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세계체제론’의 창시자로서, 20세기 대표적 지성으로 알려져 있다. 세기를 뛰어 넘어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9·11’테러사태이후 시사적인 이슈들에 대한 논평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왔다. 본 대담은 현 국면 국제정세와 동아시아의 위상 문제를 짚어보고자 하는 취지로 제 15차 세계사회학회 학술대회 기간중인 2002년 7월 12일(금) 오후 3시 호주 브리즈번 리지스 호텔에서 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가 진행했다.
이수훈(이하 이)
:‘9·11’테러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이 서서히 세계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대신 세계경제의 동요와 ‘신경제’로 불리기도 한 1990년대 미국경제 붐이 거품 성격이 짙었을 뿐 아니라, 미국식 자본주의가 그토록 강조한 기업경영의 투명성마저 최근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스캔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 워싱턴 내 매파 주도하에 이라크 공격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만.
월러스틴
이
: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쥐고 있다고 믿는데요. 더구나 1989년 소련 붕괴가 미국 패권을 강화시켰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1991년 걸프전 때 미국이 보여준 화력도 이런 견해에 한 몫을 했습니다. 특히 ‘9·11’테러 이후 일방적 게임규칙 정하기 등을 주목하기도 합니다.
미국 패권, 1970년대부터 퇴조.
월러스틴
: 나는 오래전부터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제2차 대전후 수립된 미국 패권은 1970년대부터 퇴조해왔습니다. 이론적으로 1968년 ‘세계혁명’을 분기점으로 제시해왔습니다만 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 베트남전 패배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고도 졌지요. 1970년대 중반부터 세계체제는 삼분되어 북미·동아시아·유럽 삼극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1989년 사태와 1991년 걸프전은 많은 분석가들의 주장과 달리 미국 패권이 저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건입니다. 1990년대 미국경제 붐은 거품이었다는 점을 앞서 얘기했지요. 여기 학회에서도 어제 종일 미국 패권에 대해 논란을 벌였지요. 그런데 동료 학자들이 어떤 이념적 배경을 가졌건 대체로 미국 패권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두드러졌습니다. 그 점이 바로 우리 시대가 미국 패권 시기가 아님을 방증해주는 근거가 아닐까요.
이
: 그래도 미국의 일방주의는 계속되고, 드디어 이라크에 대한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국제적 분위기에 이렇다할 저항이 없지 않습니까. 유럽은 말할 것 없고, 요즘은 러시아나 중국마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요.
월러스틴
이
: 많은 분석가들이 “일본은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일본과 동아시아의 차세대 중심성을 한결같이 주장해왔는 데,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까.
월러스틴
이
: 그 복잡한 논의에 중국이 포함되겠지요. 중국에 대해서도 요즘 분석이 천차만별입니다. 한반도도 동아시아의 중요한 요인 아니겠습니까.
역사적 호흡 길게 가질때
월러스틴
: 중국의 성취를 인정해야 합니다. 중국의 현재 기획은 부국강병에 의한 문화적 민족주의입니다. 사실 중국이 역사상 자신을 ‘중국’, 즉 세계의 중심국 (Middle Kingdom) 이라는 인식을 버린 적은 어느 때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는 그 인식에 대한 물적 토대가 마련된 형국이지요. 중국도 엄청난 과제들을 해소해 나가야 합니다. 내적 양극화, 인종문제, 타이완 문제 등을 꼽을 수 있지요. 하지만 중국은 부상하고 있고, 20년 후에는 안정된 국가, 타이완 흡수,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을 보여줄 겁니다. 하지만 중국이건 일본이건 세계체제의 중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일-한 동아시아 축을 이룩해내야 합니다. 이는 정치적인 과제인 데 어려움이 많지요. 여기에 바로 한반도의 지렛대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한반도가 이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분단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데, 한국민족의 슬기가 십분 발휘되어야겠지요.
이
: 그런 슬기가 미국과의 관련 때문에 잘 발휘되기 어렵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2003년 한반도 위기론이 있습니다.
월러스틴
월러스틴 스스로가 보여주는 월러스틴
“1994∼98년까지 나는 세계사회학회(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 회장직을 맡았다. 나는 사회과학의 집합적 사회지식을 재평가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21세기에 크게 변환될 것이라고 본 세계에 비추어 이 문제를 바라보도록 세계사회학회에 촉구하였다. 나는 세계사회학회 회장으로서 사회학자 및 여타 사회과학자들이 개최한 수많은 모임에 연설하도록 초청받았는데, 나의 주장에 따라 이 기회를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이라는 주제에 대한 견해를 개진하는 데 이용하기로 결심하였다.이 책의 제목은 여기에 수록된 많은 글들을 읽은 윌킨슨(P. Wilkinson)이 붙여주었다. 하루는 그가 내게 말하기를, 사실 내가 쓰고 있는 주제들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에 관한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알고 있다’는 것은 인식(cognoscere)과 이해(scire)라는 이중의 의미였다. 나는 이 통찰력을 받아들여서 ‘자본주의 세계’와 ‘지식의 세계’―우리의 실재를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알던 세계(자본주의 세계, 즉 인식)와 그 세계를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알던 세계(지식의 세계, 즉 이해)―로 나누어 나의 글들을 배치하였다.
나는 우리가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에 대해 우리가 함께 시급히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논의는 참으로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나아가 이런 논의에서 지식과 도덕과 정치는 별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이런 입장을 여는 글인 ‘불 확실성과 창조성’에서 제시하려 한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는 대단히 힘든 토론이다. 그러나 문제를 회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백승욱 역, 창작과비평사 刊)에서