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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처럼 얽힌 어지러운 세태 독립 지식인의 獅子吼 깨어 있어야
난마처럼 얽힌 어지러운 세태 독립 지식인의 獅子吼 깨어 있어야
  • 윤평중 한신대·철학
  • 승인 2012.12.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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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개탁’을 추천한 이유

여야의 초박빙 구도로 예측되던 18대 대선이 의외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승패의 희비가 엇갈리는 선거 후의 모습이야 익숙한 풍경이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패자의 落心도 심상치 않다. 이명박 정부의 失政이 부른 민심이반에다, 변화를 바라던 여론의 흐름을 감안하면 야권은 구조적으로나 추세적으로 공히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결정적 선거의 해에 총선과 대선을 모두 내준 셈이다. 

진보는 중대한 자기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환골탈태에 가깝게 진화하지 않는 한 민심을 얻기란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해도 진보가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건국 이후 보수가 주도권을 장악해 온 한국현대사에서 마이너리티에 머물러왔던 진보가 보수와 정면에서 일합을 겨룰만한 거대 연합세력으로 성장한 전환의 계기로 2012년 대선을 평가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수-진보 모두 자기변환 요청받아

이는 보수 승리의 큰 요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내공에 기인한 것이므로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보수의 전망이 불투명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승리한 보수라고 해서 안심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선 결과로 한국 보수도 부단한 자기 갱신과 총체적 성찰의 요구 앞에 서게 됐다. 결국 보수와 진보 모두 획기적 자기변환을 요청받은 셈이다.

정치적 전망과는 별개로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2012년의 사회문화적 현상이 있다. 보수와 진보가 총동원돼 격렬하게 진행된 총선과 대선 다툼의 결과, 한국사회에서 신뢰할만한 중도적 균형자와 깨어 있는 단독자의 목소리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보수·진보 양 쪽이 총 결집해 건곤일척의 싸움으로 확대된 2012년의 정치과잉 상황은, 어느 쪽에도 서기를 꺼려하는 사려 깊은 이들을 ‘너는 어느 편이냐?’고 공개적으로 힐난하며 조롱하는 효과를 낳았다. 정치적 입장선택과 판단의 문제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치환시키는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

균형 잡힌 태도로 공동체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지식인들마저 현실참여를 빌미로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파당적 언행을 일삼는 행태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정치의 해’였던 2012년은 폴리페서, 폴리널리스트, 그리고 폴리인텔렉튜얼(politics와 intellectual의 합성어)들의 전성시대로 기록될 만하다. 진영논리와 당파적 견강부회가 넘쳐난 나머지 가뜩이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리기 어려운 세상이 더욱 어지럽고 혼탁해지고 만 것이다. ‘2012년 선거의 해’는 ‘정치에 대한 지성의 附逆에 가까운 굴종’을 유도했다. 지식인 사회의 과도한 정치지향성은 한국사회에서 이름 깨나 있는 교수나 문인, 사회 활동가와 지식인치고 특정 대선후보 진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있지 않은 이들을 씨를 말리다시피하는 처참한 상황으로 귀결됐다.

그 가공할만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공론 영역이 구조적으로 왜곡되고 공론 기능이 체계적으로 굴절된다는 것이다. 정의와 진리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을 치장하는 한국 지식인들의 고유한 행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분출한 각종 담론의 백가쟁명이 민주적 공론장을 성숙하게하기는커녕 어지럽게 만드는 역효과를 산출하기도 했다. 진지한 얼굴의 지식인이 심각한 얘기를 해도 발언의 배경에 숨어있는 정치적 저의와 파당적 이해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신들의 정치참여를 정당화하는 고답적인 지식인의 言說이 고단한 현실에 입각한 민초들의 삶의 실감으로부터 분리돼 공소해진다는 것이다. 

지식인 사회와 공론 영역의 과잉 정치화는 신뢰의 파괴로 이어진다. 민주다원사회인 한국사회에서는 각양각색의 갈등 자체가 가파르게 복합화 돼가는 중이다.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신뢰는 한국적 위험사회의 분열과 질곡을 헤쳐 갈 수 있는 최후의 전거일 터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강타한 ‘지식인의 政治人化’ 현상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총체적으로 소진시키고 있다. 지식인과 교수들은 자신들의 사회참여와 정치개입에 대해 스스로를 희생해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실천하는 것이라며 미화한다. 그러나 그 결과 오히려 ‘믿을 사람 하나 없고’, ‘결국 그 놈이 그 놈이며’, ‘만인이 만인을 불신하는’ 저신뢰사회를 조장하는 건 심각한 아이러니다.

‘지식인의 정치인화’ 猛省 필요

이명박 정부는 내곡동 사저 파문이 상징하듯 임기 마지막까지 공공성 붕괴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불신, 불안, 불만의 축적이 한국적 분노사회로 이행하면서 묻지 마 증오범죄도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이지만 출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과분한 혜택을 누려온 지식인과 교수들이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어지럽힌다면 정말 통탄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인의 정치참여 행태와 방법에 대한 猛省이 요구된다. 난마처럼 얽혀 돌아가는 어지러운 세태에 찬물 껴 얹는 단독자적 독립 지식인의 獅子吼가 그리운 세상이다.


윤평중 한신대·철학
필자는 미국 南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신대 학술원장을 맡고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위한 변론」, 저서로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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