 징조가 나타날 때 필요한 것인데, 그 변혁 자체는 백성의 믿음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 정약용은 『주역』의 革卦를 풀이하면서 “백성들이 그래도 믿지 않을 때에는 변혁하여 낡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포진하라. 그리하면 예의로 이끌어 세상 만물이 즐겁지 않음이 없으리니,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백성들이 이미 믿음을 갖게 된다(民猶不信 變之革之 除舊布新 則道之以禮 物無不悅 不過一日 民已信之)”라고 했다. 신년의 전망이 밝지 않을 것이라 하니 불길한 징조다. 그러니 바로 이때 변혁이 필요한 것이요, 변혁을 통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제구포신’의 변혁도 ‘여리방빅(如履薄氷)’과 ‘시리고상(視履考祥)’의 정신이 따라야 한다.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 조심스럽게 살펴야 할 것이며, 과거를 철저하게 따져서 어떤 미래가 나타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정약용은 변혁의 방법에 대해 “변혁의 시기에 이치에 합당한 것은 따르고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개혁한다. 이것인 이른바 변혁하되 합당하다는 말이다(變革之時 其當於理者因之 其不當於理者革之 此所謂革而當也)”라고 말했다. ‘革而當’의 정신으로, 이치에 합당한가를 두고 유지와 변혁을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 초기의 학자 강희안이 편찬한 원예의 고전 『養花小錄』에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실려 있다. 어떤 왕실의 종친이 花卉를 매우 좋아했는데 기굴한 외모의 노송 화분 하나를 구해 무척 사랑했다. 어느 날 하인이 칭찬을 받으려고 오래돼 묵은 가지를 자르고 쭈글쭈글한 껍질을 벗겨냈다. 놀란 종친이 그 이유를 묻자 하인은 “옛것을 제거하여 새것을 기르려 한 것(除舊養新)”이라 답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소개한 다음 강희맹은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신하된 자들이 재상의 반열에 오르자마자, 모두들 경솔하게 옛 법을 개혁하고자 ‘옛 법은 폐단이 많아 새로운 법을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 굳이 옛것에 얽매일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아침에 만든 법을 다시 저녁에 고쳐 거의 옛 법이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됐고, 국가는 그 때문에 위태하게 됐다. 어찌 하인이 예전 것을 잘라 없앤 것과 다르겠는가?” 노송은 말라비틀어진 등걸에 이끼가 붙어 있어야 멋이 있는데 그 멋을 모른 하인이 사고를 친 것이다.

“구리 화병 골동품을 씻어 하얗게 한다(洗白古銅缾)”는 말이 있다. 파랗게 녹이 슬어야 멋이 나는 구리 화병을 깨끗하게 씻어 하얗게 만든 어리석음을 말한 것이다. 오래된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고 섣부르게 개혁하려는 당시의 세태를 이렇게 비판한 것이다. 제구포신의 변혁은 사리와 정황에 합당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마음은 더욱 사나워진다. 옛사람은 이럴 때일수록 내 마음에 선과 악이 드러나기 전 그 조짐을 살피고, 세상이 맑아질지 혼탁해질지 그 흐름을 미리 살폈다. 그리하여 낡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되, 낡은 것의 가치도 다시 생각하고 새 것의 폐단도 미리 보고자 했다. 이것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이며, 진정한 제구포신의 정신이라 하겠다. 이런 뜻으로 음미해보시라고 구한말의 의병장 柳麟錫이 섣달 그믐밤에 쓴 「除夕」이라는 시를 보인다.

섣달 그믐밤을 한탄할 것 없다네,
묵은 것 사라지고 새 것 나타나리니.
마음의 선악은 그 조짐을 살피고,
세상의 명암은 그 운행을 보세나.
莫須除夕恨 除舊却新生
機看心善惡 運見世昏明

 

이종묵 서울대·국문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거쳤다. 주요 저서로 『조선의 문화공간』, 『우리 한시를 읽다』, 『한시마중』 등이 있다.

이종묵 서울대·국문학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거쳤다. 주요 저서로 『조선의 문화공간』, 『우리 한시를 읽다』, 『한시마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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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중 2013-01-02 22: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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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이종묵 교수와 윤상민 기자에게 전하고 싶으나 기사의견쓰기 의 한계 때문에 절절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포털 사이트인 다음뷰 에서 검색하시면 제가 쓴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검색할 문구는 "백성의 마음이 믿고 따르는 것을 살펴야 잘못이 없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