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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대, 작아도 당당한 ‘남자의 물건’이 부럽다
여성의 시대, 작아도 당당한 ‘남자의 물건’이 부럽다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2.12.10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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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ㆍ상상ㆍ인문학 (28)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앞에서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 프라스. 사진=최재목
인구 100만 남짓의 작은 도시, 브뤼셀. 하지만 이곳은 나토(NATO)와 유럽 연합(EU)의 본부가 있는 유럽 정치ㆍ군사의 중심지다. 그래서 ‘유럽의 수도’라고들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2시간. 파리나 런던에서도 2시간 거리다.

 

중앙역에 내려 사람들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 새 대광장(grand place)=그랑 프라스에 발길이 닿는다. 많이 들어왔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빅토르 위고), ‘화려한 극장’(장 콕도)이란 말에 동감한다. 고딕 양식의 시청사, 바로크 양식의 길드 조합, 르네상스 양식의 각종 건축물들로 둘러싸여 유럽의 어떤 광장보다도 화려하다.

브뤼셀은 맥주, 초콜릿, 와플, 레이스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소년들과 관련된 볼거리도 많다. 벨기에의 만화가 페요(Peyo, 본명은 피에르 컬리포드)가 만들어낸 만화 캐릭터 ‘스머프’가 그렇다. 유럽의 어느 숲에 사는 파란색 피부, 하얀색 모자와 바지의 꼬마 요정 아닌가. 원작을 기초로 1981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구장이 스머프’란 이름으로 방영했는데, 당시 스머프 만화가 공산주의적 이상향을 그린다는 이유로 수입을 불허했으나, 미국 제작사측의 요구로 성사됐단다. 스머프의 캐릭터들이 모두 노동자 복장이고, 등장하는 재산이 모두 공동소유라는 등의 ‘공산주의 음모론’이 제기된(1992년, 유즈넷) 탓이란다. 그랑 프라스의 시청사 바로 옆 건물 ‘백조의 집’에서, 1847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공산당 선언문」을 썼다는데, 벨기에에서 탄생한 스머프와 무슨 맥락이 있는 걸까.

 

브뤼셀의 상징이 된 '오줌싸개 동상' 사진=최재목
같은 벨기에의 만화가 에르제(Herge)가 그린 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용감한 소년기자 땡땡(Tintin)과 그의 애견 밀루의 모험을 다룬「땡땡의 모험」시리즈도 있다. 게다가「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도. 모두 소년들과 관련 된 것이다.

 

특히 브뤼셀의 상징이 된 ‘오줌싸개 동상’은 이곳의 주요 관광수입원이다. 하도 유명하다기에 나도 찾았는데. 아, 좀 실망한다. 좁은 골목 모퉁이에 55cm 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동상. 저게 세계적인 명소라니? 여기엔 몇 가지의 전설이 있다는데, 그 중 하나. 프랑스군이 브뤼셀에 불을 질렀을 때, 한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상이 만들어졌단다. 그래서 ‘오줌싸개 동상’이 오줌을 누는 동안 브뤼셀은 안전하다나! 쥴리앙(Julian)이란 애칭을 가진 이 동상 앞에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으로 늘 만원. 배시시 웃으며, 아랫배를 약간 내밀고, 고추를 잡고, 꿋꿋하게, 오줌을 누는 소년. 그 앞에서, 일본인 여성 관광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한다. “여러분! 남자들은 오줌 눌 때 진짜로 저렇게 웃으며 누나요?”

주변에는 ‘오줌싸개 동상’을 모델로 한 다양한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데, 고추를 잡고 쉬를 하는 수많은 조그만 기념품 앞에서, 나는 상상한다. 소년의 저것은, 작아도 얼마나 당당한 ‘남자의 물건’인가.「끊임없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에라스무스『격언집』)고 했듯,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게 물이지만, 끊임없이 흘러대면 어떤 강한 것도 뚫을 수 있지(『노자』). 저 소년의 물건으로서는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남들 앞에서 오줌을 누지 못하게 됐다. 철들고 나서부터 그걸 꽁꽁 숨기고 살아왔다. 갈수록 은밀해지고 초라해진 남성.

브뤼셀의 주요 관광수입원인 '오줌싸개 동상'엔 여러 가지 옷을 입히기도 한다. 사진=최재목

빈센트 반 고흐가 활동하던 세기말의 안트베르펜에서도 남성은 기가 죽어 있었다. 브뤼헐의 잘 알려진 그림「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 먹는다」(1557)처럼, 여성들은 이미 작은 고기가 아니라 큰 고기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 빈센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미 ‘세기말’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대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그래서 여성들은 혁명의 시대처럼 매력 있고 발언권도 강해졌어. 따라서 여성들을 빼놓고 일을 하면 ‘세상에서 은퇴한 존재’가 될 거야. 이는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든 마찬가지야. 시대에 발맞추자면 여성을 고려해야 해.”(「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5년12월28일). 당당해지는 여성의 뒤에서, 고개 숙인 남성.

예전에 나는 이렇게 시를 쓴 적이 있다. ‘오줌을 누다가/그것을 보았다, 그것은/초라하게 움츠렸다 눈을 뜬다/(…)그것은/가끔 우울하게 서 있었다’(「그것」). 성인 남자의 물건. 세월이 지날수록 서글퍼지는 것! 유년의 그것은 선망의 대상이지만, 중년 이후론 그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아니 갓난아이의 그것만도 못하다.『노자』에서 말했다. 남녀 간의 섹스를 알지 못해도 갓난아이의 고추가 빳빳하게 서는 것은 온몸에 정기가 꽉 차 있기 때문이라고. 氣가 다 빠진 남자의 물건이란 정말 씁쓸한 거.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 작품인「다비드」(1501~1504)가 완성돼 피렌체에 세워질 때 사람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져댔다고 한다. 그 석상에 성인 남자의 성기가 표현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줌싸게 동상’ 소년의 성기는 저렇게 당당히 쳐들어도 되는데, 왜 성인 남성의 그건 비난받아야 하는가. 여성의 시대라 떠들 때, 나는 왠지, 작아도 당당한 ‘남자의 물건’을 부러워한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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