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9:05 (목)
은퇴한 교수가 사는 법 … "젊은 학자들 업적 주시해야"
은퇴한 교수가 사는 법 … "젊은 학자들 업적 주시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2.20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미술사 미개척 분야 도전

교수라는 직책에는 물러남은 있어도, 학자 즉 ‘배우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규정해 온 이에게 ‘은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71세·사진, 미술사)가 또 한번 이를 증명했다. 최근 상재한 『한국 미술사 연구』(사회평론 刊, 2012)를 통해서다.

『한국 미술사 연구』는 한국 미술사학 교수로 30여 년의 강단 생활을 마치고 2006년 정년 퇴임한 안휘준 교수의 마흔 번째 책이기도 하다. 퇴임후 15권 정도의 책들을 차례로 펴내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말하던 다짐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나온 결실이다.(<교수신문> 637호, 2012.3.26. 인터뷰 기사 참조) 무엇보다 이 책은 과거의 업적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그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술사 연구자인 저자 스스로도 ‘만년의 연구 동향’이 담겨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제5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000년대 이후에 발표한 논문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미술사학자로서 저자가 자신이 이룩한 성채를 배회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발을 딛지 않은 ‘미개척 분야’에 몸을 우뚝 세웠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백제의 회화, 솔거의 화풍, 겸재 정선의 정체, 조선시대 무덤 벽화 등 이른바 한국 미술사의 ‘미개척 분야’들이다. 이 주제들은 스스로 일군 전공 분야(한국 회화사) 중 이미 많은 데이터가 축적돼 있고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주제가 아니다.

안 교수는 작품조차 남아 있지 않은 솔거를 한국 회화사의 3대가 중 한 명으로 꼽으면서, 그가 8세기 중엽에 활동한, 서예가 김생과 쌍벽을 이룬 전채서(신라 때 그림 일을 맡아보던 관아) 화원이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 사료를 더듬어 솔거의 신분과 활동연대, 화풍을 복원한 것도 흥미롭다.

반면 정선의 경우, 기존 평가를 지워나가면서 그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자 했다. 겸재를 둘러싼 숱한 ‘말’들의 숲을 그는 그냥 지나친다. 이 숱한 ‘말’들이 정선과 그의 화풍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의 신화, ‘진경시대’의 아우라에 그가 들이댄 실증의 칼날은 정선의 신분, 진경산수화 창출의 연원, ‘진경시대’론의 문제 등을 파헤쳤다. 그에 따르면, 정선은 “한때 화원이었고 도화서를 나와 벼슬을 할 때도 쇄도하는 그림 주문에 수응하기 위해 끝내 화필을 놓지 않았던 직업화가”였으며, 정선 진경산수화의 연원도 조선성리학과 조선소중화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정선 자신의 독자적 업적이다.

안 교수는 책의 말미에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나이 든 학자일수록 젊은 학자들의 업적을 주시하고 인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의 학문을 새롭게 하고, 학계의 최근 동향을 파악하게 하며, 젊은 연구자들에게 격려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미개척 분야로 뛰어든 그의 행보가 그 자신과 미술사학 同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