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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똥도 져 나르는 넉살 좋은 놈!
너구리 똥도 져 나르는 넉살 좋은 놈!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12.06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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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72> 오소리

‘오소리감투’란 ‘오소리 털가죽으로 만든 벙거지’를 일컫는 말인데,“ 오소리감투가 둘이다”라 하면 어떤 일에 주관하는 자가 둘이 있어 서로 다툼이 생긴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범 없는 산에서 오소리가 왕질 한다”하고, 방에 매캐한 연기가 한가득 차면 “오소리 굴 같다”고 한다.

오소리는 족제빗과의 야행성 포유동물로 세계적으로 9종이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사는 오소리가 몸길이 60∼90㎝, 몸무게 12∼18㎏으로 가장 큰 축에 든다고 한다. 여기서‘badger’는‘굴을 잘 파는 놈’란 뜻이요, 그들은 뭐니 해도 작은 귀 끝이 희고 얼굴에 나있는 넓적한 세 개의 굵은 흰줄무늬가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오소리는 후각은 발달했지만 눈은 아주 작고 시력은 온전하지 않으며, 청각은 되레 사람만 못하다고 한다. 거칠기 짝이 없는 털은 회백색으로 다소 갈색털이 섞여 있으며 끝이 가늘고 뾰족하다. 얼굴과 두개골은 좁고 긴 것이 꼭 족제비를 꼭 닮았으며, 몸집이 원통형으로 굵고 땅딸막하며 살집이 풍성하다. 뭉뚝하고 근육성인 예민한 코로 냄새도 맡지만 땅을 파기도 하며, 앞다리의 발가락이 뒷다리에 비해 훨씬 길고, 크고, 강하며 끝자락에 날카로운 발톱이 나있어 지딱지딱 땅굴을 잘도 판다.

지렁이·벌·개미·매미유충 같은 곤충을 주식으로 하고 쥐나 개구리도 잡아먹는 육식성으로 犬齒가 발달했고, 먹을 게 없는 늦가을이나 초봄에는 과일, 견과류, 식물뿌리들도 먹어 잡식성을 보인다. 먹이는 반드시 현장에서 먹어치우지 굴에 가져오는 법이 없으며, 종종 과수원에 떨어진 발효 중인 과일을 주워 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수도 있다니 그럴 때 잡으면 되겠다! 중국은 이발소의 비누 솔이나 고급 페인트칠 솔로 쓰는 털을 수출하기 위해 오소리농장에서 사육하고, 우리나라에도 고기나 기름용으로 키워 억대 부자가 된 농장이 여럿 있다한다. 본 종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굴은 복잡하게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여름 굴은 번식용이고 겨울 굴은 겨울잠을 자는 곳이다. 동면은 12∼3월까지로 후미진 곳에 있는 땅굴입구는 크기가 15×10㎝ 정도이고 굴 길이는 20m 이상 되며, 동면 때는 입구를 흙이나 낙엽으로 꽉 틀어막는다.

굴에 사는 놈들이 다 그렇듯이 녀석들도 도망 갈 구멍을 마련해놓는다. 덫(올무)을 놓거나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너스레를 친 위장구덩이인 허방다리를 파 놓아 잡기도 하지만, 굴 주둥이에 생솔가지불을 피워 부채질하여 지독하게 매운 연기에 숨 막혀 밖으로 도망 나오는 놈을 기다렸다 잡는다.

오소리는 상당히 평화롭고 사회적인 동물로 여우나 너구리가 꼽사리 붙어도 기꺼이 함께 지낸다. 그래서‘똥 진 오소리’란 말이 있으니, 너구리굴에서 함께 사는 너구리 똥까지 져 나른다는 데서, 남이 더러워서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하거나 남의 뒤치다꺼리까지를 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른다. 꼬리 아래의 尾下腺에선 사향이 풍기는 크림색지방물질을, 肛門腺에서는 악취 나는 홍갈색 액체를 분비하니 이런 분비물을 바위나 나무밑동에 발라 행동권 인 괉地를 표시하고 오가는 通걟의 표적으로도 삼는다.

주로 산림지대에 살며, 임신기간은 270~284일이고 새끼는 2~6마리를 낳으며 3쌍의 젖꼭지가 있다. 한 굴에 몇 세대가 함께 무리생활을 하니 한 무리는 보통 어른 여섯에 많으면 가족이 모두 23마리나 된다고 한다. 야, 대 가족이다! 일부일처라 하지만 거의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암컷은 여러 수놈들과 무시로 교잡하여 다양한 유전자를 받아 여러 특성을 가진 새끼를 낳는다. 늑대, 스라소니, 개 등의 천적에 쫓기거나 해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금세 죽은 시늉을 하다가 기회를 엿보아 역습을 하거나 멀쩡하게 도망간다.

그런데 고릴라, 침팬지 등의 영장류나 오소리, 여우같은 많은 동물에서 기막힌 생식현상을 보인다. 일종의 種內競爭으로, 꿀벌집단에서 그렇듯 명실상부한 여왕벌만이 독점하여 임신하고 層層侍下, 나머지 일벌들은 새끼치기를 못한다. 하더라도 까딱 잘못하면 동아리에서 쫓겨나거나 낳은 새끼는 죽임을 당한다. 서열이 낮은 지질이 못난 암컷들을 ‘helpers’라 하며, 대거리 한 번 못하고 고분고분 대장의 분만과 새끼양육 시중을 하다가 나중에 두령이 죽은 다음에라야 우두머리가 돼 새끼를 밴다. 다 사연이 있는지라, 아마도 집단의 크기를 조절하는 행위지 않나 싶다.

이렇게 ‘아래 것’들은 이빨을 사리문 암컷대장의 갈구고 채근하는 무시무시한 스트레스성 억압 탓에 卵巢크기가 ‘윗분’의 반밖에 되지 않으며, 핏속의 성호르몬이 排갻에 필요한 양의 반에도 미치지 않더라는 것. 그러나 이런 못난이 무거리 녀석들을 무리에서 떼어 내놔 봤더니 곧장 배란을 하더란다.

헌데, 짝짓기를 끝낸 일벌이 그렇듯 원숭이나 사자 등 힘 빠진 늙정이 수컷들은 하릴없이 무리에서 내쫓겨나 외롭게 홀로 지내다 시나브로 죽고 만다. 사람 늙다리도 그놈들 흉볼 처지가 못 된다. 워낙 엄처시하인지라, 늙은 ‘대장’여자들이 폐기처분감인 ‘하급’남자를 맘대로 다그치고, 수시로 쥐고 흔든다. 그러나 어찌 하리요, 그 또한 자연현상인 것을. 그렇지 않은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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