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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은퇴 후 삶이 이런들 어떠하리
원로칼럼_ 은퇴 후 삶이 이런들 어떠하리
  • 류병호 경성대 명예교수·식품공학
  • 승인 2012.12.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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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호 경성대 명예교수·식품공학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프랑스 생물학자 뷔퐁은 사람의 수명은 ‘25(성장기)×5(생명계수)=125’세까지라고 주장했다. 현대인은 나이에 0.8(생활계수)을 곱한 것이 실제 나이라고 할 만큼 건강하다.

어느 노교수가 90세 생일 날 “퇴직 후 지금까지 무의 도식한 것을 후회하고 앞으로 책을 집필해 100세 때 나눠 주겠다”고 했다. 퇴직 후 100세까지 산다면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요즘 회자되고 있는 영식님, 1식씨, 2식x, 3식x, 간식까지 챙기는 호로xx으로 살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남았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때가 돼 어쩔 수 없이 퇴직했는데, 아내로부터 귀찮은 존재가 되면 어떻게 할까. 백수를 누린다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퇴직 수년 전부터 전공 분야의 특허도 내고, 농촌을 살려보자는 생각으로 고향인 경남 남해 소재 흑마늘 제조업체인 D농산에 마늘연구소를 설립해 마늘 연구를 하게 됐다. 마늘은 고대 이집트와 로마인들이 애용했고, 단군신화에 보면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던 곰이 마늘을 먹고 웅녀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 했다. 그만큼 마늘의 靈氣를 신성시함으로써 동물을 사람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신이 내린 기능성 식품으로 우리 주변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농촌의 척박한 환경에서 힘이 들었지만 퇴직 이후의 삶이 녹록치 않을 거라는 일념으로 힘겹게 실험하고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운 좋게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3년간 봉급 지원을 받았고, 농림수산기술평가원, 한국식품연구원, 경남테크노파크, 남해군, 기능성 식품 임상센터에서 수십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혈액 중의 나쁜 콜레스테롤(LDL)은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높이는 효능을 인체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해 기능성 식품으로 인증 받을 수 있었던 일은 고향을 위해 봉사한 실적으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뿌듯함을 느낀다.

또 마늘 추출물에서 우연히 혈행 개선과 전립선암에 좋은 기능성 성분을 합성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상품화가 돼 있지 않아 약 10년 정도 걸리겠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이 입증돼 제품화가 되면 바이오 의약품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퇴 후의 삶이 마냥 무의미하지 않고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낫고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고 내일을 기회로 생각하며 매진하면 이런 행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수 재직 시 연구 외에도 취미 생활을 찾아 삶의 여유를 즐겨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다가 퇴직을 계기로 경남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에 별장을 신축했다. 봄이면 파릇파릇 잔디가 봄이 왔음을 알리고 갖가지 봄꽃들의 향연으로 꽃향기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여름이 되면 텃밭에서 기른 상추, 깻잎, 풋고추로 가족, 친구들과 바베큐를 즐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가을이 오면 정원 여기저기에 짙게 드리워진 국화의 향기에 젖어 사색에 잠기고 곱게 물든 뒤란의 낙엽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겨울이면 양지 바른 따스한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온몸을 녹이며 한가로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생을 예견해 보기도 한다.

가끔은 서산에 넘어가는 아름다운 황혼을 보면서 내 인생의 황혼도 저렇게 아름다울까 애수에 젓기도 한다. 그러다 외로워지면 짬짬이 배워뒀던 색소폰을 불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지난 세월을 회고해 보면 어려움과 괴로움은 잠시 지나가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인생이라고 생각된다. 은퇴 후의 삶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생각하기 나름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면 행복한 것을.

류병호 경성대 명예교수·식품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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